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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리 시즌 7, 네 번째 모임을 마치고 – 책을 들고 집에 가는 길이 내내 행복했으므로

트레바리 시즌7 마지막 모임 단체사진 - 안국아지트 302호에서 『왜의 쓸모』를 들고 함께한 멤버들의 모습
트레바리 시즌7, 마지막 모임 📚 ©REDBUSBAGMAN

1월부터 4월까지, 한달은 기다리게 했던 잔잔하지만 단단한 모임을 마치고 쓰는 이야기입니다.

‘왜?’라는 이유를 솔직하게 말했을 때, 상대는 왜 그것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을까요? 시즌 7 〈리서치 하는데요〉의 마지막 모임은 그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사회학 거장, 찰스 틸리가 생애 마지막에 쓴 『왜의 쓸모』를 함께 읽었습니다. 안국아지트 302호의 창으로 들어오는 봄 햇살 아래, 우리는 동료 사이의 거리, 같은 말이 다르게 들리는 이유, 인터뷰의 말과 행동, 공유와 통보의 차이를 차례로 짚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제 우리는 한 시즌을 마무리하는 자리답게, 처음 모였을 때 우리가 무엇을 가졌고 지금은 무엇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천천히 더듬었습니다.

트레바리 시즌7 마지막 모임 장소 - 안국아지트 302호 창문 너머 한옥 기와지붕과 해질녘 인왕산 풍경
다행히 재배정을 받은 안국아지트 302호. 서원 님이 남겨준 사진에 궁궐과 인왕산이 한눈에 들어왔다. ©REDBUSBAGMAN

매 시즌을 구성할 때마다 의식적으로 평소 혼자라면 읽지 않을 것만 같은 책을 하나씩 넣고 있습니다. 편독을 하지 않는 습관을 갖는 것을 함께 연습할 수 있으니까요. 시즌 7에서도 우리는 같은 책을 읽고 다르게 생각하는 시간을 거쳐 마지막엔 안국아지트에 모였습니다. 사회학개론에서 읽을 법한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겨울에서 봄으로 계절이 바뀌는 동안, 비효율로 시작했던 시간이 어느덧 일상의 한 칸이 되었다는 사실에 새삼 감사합니다.

1. 드라이하지만 나이스하게 – 동료 사이의 태도

우리는 ‘드라이하지만 나이스하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감정을 섞지 않으면서도, 상대에게 해야 하는 책임은 다하는 것. 그가 나의 취향이나 가치관에 꼭 맞지 않더라도 일에 관한 나의 소임은 모두 해내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회의에서 마주할 상대를 모르는 채로 일의 환경을 선택합니다. 업계, 회사, 팀, 그리고 나의 일. 팀의 구성에 대해 많은 정보를 알고 합류하더라도 변수는 늘 존재합니다. 조직개편, 새로운 리더의 부임, 가까운 동료의 퇴사, 예상하지 못한 이의 입사. 더 이상 대화를 이어 가고 싶지 않은 순간에도,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은 반복이라는 마음으로 ‘드라이하지만 나이스하게’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감정을 담지 않는 대신, 책임은 끝까지 진다. 드라이함은 차가움이 아니라, 일을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스스로 의식적으로 관리하는 거리감이다.

2. 메시지와 메신저 – 같은 말이 다르게 들리는 이유

같은 이야기라 하더라도, 신뢰하는 사람의 말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말은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 객관적인 피드백이나 개선점에 대한 리더와 동료의 이야기에 상처받은 적이 있다면, 상대가 하는 말(메시지)과 상대 자체(메신저)를 구분하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메시지와 메신저를 나누고, 관계와 이유를 분리해 생각하는 것이지요.

안타깝게도, 사용자는 우리가 만든 제품을 굳이 이해하려 들지 않습니다. ‘이해할 준비’보다는 ‘오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상태를 가정하고 커뮤니케이션을 설계하는 편이 현실에 더 가깝습니다. 다소 냉소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덕분에 나를 지지해 주고 개선할 점을 짚어 주는 동료들의 소중함을 더 또렷하게 체감하게 됩니다. 서로의 애씀을 알아주는 동료는, 일을 이어 가는 데 가장 단단한 구심력이 됩니다.

3. 말과 행동 – 인터뷰의 진실은 어디에 있는가

사용자 경험을 설계할 때에는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30분의 인터뷰, 3만 원의 리워드를 제공하는 자리에서 상대가 하는 말은 진실에 가까울까요? 아니면 그 시점에 상대에게 그럴듯하게 들리는 ‘내러티브’에 가까울까요?

인터뷰이의 목적은 보통 세 가지입니다. ① 3만 원의 리워드를 받는 것, ② 앞으로도 리서치 패널에 남아 다음 기회에 다시 참여하는 것, ③ 그러기 위해 인터뷰어와 Zoom에서 카메라를 끄고 함께한 진행자들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는 것. 이 세 가지가 충족되는 한, 그가 가장 안전하게 선택하는 답은 진실이 아니라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내러티브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아야 합니다. 그가 말한 것이 실제와 일치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최근 검색했던 것·구매했던 것·기록했던 것을 로그나 스크린샷으로 미리 확보하는 선제적 노력이 필요합니다. 인터뷰가 끝난 뒤에도, 그 리서치와 무관한 듯 다시 질문을 던져 필요한 데이터를 얻는 후행적 노력을 함께 해야 합니다. 리서치도, 커뮤니케이션도, 일련의 소프트 스킬의 핵심은 결국 반복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오늘 무엇을 반복하고 있을까요?

