트레바리 〈리서치 하는데요〉8번째 시즌을 시작했습니다. 지난 시즌을 마치고 새로운 멤버를 모집하는 과정에서 부담도 있었습니다. ‘얼마나 빨리 마감이 되는가?’, ‘음원을 낸 아티스트의 인기투표처럼 노출되는 인기 있는 클럽에 몇 번째로 소개되는가?’에 자유로울 수 없었습니다. 8번째 시즌을 시작하면서도 여전히 타인의 반응에 신경을 쓰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오히려 제가 운영하는 채널에서 더 적극적으로 소개했습니다. 그렇게 10번의 시즌을 하고 나면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을까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그런 믿음은 책을 한 권 읽는다고, 좋아하는 영화를 다시 본다고 바로 생기지 않습니다. 고민하고 애써야 하며 비효율을 견뎌내고 경험을 통해 시행착오를 거쳐야 내 것이 되는 것 같습니다. 문제집을 풀 때 뒤에 있는 해설을 보면서 풀면 다 아는 것만 같지만, 문제와 단둘이 마주할 때엔 머리가 하얘지는 것처럼 내 것이 되려면 실제로 해봐야 합니다. 어찌어찌 10번을 하고 나면 편안해질 수 있을지 기대와 의심을 해보며 5월 22일, 금요일 강남역 아지트에 모여 8번째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왜 꾸역꾸역 계속 이어가는 걸까?
- 하다보니 계속하게 된다
- 시즌을 거듭해 연장해주는 멤버들과 돈독해진다
- 같은 책을 읽은 이들의 독후감을 읽는 경험은 해상도를 높여준다
-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경험에서 위로를 받는다
- 이 모임이 아니면 일하는 마음과 사용자라는 주제를 소화할 수 없을 것 같다
이번 시즌에 함께 해주신 분들과 함께 할 수 없었지만 응원과 안부를 전해준 친구들에게 고마움을 전합니다. 이런 건 두고두고 어떤 방식으로라도 보답하며 살게요!
“다른 이야기라 좋았다” 그리고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다“
다르다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할까요? 내가 평소에 하던 생각이 아닌 새로운 주제를 두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평소에 하고 싶었던 주제를 두고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 혹은 둘 다. 새로운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경험은 그 자체로 소중합니다. 매 시즌을 시작할 때 트레바리 강남아지트로 향하면서 설렘과 긴장을 동시에 느낍니다.
- 이번 시즌에는 어떤 분들이 함께 할까?
- 각자의 기대 사이의 교집합을 찾아 충분히 의미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을까?
새로운 사람들과 책을 두고, 발제문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은 모든 것이 다 쉬운 시대에 오히려 쉽게 허락되지 않습니다.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사람에게 묻기 보다 AI 툴을 활용하며, 책과 영화도 요약한 영상을 1.5배속으로 들으며 그 속도를 높일 방법을 고민하며 살기 쉬운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설렘의 반대편에 그림자로 내리운 긴장을 하면 제가 편안함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초기 몇 번의 시즌에서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대화에 집중하고, 처음 만난 멤버의 표정에 귀 기울이면서 이야기를 나누자고 다짐하며 8번째 시즌을 시작했습니다.
트레바리 <리서치 하는데요> 시즌 8에서 함께 읽는 4권의 책
- 손현, 『경험을 기획하는 일』(2)
- 데이비드 엡스타인,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5)
- 최재천, 『통섭의 식탁』(7)
- 앤드루 S. 그로브,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2)
4권의 책을 두고 시작하며 이번 시즌에서 가장 기대되는 책과 그 이유를 꼽았습니다. 이 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들을 두고 가장 기대되는 책을 꼽고 이야기하는 것은 책과 이유를 두고 누군가의 생각을 알아가는 과정입니다. 8월, 안국아지트 마지막 모임에서는 여전히 같은 책을 ‘가장 기억에 남는 책’으로 꼽을지 이야기해봐요!
첫 번째 발제문에는 저자 손현 님의 ‘사적인 말’을 담았습니다. 모임에서 시도한 ‘저자의 사적인 말’로 네 번째인데요. 처음으로 발제문을 통해 멤버들에게 생각을 전해준 생각노트 님의 『디테일의 발견』도, 『경험의 멸종』을 편집하며 품은 생각을 전해주신 강민영 편집자 님도 떠올랐습니다. 지난 시즌 첫 번째 책에서 편지에 인사를 건네주신 소령 님께도 감사드립니다. 퍼블리라는 플랫폼을 통해 처음 연을 맺은 손현 님의 『경험을 기획하는 일』을 이번 시즌 첫 번째 책으로 소개할 수 있다니. ‘콘텐츠가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말을 조금 바꿔 ‘콘텐츠가 사람을 잇는다‘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모임에서 함께 나눈 지적 대화의 쿠키들
저자의 사적인 말
손현 님 (콘텐츠 에이전시 헤르츠 운영, 『경험을 기획하는 일』 저자)
반갑습니다. 손현입니다. 승준 님에게 '저자의 사적인 말'을 부탁받고, 어떤 이야기를 사적으로 건넬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세 가지가 떠올랐습니다.
