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광역버스에 백팩을 메고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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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 없는 사람들에 대한 유난한 관심

오너와 동료에 대한 공감만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서비스 혹은 상품을 직접 쓰는 ‘사용자’입니다. ‘사용자를 진정 배려’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뭘까요? 공감과 배려는 사용자를 분해하고 분석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사용자는 디자인을 분석하거나 디자이너의 의도를 해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냥 느낍니다. 온라인 서비스를 만드는 디자이너들에게 자주 이야기했습니다. “관심 없는 사람들에 빙의해 보세요.” 디자이너라면 서비스에 아무 관심 없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봐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기획자나 디자이너는 서비스를 만들 때 자연스레 이 일에 이미 익숙해진 자신을 기준으로 삼을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특정할 수 없는 다수가 쓰는 서비스인 만큼, 관여도가 거의 없는 사용자의 눈으로 서비스를 바라봐야 합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가 만드는 서비스를 가장 많이 이용하고 구매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네이버나 카카오톡을 보고 어떤 느낌을 받을지가 중요합니다. 일반 사용자가 카카오톡의 노란색이 살짝 어두워진 걸 눈치챌까요? 서비스에 아무 관심 없는 사람들이 카카오톡의 광고 위치가 3픽셀 밀린 걸 알아차릴까요?

공감은 우리의 타깃 고객이 알아볼 것과 그렇지 못할 것을 구분하고, 그들의 잠재의식 속에 남을 잔상을 유추할 때 시작됩니다. 그래야만 해야 할 일과 안 해도 될 일,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을 구분하기 쉬워집니다. 지금의 나를 지우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프로젝트에 본격적으로 몰입하기 전의 ‘나’를 박제해 두고 종종 그때의 내가 되어보려고 노력합니다. 온라인 서비스뿐만 아니라 제품이나 공간을 기획하고 디자인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네이버나 카카오 입사 전의 나, 별생각 없이 호텔을 이용하던 예전의 나, 식당 가서 메뉴를 뒤적이는 손님 중의 하나가 되려고 합니다.

인천 네스트호텔 프로젝트를 맡았을 때입니다. 일반적으로 호텔 객실은 침대 발끝이 향하는 곳에 텔레비전이 위치하고 머리 쪽에 벽이 있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텔레비전 보는 상황을 주로 가정하는 겁니다. 반면에 네스트호텔은 발끝이 창가를 향하도록 침대를 배치했습니다. 창밖으로 서해 바다의 일몰과 일출이 보이는 호텔에서 텔레비전이 꼭 우선순위여야만 할까 하고 생각한 거죠. 그동안 호텔에서 묶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면, 창밖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순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침대의 헤드보드를 벽에서 떨어뜨려 책상으로 해석했고, 테이블과 소파, 짐 푸는 곳을 구조적으로 연결해서 방을 구성했습니다. 이 모두는 기존 호텔 객실이 하던 방식을 따르지 않고 호텔을 드나들던 ‘손님’의 관점에서 객실을 해석했기에 가능합니다. (이런 구조가 흔한 것처럼 보여도, 침대 한쪽을 벽으로 붙여서 한 방향만 쓰도록 하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닙니다.)

소비자가 진정 바라는 건 전문가만 알아보는 디자인이 아니라 ‘직관적 유용성’입니다. 소비자가 느끼는 불편에 대한 해결책을 떠올릴 방법은 오로지 평소 직접 소비자가 되어 보는 수밖에 없습니다.

Source: 조수용, 『일의 감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