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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T로 사랑받을 수 있을까?

커피챗을 하면서 가장 자주 받는 질문 중 하나입니다. 사용성 테스트(UT)를 거쳐서 나온 디자인은 사랑받나요? 가장 심각한 사용성 문제를 해결해 나가면서 디자인은 솔루션이 되고 모두 기대에 부풉니다.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으니 사랑받을 거야!”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사용성이 좋은 디자인이라고 사랑받지 않습니다. 사용성은 사용성이고, 사랑은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이해가 되도록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제품이나 서비스, 콘텐츠 중 가장 사랑하는 것을 1가지 떠올려보면 답은 간단합니다.

시장에서 팬덤이 가장 강력하면서 시장점유율에서도 유의미한 수치를 보여주는 애플 아이폰, 전기차 테슬라, ERP솔루션 SAP, 주식 키움증권 영웅문. 배경지식이 없는 상태로 처음 사용해 보면 어떨까요? 쉽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테슬라를 처음 탔을 때 문을 여는 방법, 기어변속, 비상등 위치 모든 것이 생소했습니다. 차량에 탑승하고 출발하는 데까지 시간이 한참 걸렸고, 목적지에 도착하기까지 계속 긴장됐죠. 긴장감이 높은 상태로 학습해야만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사랑받습니다.

제품이 사랑받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대표적인 이유를 나열하면 9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사랑받는 제품의 9가지 특징]

1️⃣ 저렴해서 (가격경쟁력)
2️⃣ 편해서 (편의성)
3️⃣ 좋아하는 브랜드라서 (동질성)
4️⃣ 빨라서 (속도, 체감)
5️⃣ 가벼워서 (휴대성)
6️⃣ 오래가서 (지속성)
7️⃣ 시간을 아껴주기 때문에 (경제성, 생산성)
8️⃣ 아름다워서 (심미성)
9️⃣ 유일해서 (대체불가성)

애석하게도 🔟번으로 “사용성이 좋기 때문에“라고 쓰고 싶지만 현실에 사용성만으로 사랑받는 제품은 없습니다. ‘사용성이 좋다’라는 것은 ‘쉽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인데, 냉정하게 말해서 사랑받으려면 ‘쉽다’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가치 제안(Value Proposition)에서 소구할 수 있는 특징으로 ‘쉽게 쓸 수 있다’는 본질이라기보다 부가적인 속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쿠팡, 토스 등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서비스에서 계속해서 사용성을 진단하고 개선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용성과 사람들이 “좋아하는 제품“ 사이의 상관관계를 쉽게 알아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을 떠올려보세요. 사용성이 가장 뛰어난 것부터 순서가 정해지나요? 다른 한 가지 예시를 들어보겠습니다. 5가지 중식당을 떠올려보세요. 중식당 앞에 붙은 목적에 힌트가 있습니다.

1️⃣ 중요한 회의를 앞두고 점심에 갈 중식당
2️⃣ 오랜만에 만난 대학 동기들과 저녁에 갈 중식당
3️⃣ 건강을 생각해서 샐러드를 포장할 수 있는 중식당
4️⃣ 송별회를 해야 하는데 10명이 들어갈 수 있으면서 주차가 편리한 중식당
5️⃣ 결혼기념일에 갈 중식당

모두 다 중식당을 떠올려야 하지만 기준이 다릅니다. 어떤 경우에는 맛보다 가격이, 어떤 경우에는 가격보다 맛이, 어떤 경우에는 맛과 가격보다 교통이 중요합니다. 사용성은 내가 5가지 식당을 고민하면서 찾을 때 쉽게 떠올릴 수 있거나 찾을 수 있도록 돕는 특성입니다. 전화를 해서 물어보지 않아도 주차장에 SUV가 들어가는지, 10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룸이 있는지, 알레르기가 있는 동료를 위해 미리 재료를 변경할 수 있는지 등 조건에 맞는 중식당을 찾고 결정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합니다.

양재역에 있는 중국집 메뉴판. 보기 어렵지만 식당은 항상 붐볐다. ©REDBUSBAGMAN
양재역에 있는 중국집 메뉴판. 보기 어렵지만 식당은 항상 붐볐다. ©REDBUSBAGMAN

가장 최근에 방문했던 중국집 메뉴판을 한번 떠올려보세요. 여름특선 냉짬뽕이 있는 곳도 있고, 겨울 한정판으로 굴짬뽕을 추가한 곳도 있습니다. 여러 메뉴 중 재료값 상승으로 더 이상 팔지 않는 메뉴도 함께 있는데 가려두었습니다. 메뉴판 옆에는 ‘1인 1식 주문 필수’라고 적혀있죠. ”여기 굴짬뽕 4개요! “라고 주문을 했는데, 사장님은 요즘 굴 가격이 올라서 지금 안 된다고 미안해하십니다. 다시 주문을 하려고 메뉴판을 다시 살펴보는 사이에 다른 테이블에서 먼저 주문이 들어갔어요. 저희는 고민 끝에 각자 다른 메뉴를 주문합니다. 가장 바쁜 점심시간에 고객이 메뉴를 쉽고 빠르게 주문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가게 밖에 기다리는 사람들이 덜 기다릴 수 있을 겁니다. 복잡한 메뉴판에 지금 주문이 가능한 메뉴와 평균 대기시간까지 적어두면 어떨까요? 점심시간이 부족하거나, 특별히 선호하는 메뉴가 없는 고객이 더 빠르게 주문할 겁니다. 메뉴 주문을 하는 과정에서 고민을 하지 않는다면 회전율이 좋아지겠죠.

메뉴판 위에 종이를 붙여서 판매하지 않는 메뉴를 가리고, 조정된 가격을 매직으로 표시했던 메뉴판을 새로 만든 중국집은 손님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을까요? 1편에서 말씀드린 대로 사용성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주변 가게와 비교했을 때 맛도 괜찮고, 가격도 비슷하면서 위생상태도 좋아야겠죠. 다시 가고 싶은 식당이 되려면, 즉 사랑받는 식당이 되려면 메뉴를 쉽게 주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대신 점심시간에 전보다 더 많은 손님들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사장님이 커뮤니케이션하는 비용을 줄일 수 있으니, 운영도 수월해졌을 겁니다.

사용성까지 고집한다는 것은 고객 경험을 더 나아지게 만들겠다는 욕심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기업 내부에서 UX 리서치 조직을 내재화하고 새로운 기능을 출시할 때마다 UT를 진행하면서 1) 사용자가 발견하지 못하는 지점 2) 사용자가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 3) 사용자가 멈춰서 생각하는 지점을 찾아내고 개선해 나가는 기업은 메뉴판뿐만 아니라 재료의 신선함, 가게의 위생, 맛과 가격 경쟁력까지 신경 쓸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사용성을 개선하려고 애쓰는 기업이 만드는 제품이 시장에서 더 사랑받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그러니 고객에게 사랑받는 건 사용성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 사용성까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