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넷째 주 금요일 밤이었습니다. 물속을 걷는 듯한 길을 지나 네 시간짜리 독서 모임이라니, 강남 아지트로 향하며 역시 독서모임은 효율과는 거리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 더위에 다들 무탈히 나오실까? 그런 마음은 걱정보다는 기대감에 가깝습니다.
시즌 8의 세 번째 모임이었습니다. 매 시즌을 시작할 때 “가장 기대되는 책”을 꼽아 보는데, 그때 가장 많은 분이 고른 책을 드디어 트레바리 식탁에 올렸어요. 최재천 교수의 『통섭의 식탁』입니다.
발제문을 관통하는 물음은 “통섭이 대체 뭔데요?” 였습니다. 저는 2013년에 저자를 직접 만난 적이 있습니다. 정식 개관을 앞둔 국립생태원 원장실에서 인터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통섭이 무어냐고 물었더니 저자는 시 한 편을 소개했습니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담을 고치며」. 담을 허물자는 게 아니라, 조금만 애쓰면 넘어갈 수 있을 만큼 낮추자는 이야기였죠. 통섭은 넝굴식물이다.
그래서 이번엔 ‘모임을 여는 시‘를 발제문에 넣어 봤습니다. 13년 전에 들은 대답을 13년 뒤 모임의 문 앞에 세워 둔 셈이에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들을 ‘과거의 내가 미래의 나를 구원한다’라고 표현해도 될까요?
오늘은 다섯 갈래의 주제로 모임을 돌아봅니다. (1) 떠밀린 선택, (2) 혼자라면 고르지 않았을 책, (3) 인내심을 잃어버린 시대, (4) “알면 사랑한다”는 말의 사정거리, 그리고 (5) 담을 넘다 넘어지는 일. 그날 함께 대화를 나누며 발제문 여백에 적어 둔 메모를 하나씩 펴 볼게요.
모임에서 함께 나눈 지적 대화의 쿠키들
발제문에 형광펜을 그어 둔 문장들
이번 책에서 메모해 둔 문장 몇 가지를 모았습니다.
- “쥐뿔만큼만 알고 덤빈 것이다. 하지만 일이란 대개 그렇게 시작한다.” (머리말, p.11) – 이 문장 덕분에 마음이 좀 놓였습니다. 대충 시작해도 된다. (끝내는 건 대충 끝내면 안 되겠지만)
- “독서 편식이 확실하게 줄어들었다” (머리말, p.5) – 계획해서가 아니라 서평 청탁에 떠밀려 넓어졌다는 고백. 이 책에서 제일 정직한 대목이 아닐까요?
-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지식의 경계에서 튀는 불꽃이 들풀에 옮겨붙으며 피어나는 산불과도 같다.” (p.67) – 창의성을 타고나는 것으로 두지 않아서 좋았습니다. 재능이 번질 수 있지요.
- “삶은 이렇게 늘 꼬리에 꼬리를 물며 도는가 보다. 진화가 그렇듯이.” (p.39) – 회수가 언제 올지 모르는 일을 계속하게 만드는 것, 달관의 마음.
- “침팬지 사회에서는 무엇을 아느냐보다 누구를 아느냐가 더 중요하다.” – 프란스 드 발. 사람 사는 곳도 별로 다르지 않은 것 같지요?
- “알면 사랑한다.” – 가장 유명하고 또 대화를 관통한 문장.
1. 떠밀린 선택은 누구의 선택일까
저자는 머리말에서 자기 독서가 넓어진 계기를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신문사들이 서평을 청탁하는 통에, 도대체 왜 나한테 이런 책을 평하라는 것인지 황당한 책들을 억지로 읽어야 했다고요. 그런데 그 덕에 편식이 줄었답니다. 계획한 게 아니라 떠밀린 결과였다는 거죠.
첫 번째 북토크 주제였습니다. 떠밀린 선택도 내 선택일까요?
이야기를 듣다가 생각이 많아졌어요. 떠밀렸을 때 떠밀리기로 한 것까지가 내 선택이라면 어떨까요. 지금은 밀려서 이 자리에 왔지만, 원래 하려던 걸 다음에 하겠다는 마음을 품고 그걸 계속 준비해 둔다면요. 그렇다면 떠밀린 선택 안에 떠밀리지 않은 선택도 같이 들어 있는 셈이잖아요.
