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버스에 가방을 메고 탑니다
dark mode light mode NEWSLETTER Menu

트레바리 시즌9, 첫 번째 모임을 마치고 – “토끼풀에서 행운을 찾아 책 한켠에 껴두는 마음으로”

트레바리 〈리서치 하는데요〉 시즌 9 첫 번째 모임에서 참가자 10명이 홍진기의 『사고외주』를 들고 촬영한 단체사진
트레바리 〈리서치 하는데요〉 시즌 9 첫 번째 모임. 함께 읽은 책은 홍진기의 『사고외주』 ©REDBUSBAGMAN

두 달 만의 트레바리 모임이었습니다. 그리고 4년 차에 접어든 독서모임. 우리는 어김없이 금요일 밤, GBD의 중심에 모여 생각하지 않는 인간의 출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8월 마지막 금요일에 이어 10월 마지막 금요일에도 안 해본 생각을 하고 집에 갈 수 있기를 바라며 신분당선을 타고, 책을 다시 읽으며 강남역에 도착했습니다.

트레바리에서 시즌제로 모임을 4년째 이어오면서 몇 가지 변화가 있었습니다. 개인적 차원의 변화와 환경적 변화가 동시에 있었는데 개인적 변화는 다른 글에서 다루기로 하고 제가 인식한 세상의 변화는 이러했습니다.

트레바리 강남 아지트 층별 모임 안내판. 5층 504호에 ‘리서치 하는데요’가 표시되어 있고, 다른 층에는 대관·커뮤니티·이벤트 일정이 안내되어 있다.
금요일 저녁, 강남 아지트의 층별 모임 안내. 클럽장이 있는 독서모임은 〈리서치 하는데요〉뿐이었다. ©REDBUSBAGMAN
  1. 트레바리에서 시즌제로 운영하는 클럽장 있는 클럽이 거의 없어졌다.
    • 매달 새 멤버를 모집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클럽이 대부분이었고, 4개월 동안 동일한 멤버 구성으로 진행하는 ⟨리서치 하는데요⟩와 같은 클럽은 거의 사라진 것 같다. 멸종위기클럽. 아무래도 한 번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쉽게 그만두고 다른 클럽을 선택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매달 롤링이 되는 방식이 갖는 장점도 있다. 10명의 최소 인원이 모집되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다는 점은 클럽을 지속하기 위해 유리한 선택이기도 했다.
    • 그럼에도 나는 시즌제로 모임을 이어가고 싶었다. 4개월 동안 무형의 공동체로서 무언가를 같이 한다는 느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 달의 모집 기간을 갖고 시즌 9를 10월에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9월에 시작하려던 일정이 10월로 미뤄졌는데 7분이 각자의 사정으로 모임을 취소했다. 한 달의 모집 기간을 갖는 것이 결과적으로 더 많은 멤버를 모집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잘 모르겠다. (10월로 미뤄진 모임을 기다렸다 함께해 주신 창준, 수아, 민정 님 고맙습니다!)
    • 변화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 모임 방배정 안내였다. 시즌 1을 시작한 2023년부터 금요일 저녁에 모임을 진행해 왔는데 트레바리 강남 아지트는 여러 클럽들로 북새통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이 오래 걸려 8층에서 모임을 해도 걸어서 올라가는 걸 선호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제 모임에서는 클럽장 있는 클럽은 우리 모임이 유일했다. 나머지는 이벤트, 커뮤니티, 대관이었다. 금요일 저녁 강남 아지트에서 열리는 하나의 클럽장 있는 모임이 ⟨리서치 하는데요⟩라니. 오래 이어왔다는 생각과 함께 앞으로 나는 어떤 모임을 설계해야 할까?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2. AI도 결국 하나의 흐름이다. 파고가 높아 모든 것을 다 집어 삼킬 것만 같아도 그 다음에 또 다른 파고가 있기 마련이다. 스냅샷이 아니라 전체를 봐야 한다. 4차 산업혁명, 피그마가 화두일 때는 그게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피그마는 왜 이기는가?는 지금의 피그마 주가를 이야기하지 못한다. 피그마 없이 디자인하는게 더 나아보이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말았다.
    • AI에 대한 관심은 여전하나, 이제는 어떻게 더 잘 AI를 쓸 것인가? 이외에 어떤 영역에서는 AI를 잠시 멈춰두고 생각을 해야 할까? 대화를 나눠야 할까?를 생각하고 싶은 사람들이 늘어났다.
    • 매 시즌의 첫 번째 책을 고를 때 가장 고민이 깊어지는데 똑똑한 무능함, 배우지 않는 똑똑함이 넘쳐나는 시기에 어디까지 생각을 외주할 것인가?에 대해 서늘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고른 이 책은 아주 가볍지만 묵직했고 다행히 멤버들의 독후감을 읽으며 이 책이 주는 메시지는 우리 안에 공유되는 것을 발견했다.
    • 과정 없이 결론만 얻는 것에 대한 헛헛함, 휘발되는 지식은 앎의 기쁨과 효능감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우리는 4개월 동안 비효율적인 과정과 굳이 안 해도 되는 사고를 함께하며 AI가 스며든 시대에 사고는 직접, 필요한 나머지 작업은 외주하기를 바란다.