우선 이 책을 쓴 이유입니다. 저는 진로를 크게 바꾼 적이 있습니다. 첫 직업인 플랜트 엔지니어 때는 사수가 있었지만, 그 뒤로는 사수 없이 현장에서 피드백이란 이름으로 따꼼하게(?) 혼나가며 일을 알음알음 배웠어요. 돌이켜보니 제가 해온 일은 제너럴리스트에 가까웠는데 그걸 관통하는 키워드가 '콘텐츠'더군요. 이제는 콘텐츠 만드는 걸 직업적으로 하지 않아도, 조직 내 많은 팀원들이 이미 다루고 있거나,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하는 분에게도 필요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콘텐츠를 손쉽게 만들어주는 기술도 많이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책을 통해 이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습니다. 내게 꼭 필요한 실무 정보는 막상 검색이나 AI와의 대화만으로 얻기 어려운 경우가 많으니까요. 여러분도 자신만의 암묵지를 어딘가 잘 적어두는 걸 추천드립니다. 그 지식이 뒤따라올 동료에겐 큰 도움이 될 거예요.
두 번째는 경험의 중요성입니다. 여건이 되는 한, 자주 경험해 보세요. 콘텐츠도 결국 경험을 위한 수단입니다. 온라인 캠페인을 기획하든, 오프라인 팝업 스토어를 열든, 기업의 소셜 미디어 계정을 운영하든, 사람들은 이를 광고 때론 콘텐츠로 인식하고 알게 돼요.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처럼 백 번의 간접 경험보다는 한 번의 직접 경험이 훨씬 기억에 남는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간과 체력에는 한계가 있으니 이렇게 콘텐츠를 통해 간접적으로 경험할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긴 꼭 가봐야겠다', '이건 꼭 먹어야겠다', '이건 꼭 써 봐야겠다' 싶은 게 있다면 직접 보고 듣고 만져보고 맛보길 바랍니다. 그래야 나의 경험으로 남으니까요.
마지막으로 들려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다정한 마음이에요. 콘텐츠를 자발적으로 만드는 사람들을 보면 궁금합니다. '큰돈이 안 될 수도 있는데, 왜 굳이 이렇게나 공들여 만들까?' 저도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원고료도 안 받고 왜 그렇게 글을 길게, 정성스럽게 쓰냐고 말이죠. 상상해 보건대, 콘텐츠를 만드는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좋은 걸 보면 남에게 알리고 싶고, 나누고 싶은 다정한 마음이요. 물론 오지랖일 수도 있어요. 그래도 비판과 냉소, 무관심, 혐오, 차별의 반대편에는 타인에 대한 측은지심, 존중, 돕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있다고 믿어요. 그러니 좋은 경험을 위해 애쓴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고생이 많다고, 정말 좋았다고 소리 내어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리서치 하는데요>를 무려 8번째 시즌이나 지속하고 있는 승준 님의 마음이 참 근사해 보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승준 님을 리서치해보고 싶네요. 이번 모임의 첫 책으로 읽어주셔서 미리 고마움을 표합니다. 즐거운 대화 나누시길 바랄게요.
2026년 봄, 창덕궁 근처 작업실에서. 손현 드림
발제문에 형광펜을 그어 둔 문장
- 로저 카우프만을 빌려 문제란 “현실과 원하는 것과의 차이“이고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실과 기대 수준의 간극을 좁힐 무언가가 필요하다”
- 카우프만은 Needs Assessment에서 문제(problem)가 아닌 ‘필요(need)’를 기대와 현실의 차이(a gap in result)로 분석하는 도구를 개발했습니다.
- 필요는 현재의 결과와 바라는 상태의 간극이라는 것인데 사용자 경험(UX) 업계에서는 이 개념을 문제에 대한 대표적인 개념정의로 쓰고 있습니다.
- 학술적인 개념을 빼면 “문제 = 기대 – 실제 효용의 차이” 입니다.
- 독자는 자신이 독자인 줄 모르는 경우가 많다.
- 사용자는 읽지 않고 훑어본다. (택배를 뜯고 설명서를 읽는 경우는?)