저자가 그랬습니다. 초등학생 때 시인을 꿈꿨는데 엉뚱하게 이과로 배정됐고, 그 아픔을 오래 안고 살았다고 해요. 그런데 훗날 과학자로 살면서도 인문학을 계속 기웃거렸죠. 꿈이 사라진 게 아니라 데리고 온 겁니다.
” 오히려 보기 드물게도 ‘시인의 마음을 지닌 과학자‘가 되었다. “
최재천, 『과학자의 서재』
데리고 온 것들은 대체로 한참 뒤에 쓸모를 드러내는 것 같아요. 리테일 영업관리에서 퍼포먼스 마케팅으로, 온라인 MD를 거쳐 앱 콘텐츠 기획까지. 이 일 저 일 다 해 본 사람에게는 데이터 뒤에 있는 고객의 마음을 읽는 눈이 생긴답니다. 어떤 광고를 타고 들어왔는지만 봐도 저관여인지 고관여인지 짐작이 되고, 그에 맞춰 화면을 다르게 내줄 수 있고요. 지연 님이 자기 커리어를 두고 한 얘기인데, 저는 이게 통섭의 가장 실용적인 정의 같았습니다.
소희 님은 어린 시절부터 저자처럼 꿈이 너무 많았다고 적으셨어요. 2년 전 이직을 준비할 때는 어머니에게 프로파일링 학원에 다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가 이런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너는 무슨 꿈을 초등학생처럼 꾸니?” 초등학생처럼 꿈을 꿀 수 있는 힘을 가진 소희 님을 응원합니다.
저도 업종을 몇 번 바꿔 왔습니다. 그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어요. 이건 내가 고른 게 맞나. 나는 이직을 할 때 어떤 것을 고려하는가? 이런 고민을 담아 쓴 글도 하나 있습니다. 모임을 마치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언제나 내가 선택하는 건 맞는데 그 순간에 다 고르지 못했을 뿐이라고요. 남은 건 다음에 고르면 되니까요.
- 이직의 조건 4Cs – 보상, 동료, 기회, 문화로 판단하기
2. 혼자라면 고르지 않았을 책
이 책의 중심에는 기획 독서가 있습니다. 기분과 취향으로 고르는 취미 독서 말고, 잘 모르는 분야의 책을 일부러 골라 씨름하는 독서요.
3년 전에 전자책으로 사 두고 중간에 멈춰 있던 책. 핸드폰이 세 번 바뀌는 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꽂혀 있다가, 이번 달 지정 도서로 뜬 걸 보고 놀랐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이 장면이 기획 독서라는 말보다 훨씬 정확하다고 느꼈어요. 우리한테 없는 건 목록이 아니잖아요. 목록을 열게 만드는 계기가 없는 거죠.
” 취향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취향이 만든 울타리를 가끔 넘어보라는 말 “
송동일 님
물론 울타리 너머가 늘 즐거운 건 아닙니다. 지루한 대목에서 “아, 오이 같은 챕터네” 싶었다는 말에 다들 웃었어요. 호준 님이 붙인 이름인데 그날 내내 회자됐습니다. 참고로 저도 오이를 못 먹습니다. 이 책에 오이 같은 챕터가 몇 개 있었느냐고는 묻지 말아 주세요……
” 진수성찬처럼 차려진 밥상 앞에서 한 가지 반찬으로만 먹는 것 “
조소희 님
편식이 어려운 건 취향 때문이 아니라 관성 때문인 것 같아요. 익숙한 쪽으로 손이 가는 데는 힘이 안 드는데, 낯선 쪽으로 손을 뻗으려면 매번 결심이 듭니다. 저부터도 손이 닿는 책은 대개 일과 관련된 편안한 아티클이거나 머리 비우고 읽는 소설이고요. 그래서 질문을 좀 바꿔 봤습니다. 다른 우물을 파려면 뭐가 있어야 할까?
제가 트레바리를 계속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혼자라면 안 읽을 책을 함께 읽고 가자는 마음이요. 혼자였다면 절대 안 골랐을 책을 매달 한 권 읽고, 독후감을 쓰고, 금요일 밤에 네 시간 가까이 모여 떠듭니다. 여기엔 장치가 두 개 있어요.