9번째 시즌에서 함께 읽는 책 4권

  1. 홍진기, 『사고외주』
  2. 이-푸 투안, 『공간과 장소』
  3. 김가지, 『저 청소일 하는데요?』
  4. 김신지, 『제철 행복』

9번째 시즌 첫 모임을 마치고

  • (1) HR, 프로덕트 디자인, 기획자, 연구원 직군으로 구성되어 있다
  • (2) 가장 많은 멤버가 꼽은 기대되는 책은 첫 번째 모임의 『사고외주』였다
  • (3) AI를 전보다 더 많이 사용하는데, 일이 줄지는 않았으며 직무 간 경계는 모호해졌다. 개발자가 디자인, 기획서에 대해 더 많은 크리틱을 하고 거꾸로 디자이너가 제품을 출시하기도 한다
  • (4) AI를 덜 쓰자는 것이 아니다. 잘 쓰자는 쪽이다. 잘 쓰려면 계속 쓰는 게 아니라 필요할 때, 적절하게 써야 한다. “다듬어줘”, “다시 다듬어줘”, “이거 확실해?”라는 질문을 던지면 던질 때마다 에이전트는 새로운 답을 제시한다. 그럼 그게 더 나은 답일까? 구조를 기획하지 않고 일을 하면 뼈대가 약한 건물이 만들어진다. 게다가 토큰과 사용량의 최적화도 비용 관점에서 중요하다. 계속 묻고, 여러 서브 에이전트를 돌릴수록 자원의 최적화 문제에 빠진다. 대화를 잘하는 사람은 말을 할 때와 들을 때를 구분한다. AI를 잘 쓰려면? 쓸 때와 직접 생각해야 할 때를 구분해야 한다.
  • (5) 최적화에 관하여. 어떻게 하면 내가 하는 업무를 최적화할 것인가? AI를 통해 생산성을 300%, 300배 늘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떤가? 뒤처지는 것 같고 나도 클로드 Max 요금제를 쓰며 맥미니 3대를 들여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FOMO에 가깝다. 내가 하는 일을 프로세스화하고 그 안에서 AI 도구를 쓸 때 효과적인 부분, 반복적이고 데이터를 통합하거나 클렌징하고, 매일 같은 키워드로 검색을 하고, 번역을 하는 등의 동일한 방정식으로 할 수 있는 업무들부터 효율화해야 한다. 아이디에이션, 리서치, 기획에서 일부 도움을 받을 수도 있지만 정말 결정적 결과물을 만들려면 직접 고민해야 한다. 디테일과 취향을 따져야 한다. 사용자를 만나봐야 한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 때에는 더욱더 그러하다. 월 구독료를 더 내고 더 많은 토큰으로 더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작업을 시킬 수 있겠으나 그걸로는 충분하지 않다. 결정적 경험과 감동이 있는 것들에는 그걸 만드는 인간의 과정이 있다.