5. 공유와 통보 – ‘틈’을 허락하는가

공유와 통보는 무엇이 다를까요? 저는 대화 속에서 ‘상대의 틈을 허락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정리했습니다. 의견을 구하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틈을 두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공유하는 듯한 커뮤니케이션은 결국 통보일 뿐이고, 대부분의 경우 역효과를 냅니다. 상대가 피드백을 준비했는데 일이 이미 진행 중이라면, 그 사람은 당황을 거쳐 분노와 실망에 이릅니다.

틈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일을 완벽하게 하려고 어깨에 힘을 잔뜩 주고 긴장한 상태로는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면, 내가 혼자 완벽을 기하려 해도 결국은 조직이 함께 하는 일입니다. 동료의 지지를 얻어야만 일이 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어깨에 힘을 좀 빼고 일해도 괜찮습니다.

정말 잘하려면 어깨에 힘을 툭 빼고 해도 된다. 처음에 힘을 주고 하면 오래할 수 없다. 나다운 것을 해야 오래할 수 있는데 나다운 것에는 힘이 덜 들어간다. 굳이 보여주겠다고 과장하지 않고, 내가 즐거운 것들만 지속할 수 있다. 그런 일을 하고 있나요?

5. 7번째 시즌을 마치며 – 크리스마스 다음 날의 마음

트레바리 시즌7 마지막 모임 - 안국아지트 302호 외부 야경, 환하게 켜진 창문 너머 모임 중인 멤버들의 실루엣
오래오래 생각날 시즌7 — 해린 님이 남겨주신 밖에서 올려다본 그날 밤의 창문. ©REDBUSBAGMAN

집에 가는 길이 내내 행복했습니다. (그런 마음을 Closing에서 전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리서치 하는데요>는 ‘운동’이나 ‘청소’와 닮았습니다. 시작하기 전에는 비효율적이고 귀찮게 느껴지지만, 끝나고 나면 ‘이런 대화를 어디에서 또 나눌 수 있을까?’라는 설렘이 자정을 넘어서까지 이어졌습니다. 같은 책을 읽고 나누는 지적대화의 경험은 1.5배속, 2배속으로 요약된 남의 콘텐츠에서는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마지막 모임의 회고를 쓰는 지금, 마음속에는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뒤섞여 있습니다. 아직 24시간도 지나지 않은 어제 모임의 Closing. 모임을 준비했던 시간과 그곳에 남겨 둔 기억, 안국에서 판교역까지 함께 들은 음악, 모임에 대해 남겨 주신 후기까지.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던 아이가 12월 26일 아침에 느끼는 기분을, 지금 제가 느끼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침 어제 안국역에서 판교까지 이동하며 함께 들은 플레이리스트가 던워리비햇 님의 크리스마스 플리였던 것도 우연이 아닐 겁니다.

누군가의 이야기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는 일, 이해관계가 엮이지 않은 상태에서 상대의 새로운 시작을 무한히 응원하는 마음, 눈을 마주쳤을 때 상대가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들. 오래 고민해 오던 것을 이 모임에서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분들의 모습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슬픔이 오는 것이라면, 그 슬픔도 감사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흘러가는 대로 살지 않도록, 애틋한 마음으로 한 달을 살게 하는 설렘 4시간을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언제고 어디서고 다시 만나면, 제가 먼저 반갑게 인사드리겠습니다.


Key Takeaways

  • 드라이함은 거리두기가 아니라 책임의 다른 이름이다 – 감정을 섞지 않는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일을 끝까지 끌고 가기 위한 자기 보호이자 동료에 대한 예의입니다. 변수가 많은 조직에서 오래 일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기도 합니다.
  • 메시지와 메신저를 분리하면, 피드백이 정보가 된다 – 같은 말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들립니다. 메신저에 대한 감정을 분리하면, 메시지 안에 들어 있는 정보가 비로소 보입니다. 사용자에게도 마찬가지로, ‘이해할 준비’보다 ‘오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가정하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 말은 내러티브, 행동은 데이터 – 인터뷰이의 발언은 그 자리에서 가장 안전한 답입니다. 진실에 다가가려면 검색·구매·기록 같은 행동 데이터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선제적 자료 확보와 후행적 확인의 반복이 리서치의 정확도를 만듭니다.
  • 공유와 통보를 가르는 것은 ‘틈’이다 – 상대의 의견이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여지가 있을 때만 공유입니다. 그 여지가 닫혀 있다면, 형식이 어떻든 통보입니다. 일이 되게 하는 힘은 결국 동료의 지지에서 나옵니다.

Q. 한 시즌을 마치고 다음 시즌을 기다리는 마음은 무엇일까?

A. ‘이유‘가 아니라 ‘관계‘가 남기 때문입니다. 효율의 언어로 환산되지 않는 4시간의 대화가, 한 달을 흘러가게 두지 않는 닻이 됩니다. 비효율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모일 때, 거기에서 새로 시작하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설렘입니다. 이런 귀한 분들과 시절인연을 맺을 수 있음에 감사합니다. 우린 또 어디선가 다시 만날테니까!


📖 이 글에 영감을 준 문장

“이유와 관계는 불일치할 때 훨씬 더 명확히 드러난다.” (p.107)

모임에서 함께 나눈 콘텐츠 모음

청계천 책 읽는 야외도서관 - 봄날 양쪽 산책로에 분홍 양산과 의자가 놓이고 시민들이 책을 읽는 풍경, 빌딩숲을 배경으로 한 도심 속 독서 공간
청계천 책 읽는 야외도서관. 봄에서 가을까지, 도심 한복판에서 책을 펴는 일이 가능한 자리. ©REDBUSBAG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