- AI는 무궁무진한 솔루션을 내놓을 수 있지만 질문이 주어져야 움직인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의하고 그 해결을 바라는 건 사람뿐이다.
- 똑똑함은 이제 빠르게 발전하는 AI에 대체되는 시대
- 호기심을 갖고 문제를 발견하고 그게 해결되는 상황을 욕망할 줄 아는 사람은 대체되기 어렵다
1. 무엇이 콘텐츠인가?
“모든 것이 ‘콘텐츠’야!“라는 정의야 말로 콘텐츠를 잘 설명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새로운 콘텐츠가 매일 펼쳐지는 유튜브에 담긴 것을 콘텐츠라고 한다면, 콘텐츠는 모든 것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음식을 만드는 것부터 먹는 것, 그 과정과 음식을 두고 나누는 대화와 고민, 그 고민을 해결하는 과정까지. 파생할 수 있는 경험적 요소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용자가 있다면 모두 콘텐츠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저자와 독자 사이에 편집자가 있듯, 회사와 고객 사이에 콘텐츠 매니저가 있겠구나“라는 문장에서 몇 가지를 바꿔보면 클럽에서 다루는 사용자, 경험에도 가닿습니다. “공급자와 사용자 사이에 리서처가 있듯, 회사와 고객 사이에 리서처가 있겠구나“. 여기서 리서처를 디자이너, 마케터, 채용담당자, 기획자로 바꾸어도 의미가 통합니다.
만드는 사람과 쓰는 사람을 크게 구분할 때가 많지만, 사실 만드는 사람 안에서는 대표이사부터 C-Level, 나의 팀과 동료, 그 사이의 의사결정자와 유관부서 등 복잡한 생태계가 작동합니다. 만드는 사람인 것은 맞지만 혼자 만드는 것은 많지 않죠. 쓰는 사람은 어떨까요? 쓰는 사람도 B2B, B2C 업종에 따라 또 매일 마시는 커피인지, 자동차와 같이 수년에 걸쳐 1번 구매하는 고관여상품인지에 따라 고려할 점이 늘어납니다. 자동차를 예로 들면 타는 사람과 구매비용을 지불하는 사람이 동일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이의 기저귀나 분유, 대학 도서관에 비치된 조명의 경우도 구매하는 주체와 쓰는 주체가 다릅니다. 만드는 사람 중에서 나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 왜 그걸 하는지 의식해야 합니다.
2. AI가 만든 변화 속에 변하지 않는 것들은 무엇인가?
최근 몇 차례의 시즌을 거듭하며 대화의 중심에 AI를 두고 다른 생각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번 시즌에 처음 만난 현지 님은 대학생입니다. 경영학과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며 AI 시대에 자신의 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싶어 <리서치 하는데요>를 선택하셨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현지 님 덕분에 2026년 대학교에서 AI를 사용하는 모습에 대한 생각을 살필 수 있었습니다. 이번 시즌 카카오톡 단체방에서 어제 모임 후에 전해주신 글입니다. (대학교 4학년 때 독서모임을 통해 자신의 진로를 탐색하는 모습에 진심으로 응원과 존경의 마음을 품습니다)
대학교에서의 AI 기술의 사용 관련해서 추가로 생각난 것들이 있어 공유드립니다!
1. 교수님들의 반응
경영학과 교수님들께서는 AI 사용을 반기시고 적극 권장을 하셨습니다.
컴퓨터공학 교수님들께서는 챗지피티 등장 이후 1년 정도까지만 해도 과제에 AI 사용을 회의 결과 금지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시대적 흐름을 받아들이시고 강의자료를 PPT 생성 툴인 젠스파크로 만드시고 AI 사용이 필수인 과제가 주어지기도 합니다.
다만 과제의 형태가 달라졌는데 과거에는 원하는 아웃풋을 도출하기 위해 코딩을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면 지금은 AI가 왜 그렇게 코딩을 했을까 왜 그렇게 답을 할까라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제들을 수행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2. 학생들의 활용
Google의 notebook LM을 강의자료 학습에 많이 활용합니다. 챗지피티나 제미나이에 pdf를 전송해 학습시키다 보면 정보가 많다보니 컨텍스트 로스나 할루시네이션 문제로 엉뚱하게 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notebook LM은 이런 자료 처리 작업에 특화되어 있어서 위 같은 문제 없이 수백장이 넘는 강의 자료도 처리합니다.
동일님이 말씀해주신 초개인화 학습과 비슷하게 저는 실제로 강의 자료를 notebook LM에 올려두고 제미나이와 연결해서 제 지식 수준을 반영하도록 프롬프팅 해 수업 중 이해가 잘 되지 않는 부분을 실시간으로 물어보며 강의를 듣습니다.