- 강제성: 독후감을 써야만 모임에 올 수 있습니다. 마감이 있는 셈이죠.
- 연결성: 나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 마감 안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옵니다.
이 두 가지가 있는 자리에 나를 자꾸 갖다 두는 것. 제가 찾은 기획 독서의 실행 방법은 그게 전부입니다. 별거 없죠?
3. 우리는 인내심을 잃어버리도록 진화한 걸까
기획 독서가 어려운 진짜 이유는 좀 다른 데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효능감을 좇느라 인내심을 잃어버리도록 진화한 건 아닐까요.
많은 직장인이 점심시간에 소개팅을 한다고 하죠. 저녁을 통째로 걸지 않으니 손실이 적고요. 낯선 사람을 만나느니 집에서 넷플릭스를 봅니다. 새로운 시도가 설렘을 줄 수도 있지만 실망할 확률이 낮은 쪽, 실망해도 쉽게 회복할 수 있을 만큼만 담을 넘습니다. 보상은 확실하게, 회수는 짧게, 위험은 낮게. 여기에 안 맞는 일들은 자연스럽게 뒤로 밀립니다. 그러고 보면 이 여름에 『통섭의 식탁』을 붙들고 앉아 있는 건 꽤 비효율적인 일이에요. 그런데 결정적인 경험은 모두 안전지대를 벗어나야 생기는 것 같습니다.
메뉴판을 보고 시키면 좋아하는 순서대로 고르게 되는데, 코스나 오마카세에서는 의외의 요리를 만나 인생 메뉴가 되기도 합니다. 계산하지 않고 앉아 있었기 때문에 만난 접시인 거죠.
” 삶은 이렇게 늘 꼬리에 꼬리를 물며 도는가 보다. 진화가 그렇듯이. ” (p.39)
최재천, 『통섭의 식탁』
4. 알면 사랑할까, 어디까지 알아야 할까
저자가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닌다는 문장, “알면 사랑한다“로 두 번째 북 토크를 열었습니다. 책에서 몇 번이고 되풀이되고 독후감에서도 자꾸 마주친 문장인데, 같은 말이 놓인 자리가 저마다 달랐어요.
감기 몸살로 한의원에 갔더니 가슴 명치 쪽 근육이 뭉쳐 있다고, 그게 분노와 연결된다고 하더랍니다. 민정 님은 거기서 잘 모르면서 누군가를 판단하고 미워했던 자신을 떠올렸어요. 미움이 돌고 돌아 결국 내 몸에 자리를 잡는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식탁 위 전갈을 보고 저자에게 폭언을 퍼붓던 대학원생이 몇 달 뒤 새끼를 등에 업은 전갈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현지 님은 알면 사랑한다는 말을 사랑을 중심으로 물었습니다. 안다는 게 언제나 사랑으로 이어지는가? 그렇지. 어떤 앎은 불편함을 남기고, 차라리 몰랐던 편이 나았겠다 싶게 만들기도 하니까요.
안다고 다 사랑이겠는가? 지하철 문이 열리기 전에 타며 가방으로 나를 툭 치는 사람에 대해 저는 별로 궁금하지 않거든요. 더 진지하게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누어보면 문제가 가볍지 않습니다. 해를 입은 쪽이 해를 끼친 쪽을 이해하면 용서에 이를까요? 그 용서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또 하나의 폭력은 아닐까요? 알면 사랑한다는 말은 표어로 쓰기엔 참 아름다운데, 문장 하나로 닫아 두기엔 앎과 사랑 사이가 생각보다 먼 것 같습니다.
지영 님의 다이어리 맨 앞장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 대충 알고 좋아하고, 다 알고 싫어하자. “
김민경 편집자
좋아할 땐 얕게 알아도 너그럽게 애정을 보내고, 싫어할 땐 충분히 깊이 이해한 뒤에 판단하자는 뜻이라고 해요. 알면 사랑한다는 말의 뒷면을 정확히 짚습니다. 다 알고 나서 싫어하는 것도 앎의 결과니까요.
그러다 앎 다음의 사랑을 생각해봅니다. 책도 요약본으로 읽고 영상도 1.5배속으로 넘기는 시대에 사랑은 뭘까요. 사랑은 굳이, 그렇게까지, 효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방식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가장 효율적인 사랑‘이라는 말은 아무래도 잘 안 어울리죠?