모임에서 함께 나눈 지적 대화의 쿠키들

발제문에 형광펜을 그어 둔 문장들

스마트폰을 바라보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조각상과 일러스트, ‘사고를 외주하는 똑똑한 무능한 사람’이라는 제목
사고를 외주하는 똑똑한 무능한 사람 ©REDBUSBAGMAN
‘인간은 생각하지 않기를 원해 온 유일한 존재’라는 제목과 스스로 판단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 관한 『사고외주』 발췌문
인간은 생각하지 않기를 원해 온 유일한 존재. 홍진기, 『사고외주』 ©REDBUSBAGMAN
인간이 사고의 부담을 덜어 주는 도구를 만들어 왔다는 설명과 AI를 사용하는 이유에 관한 문장이 담긴 『사고외주』 발췌 이미지
AI가 내놓는 답보다 고민하는 과정이 중요할 때가 있습니다. 홍진기, 『사고외주』 ©REDBUSBAGMAN
‘불편함을 견디는 힘’이라는 제목 아래 답이 나오지 않는 상태를 유지하는 능력의 중요성을 설명한 『사고외주』 발췌문
답이 나오지 않는 상태를 잠시 유지할 수 있는 능력. 홍진기, 『사고외주』 ©REDBUSBAGMAN
‘아직 모르겠다’는 상태를 견디고 불확실성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판단이 만들어진다는 『사고외주』 발췌문
판단은 확실성에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홍진기, 『사고외주』 ©REDBUSBAGMAN
AI가 불확실성의 시간을 압축하는 시대에 결론을 유보하고 반대 근거를 탐색하는 태도를 설명한 『사고외주』 발췌문
즉각적인 결론을 유보하고, 다른 가능성을 상상해 보는 태도. 홍진기, 『사고외주』 ©REDBUSBAGMAN
AI에 정답을 요구하는 학생과 사고 과정을 설명해 달라고 질문하는 학생을 비교한 『사고외주』 발췌문
정답보다 사고 과정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 홍진기, 『사고외주』 ©REDBUSBAGMAN
‘좋은 질문은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을 때 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장이 강조된 『사고외주』 발췌 이미지
좋은 질문은 내가 모르는 것을 알고 있을 때 할 수 있습니다. 홍진기, 『사고외주』 ©REDBUSBAGMAN
정보가 이동하는 속도와 인류 문명의 변화 속도를 설명하는 『사고외주』 발췌문
인류 문명의 변화 속도는 언제나 정보가 얼마나 빨리 이동하느냐에 비례해 왔습니다. 홍진기, 『사고외주』 ©REDBUSBAGMAN
정보가 하루가 다르게 바뀌고 증가하는 환경에서 인간이 마주하는 두 가지 선택을 설명한 『사고외주』 발췌문
정보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많아진다면 어떨까요. 홍진기, 『사고외주』 ©REDBUSBAGMAN
정보가 많아지는 시대에 익숙한 영역으로 물러나면서 기회와 시야가 좁아지는 역설을 설명한 『사고외주』 발췌문
정보는 많아졌지만 기회와 시야는 오히려 좁아지는 역설. 홍진기, 『사고외주』 ©REDBUSBAGMAN

책과 함께 나눈 콘텐츠


  • 피클 – 최근 가장 유용하게 쓰는 AI 도구. 지능이 뛰어난 것보다 효용을 극대화하는 측면에 최적화된 도구. 내가 반복적으로 하던 일들(네이버에서 쇼핑할 때 자주 사는 물건이 떨어질 무렵 대화로 주문, 정부24에서 발급해야 하는 서류 대화로 발급, 슬랙과 캘린더 연동해서 갑작스러운 반차에 반복일정으로 잡힌 코드리뷰 바꾸는 메시지 대신 보내주기, 캘린더 일정 보고 KTX 티켓 예약하고 좌석까지 순방향으로 변경해주기 등) 초대장이 필요하면 알려주세요!
  • 72시간 소개팅 – 민정 님께서 독후감에서 소개해주신 감동도 있고 멋도 있는 콘텐츠. 자극적인 소재의 연애 프로그램들 속에서 주인공 모두를 응원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이야기. 서로를 책으로 알아가고, 소개팅이 성사되지 않아도 괜찮은 다정한 콘텐츠.
  • 바이브 코딩이 남긴 부채 – 자연어로 코딩하고 딸깍해서 만든 앱과 서비스들.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 등 여러 플랫폼에 쌓여가는 서비스 중 대다수는 출시 이후 제대로 된 운영도, 업데이트도 안 되는 상태로 강 하구에 쌓이는 중이다. 10년 전 중국에서 공유자전거의 비극을 바라보는 마음이 들었다. 만드는 사람이 애쓰지 않으면, 쓰는 사람들이 고생한다.

출처와 그날의 기록들

  • 사고외주 – 홍진기, 어크로스(2026)
트레바리 〈리서치 하는데요〉 첫 모임의 발제문과 홍진기의 『사고외주』, 조민영 이름표가 담긴 인스타그램 스토리
첫 모임을 마치고 남겨주신 기록. 『사고외주』와 발제문, 그리고 민영 님의 이름표 ©REDBUSBAGMAN
트레바리 〈리서치 하는데요〉 시즌 9 첫 모임에 대한 멤버의 독후감과 클럽장의 답글이 담긴 인스타그램 스토리
첫 모임을 마치고 민정 님이 남겨주신 이야기와 그에 대한 답글 ©REDBUSBAG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