오늘 다양한 좋은 이야기들 많이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많이 배웠습니다 d=(^o^)=b
좋은 밤 되세요☺️
교수 님 반응과 학생들의 반응에 차이가 있습니다. 전공에 따라서도 그 양상이 다릅니다. AI 시대의 변화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는 것 같으면서도 조금 더 들여다보면 모두 파고를 의식하되 자신의 필요에 따라 사용합니다. 실내 수영장에 가면 고급, 중급, 초급 자유수영 레인이 있습니다. 가장 우측에는 재활을 위해 걸어갈 수 있는 레인도 있지요. 모두 수영장에 같은 시간에 몸을 담그고 있지만 자기만의 속도와 영법으로 물살을 가르고 있습니다.
AI는 인공지능이니까 무엇이든 다 될 것 같은데 대체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의도적으로 ‘대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볼 때가 있습니다. 최근 만난 지인은 자신이 출근해서 하는 일을 이렇게 2가지로 정리했습니다.
- 내가 하고 있는 현재의 일을 ‘AI’로 자동화하여 내가 없어도 되도록 만들기
- 내가 지금 일에서 없어지는 만큼 조직의 목표를 달성하는 일을 AI로 만들기
어렸을 때 하던 게임이 떠올랐습니다.
게임 속 주인공이 올라탈 수 있는 동그란 판은 눈으로 만들었는지 시간이 지날 때마다 작아져서 다음 판으로 점프해서 넘어가는 아케이드 게임이었습니다. 뒤에서 누가 쫓아오는 상황이라 빨리 화면의 오른쪽으로 달려가야 하는데 미션을 거듭할 수록 난이도가 높아져 판이 녹는 속도가 빨라졌죠. 내가 머무는 판을 스스로 없애면서 다음 판을 찾고, 그걸 반복하는 일. 이런 때에는 이 게임을 더 빨리해내서 난이도가 높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대신 이 게임의 원리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AI에 대해 문득 떠오른 생각들
- AI는 맥락을 인공적으로 학습하기 전까지는 매우 기초적인 지능을 보인다. 맥락은 계속 만들어지는데 모든 맥락을 학습시킬 수 있는 플랫폼은 영화에서 보던 디스토피아에 가까운 건 아닐까?
- 예컨대 100ml 컵에 50ml 차있는 상황에서 “물이 반이나 있네”, “물이 반밖에 없네”라고 말할 수 없다. (위험부담이 있으니 말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 AI는 문제의식을 갖지 않는다. 문제 정의를 하는 역할은 여전히 대체할 수 없다. 뭐가 문제야?에 대해서는 문제 의식이 있는 사람만이 답할 수 있다.
- AI 시대에 그 변화를 바라보고 의식해야만 쉽게 대체되지 않는다. 무엇이 대체되는 지를 예상하고 바라볼 때 대체되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
- AI를 누구나 에이전트를 통해 대화형으로, 그러니까 자연어로 쓸 수 있게 되면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누구나 쉽게 쓸 수 있는 경험은 지금도 유효하다.
- 자동차는 인간보다 빠르고, 망치는 주먹보다 힘이 쎄다. 도구는 인간의 힘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AI도 도구로 본다면 인간의 힘(능력)을 더 키우는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사실 자동차 전에 자전거가 있었고, 망치 전에는 석기시대 돌망치가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감동을 받는 피라미드는 아주 오래 전에 사람이 돌로 만들었다. 감동은 무얼까?
- AI는 데이터 분석, 코딩, 이제는 디자인을 스킬로 대체하고 있다. 그럼 여기서 다른 사람이 만든 AI 도구의 산출물과 내가 만든 산출물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더 빠르게 만드는 것? 더 정교하게 만드는 것? 비슷한 수준에 있는 것들은 그게 무엇이든 쉽게 대체될 수 밖에 없다. 대체재가 될 것인가, 보완재가 될 것인가? 대체될 수 없는 보완재를 만드는 것은 문제 정의부터 출발이다.
- AI 도구로 동료가 하루만에 만든 50페이지 보고서를 보고 2가지 생각이 들었다. “클로드를 썼구나. AI로 만든 티가 너무 나서 몰입이 잘 안 된다.“. “이제 나는 클로드를 사용해도 클로드로 PPT를 만들면 안 되겠다“. 애씀이 없는 결과물에는 공감이 되지 않는다. 그건 내가 공급자일 때에도, 설계자일 때에도 마찬가지이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계없는 시대에 Jumping Together
경계와 규칙이 없어지는 시대. 디자이너가 개발을 하고, 개발자가 디자인을 하며, 기획자가 디자인과 개발을 모두 하는 시대. 그럼 모든게 다 쉬워야 하는데 하루하루는 왜 더 치열해지는 것만 같을까요?