논리로 밀어붙이는 사람 앞에서 제일 현명한 답은 “그래, 네 말이 맞아”일까요. 그날 제가 얻은 답은 좀 달랐습니다. 논리를 이기는 건 다정함이더라고요. 다정함은 악의 없는 무례까지 이깁니다. 이기려 들지 않으면서 이기는 방법이라서요.
저자가 자연에서 배우는 첫 지혜로 상호허겁을 꼽는데, 지영 님이 이 대목을 서비스 쪽으로 끌어와 주셨어요. 서로를 적당히 두려워하며 예의를 갖추는 상태요. 생명체들은 힘의 균형을 깨고 혼자 다 거머쥐려 하지 않기 때문에 평화를 지킵니다. 사용자를 깊이 알게 될수록 우리는 갈림길에 서요. 그 앎으로 약점을 파고들 수도 있고, 경계와 예의를 지키는 쪽으로 갈 수도 있습니다. 알면 사랑한다는 말이 리서처에게 저절로 성립하진 않더군요. 앎을 어느 쪽에 쓸지는 매번 고르는 일입니다.
5. 담을 넘다 넘어져도
모임을 여는 시 「담을 고치며」에는 상반된 문장이 두 번씩 나옵니다. 담을 좋아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는 화자의 말과,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이웃의 말. 시는 끝까지 어느 편도 들지 않아요. 누가 맞고 틀린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재미있는 건 담을 못마땅해하는 쪽이 화자인데, 봄마다 먼저 기별을 넣어 담을 고치자고 부르는 사람도 화자라는 점이에요. 두 사람이 일 년에 만나는 날이 하필 담을 고치는 날입니다. 담이 없었다면 이 둘은 만날 일도 없었겠죠.
그러니까 저자가 말하는 통섭은 담을 완전히 허물어 하나로 합치는 융합이 아니에요. 각자의 영역에 담은 남겨 두되 그 담을 낮추어 양쪽을 넘나드는 쪽에 가깝습니다. 통섭에 대한 저자의 비유가 넝쿨식물이었어요. 뿌리는 한쪽에 두고 담을 넘어가는 식물이요. 멀리서 보면 어디가 시작인지 잘 구분이 안 되죠.
이 이야기가 커리어 쪽으로 옮겨 오면 이렇게 됩니다. 언제든 새로운 분야를 배워 다른 직업으로 옮겨 탈 준비를 하고 대학 문을 나서라는 저자의 말은 AI가 스며든 시대에도 유효해 보입니다. 개발자와 디자이너의 경계가 사라진다던 지난 모임의 이야기와도 겹치고요. 호기심이 먼저 오고, 노력과 시간이 쌓이고, 어느 순간 확 증폭되는 때가 온다는 것. 학습이 계단식이라는 말처럼, 통섭도 그러하겠지요?
다른 동네 이야기도 나왔어요. 런던의 유치원은 수업에 낙엽이나 열매, 나뭇가지를 반드시 쓰고, 아이들은 자기 집 정원에 어떤 식물이 있는지 다 안다고 합니다. 그곳에 다녀온 해린 님이 남긴 문장이 오래 걸렸습니다.
” 나에게 동물이 사람에 지친 마음을 아주 잠깐 기대는 창구였다면, 그곳 사람들에겐 자연이 딱히 특별할 것도 없이 매일의 배움과 생활 안에 그냥 있었다. “
장해린 님
보러 가야 하는 것과 그냥 곁에 두고 사는 것. 담이 애초에 낮은 동네에서는 넘나든다는 감각조차 필요 없는지도 모르겠어요. 이런 사회를 선진국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요? GDP, 실질소득, OECD 평균 대비라는 정보는 생활반응과 거리가 멀잖아요. 우리 집에, 아파트 단지에 있는 나무가 어떤 것이고 언제 꽃이 피는지를 아는 사회가 더 진화한 사회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다른 업종, 다른 지역, 다른 사람들과 일하는 건 낯선 도시에 혼자 여행 가는 일과 닮았습니다. 여행이 나를 발견하는 방법이라면 이직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여행처럼 돌아올 표가 있는 건 아니지만요. 이직보다는 편도로 티켓을 끊고 낯선 도시로 여행을 떠나는 편이 더 자주, 빨리 시도해볼 수 있는 방법인 건 분명해 보입니다.