좋은 콘텐츠는 3가지 조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새롭거나, 유용하거나, 재미있거나. 세상에 없던 것이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거나, 감동을 주는 콘텐츠가 ‘좋은’ 콘텐츠가 아닐까요? 그러려면 세상을 봐야 하고 누군가가 어려워하는 것을 알아야 하며 무엇이 감동을 주는지 알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해 호기심을 갖고 질문을 건네며 그 답변의 순간에 집중하는 일. 리서치의 방법론은 AI가 바꾸어가고 있지만, 리서치를 하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달라지지 않을 겁니다.
경계가 없어지는 시대에는 한 분야에 깊이를 갖고 있으면서 제너럴리스트에 가까운 사람이 조직에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똑똑한 사람은 AI로 대체될 수 있는데 목적의식을 갖고 경계없이 쉽게 포기하지 않고 지속하는 사람은 필요하니까요. 스페셜티를 가진 제너럴리스트라니. 어렵지만 스스로 제너럴리스트라는 생각이 들 땐, 잘하고 있다며 스스로 다독여야겠습니다.
이번 모임을 시작할 때 가장 많은 분들이 기대했던 책이 최재천 교수님의 『통섭의 식탁』인데요. 교수님이 번역했던 용어 중 ‘통섭(Consilience)‘이 있습니다. 당시 한국 IT 업계에서는 이 단어를 두고 인문학을 전공한 개발자를 양성하는 트랙들이 생겼습니다. 융합(Convergence)이라는 단어가 화두였고 시대상에 맞춰 삼성그룹에서도 SCSA 과정을 만들었습니다. 저는 현업자로서 운 좋게 디자인에 대한 특강을 몇 차례 진행했습니다. 그때 인용했던 교수 님의 표현 중 하나가 ‘넝쿨식물’이었는데요. 넝쿨식물이 뿌리를 한쪽에 두고 담을 넘는 것을 표현하며 전공의 경계를 넘어 넘나듦이 필요하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한 우물만 파지 말라”며 관심과 공부에 경계를 두지 말고 넘나드는 사람이 앞으로 일을 지속할 수 있고 그러려면 뿌리와 넘나듦이 ‘통섭형 인재’에게 중요하다는 메시지였습니다.
” 알면 사랑한다 ” – 최재천
책과 함께 나눈 콘텐츠
함께 읽어보면 좋은 콘텐츠 모음
- 류쉐펑, 『복잡한 세상을 이기는 수학의 힘』
- 최재천, 『‘알면 사랑한다’ 위태로운 세계 속 공부의 이유』
- 로저 카우프만 외, 『Needs Assessment: A User’s Guide』(1993)
단체방에서 함께 나눈 이야기들

- 동일 님께서 대화 내용을 토대로 만든 시즌 8 첫 번째 단어장
이번 시즌의 단어장 – 직접 넘겨보는 핵심 키워드 20선
<리서치 하는데요> 시즌 8 첫 모임 대화에서 오간 실무 키워드를 카드로 정리했습니다. 카드를 터치하면 뜻이 펼쳐집니다. AI 시대 직무 트렌드를 포함한 20개를 직접 넘겨보세요.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통섭에 대하여 – 최재천 교수 인터뷰 – 충남 서천, 정식개관을 앞둔 국립생태원은 분주한 모습이었다. 아직 원장실에 손님이 있다고 해서 잠시 기다리는데 불안감이 스쳤다. 오전에 받은 전화 때문이다. “어떡하죠. 원장님 일정이 겹쳤어요. 같이 하셔야겠는데요” 다른 매체에서도 2시에 인터뷰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다른 매체와 인터뷰가 겹치더라도 궁금한 건 다 묻겠노라 다짐하는데 문이 열렸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죠?”
- [팁스터] 유저 리서치와 AI, 실무자 인사이트 엿보기 – 네모난 세상에서 고개를 들고 무지개를 보는 마음 – 아래 글은 제가 ‘팁스터’와 인터뷰한 내용으로 3월 27일, 메일리에서 공개된 내용입니다.
- 트레바리 시즌 7, 네 번째 모임을 마치고 – 책을 들고 집에 가는 길이 내내 행복했으므로 – ‘왜?’라는 이유를 솔직하게 말했을 때, 상대는 왜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시즌 7 〈리서치 하는데요〉의 마지막 모임은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