담을 넘다 보면 넘어집니다. 넘어지는 게 실패처럼 보이지만, 넘어졌다 일어날 때 손에 뭐가 하나 잡혀 있기도 하더라고요. 그걸 주워서 일어나도 되고, 일어나면 그 담을 다시 넘어 볼 수도 있고요. 담을 같이 넘으면 밑에서 들어주고, 위에서 당겨주니 넘기 더 쉽기도 하지요. 담을 같이 넘나드는 사람을 찾아보고 그들에게 안부를 전해야겠습니다.
” 일어나지 않으면 담은 끝입니다. 일어나면 담은 새로운 출발선이 됩니다.“
경계가 있으면 다음이 있는 것 같아요. 넘을 담이 없으면 넘어가는 일도 없으니까요. 그러니 물어볼 건 담을 없애느냐가 아니라 멈출 것인가 넘을 것인가겠죠. 하나 더 있다면, 내 담장이 남이 넘어올 만큼 낮은가 정도. 너무 방어적이지는 않은지, 너무 계산적이지는 않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너무 비장할 필요도 없습니다
통섭이라는 말은 어렵게 들립니다. 학문의 경계를 넘고 지식을 통합한다니, 뭔가 단단히 마음을 먹어야 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정작 저자 본인은 자기 시작을 이렇게 부릅니다. 쥐뿔만큼만 알고 덤빈 것. 그러면서 일이란 대개 그렇게 시작한다고 덧붙여요. 이 대목에서 좀 웃었습니다.
치열함만으로는 오래 못 합니다. 그날 나온 비율이 고통 5.5 대 힘빼기 4.5였어요. 55퍼센트는 치열하게 버티며 깊이를 쌓고, 나머지 45퍼센트는 힘을 빼고 유연하게 넘어가야 지치지 않는다는 계산입니다. 지연 님의 배분인데, 저는 이 소수점 하나가 그렇게 마음에 들 수가 없었습니다. 5 대 5도 아니고 6 대 4도 아니고 5.5라니.
대충 이것저것, 심각하지 않게, 가볍게 툭 시도해 보기. 그리고 계속해 보기. 넘어지면 또 해 보기. 아니면 말고, 그래도 넘어지면 다시.
나를 아는 일도 그렇게 해볼까요? 회사에서의 나, 가족 안에서의 나, 친구들 사이의 나. 그게 다 나이긴 한데 자리마다 그 자리에 있으며 추구하게 되는 선망, 압력 같은 게 있잖아요. 그 압력에서 떨어져 나와도 그대로 남는 관심과 애정. 그게 나에 가깝지 않을까 싶습니다.
제가 쓰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시간이 생기면 하고 싶은 것들을 적어 두는 것. 목록이 쌓이면 두 종류로 갈립니다. 시간이 지나면 사라지는 것, 그리고 삼각지에 모래 쌓이듯 계속 쌓이는 것. 요즘은 사라지는 것 말고 쌓이는 쪽을 들여다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요?
당신은 요즘 어떤 우물을 파고 계신가요? 아니면 어느 담 앞에 서 계신가요?
8월에는 시즌 8의 마지막 모임을 안국에서 갖습니다. 앤드루 그로브의 『편집광만이 살아남는다』를 함께 넘어요. 이번 시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책은 무엇이었는지도 같이 나눠요. 다음 모임에서도 상호허겁의 마음으로 잔잔하지만 단단하게.
” 알면 사랑한다 “
최재천
책과 함께 나눈 콘텐츠
알아두면 쓸모있는 것들
모임에서 오간 개념을, 처음 듣는 분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짧게 풀었습니다. 더 알고 싶을 때를 위해 각 용어에 공신력 있는 자료를 연결해 두었어요. 굵게 표시된 용어를 누르면 새 창에서 열립니다.
- 통섭(Consilience): 갈라진 학문을 잇는 ‘함께 넘나듦(jumping together)’. 에드워드 윌슨이 1998년 저서에서 제시했고, 최재천 교수와 장대익 교수가 2005년 한국어판에서 ‘통섭’으로 옮겨 알렸다. 어원은 19세기 윌리엄 휴얼이 쓴 표현이다.
- 기획 독서: 기분과 취향으로 고르는 취미 독서와 달리, 부족한 분야를 일부러 골라 읽는 방식.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제안이며, 저자는 통섭형 인재의 조건으로 꼽는다.
- 상호허겁(相互虛怯): 자연의 생명체들이 서로를 적당히 두려워하며 예의를 갖추는 상태. 힘의 균형을 깨고 혼자 다 거머쥐려 하지 않기 때문에 평화가 유지된다는 관점이다.
- 「담을 고치며」(Mending Wall): 로버트 프로스트가 1914년 시집 North of Boston에 실은 시. 담을 고치자는 이웃과, 담이 왜 필요한지 되묻는 화자가 등장한다. 저작권이 만료된 원문에서 이번 모임을 위해 새로 옮겼다.
- 요리 가설(Cooking Hypothesis): 불로 익힌 음식이 소화에 쓰던 에너지를 아껴 뇌 발달로 돌릴 수 있게 했다는 리처드 랭엄의 가설. 책이 하필 식탁이라는 비유를 쓰는 배경이기도 하다.
식탁에서 각자 담아 간 접시 – 다음에 읽을 책들
56권의 목록에서 다음에 읽을 한 권을 집었습니다. 이 목록 자체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셈이에요.
- 매트 리들리, 『이타적 유전자』 – 이기적 유전자를 가진 인간이 어떻게 협동하고 신뢰를 얻으려 하는지. ‘맞대응(tit for tat)’ 대목이 오래 남았다고 (동일 님)
- 로랑 켈러·엘리자베스 고르동, 『개미』 – 개미 한 마리는 전체 지도를 모르는데 집단은 최단 경로를 찾는다. 정보를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왜 더 어리석은 결정을 하는지와 비교해 볼 만하다고 (동일 님)
- 제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 역사를 역사과학처럼 읽어 낸 책 (동일 님)
- 조나단 와이너, 『핀치의 부리』 / 제임스 왓슨, 『이중나선』 / 『마야: 소설로 읽는 진화생물학』 (소희 님)
- 천종식, 『고마운 미생물, 얄미운 미생물』 – “코끼리는 피할 수 있어도 파리는 피할 수 없다”는 속담을 일의 디테일에 관한 문장으로 다시 읽어 주신 (호준 님)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통섭에 대하여 – 최재천 교수 인터뷰 – 2013년 국립생태원 원장실에서 나눈 대화. 이 글의 넝쿨식물과 「담을 고치며」가 여기서 왔습니다.
- 트레바리 시즌8, 두 번째 모임을 마치고 – 그럼 나 이제부턴 양발잡이야 – 데이비드 엡스타인 『늦깎이 천재들의 비밀』을 읽고 한 우물과 여러 우물 사이를 오간 직전 모임의 기록. 이번 책의 기획 독서와 정면으로 포개집니다.
- 트레바리 시즌8, 첫 번째 모임을 마치고 – Jumping Together – 시즌의 문을 연 모임. 이번 책이 ‘가장 기대되는 책’으로 꼽힌 자리이기도 합니다.
- 트레바리 시즌7, 세 번째 모임을 마치고 –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에도 지키려는 품위에 대하여 – 비효율을 택하는 마음을 품위라는 단어로 정리했던 글.
출처
- 통섭의 식탁 – 최재천, 명진출판(2012) / 움직이는서재 재출간(2015, 360쪽). 부제 ‘최재천 교수가 초대하는 풍성한 지식의 만찬’. 신문 기고 서평 56편을 코스 요리로 엮은 책. 페이지 표기는 명진출판 원판 기준.
- 통섭(Consilience) – 에드워드 윌슨 Consilience: The Unity of Knowledge(1998), 한국어판 최재천·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2005). 어원은 윌리엄 휴얼.
- 「담을 고치며」 – Robert Frost, “Mending Wall”, North of Boston(1914). 저작권이 만료된 원문을 이번 모임을 위해 의역해서 옮김.
- 요리 가설 – Richard Wrangham, Catching Fire: How Cooking Made Us Human(2009).
- “침팬지 사회에서는…” – 프란스 드 발(Frans de Waal). 『통섭의 식탁』에 인용된 문장.
- 2013년 인터뷰 – 서천 국립생태원 정식 개관 전 원장실에서 진행. 전문은 redbusbagman.com/consilie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