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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리 시즌 7, 세 번째 모임을 마치고 – 목소리가 나오지 않을 때에도 지키려는 품위에 대하여

트레바리 시즌7 세 번째 모임 단체사진 — 멤버들이 함께 읽은 『책의 말들』을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트레바리 시즌7, 세 번째 모임 📚 ©REDBUSBAGMAN

가장 잔인했던 봄을 시작하며 가장 기다렸던 모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 책을 시작할 때 저자는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공감하기 위하여’라고 적었습니다. 저는 리서치도 같은 마음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 생각은 유효합니다. 많은 경우 만드는 이는 만드는 사람들 사이에서 만드는 일을 하며 사용자를 잘 안다고 가정하니까. 직급이 높을 수록, 고객을 직접 대면해 본적이 있는 경험이 있다면 이런 오류는 더 쉽게 나타나곤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들이 기억하는 고객은 그 목소리가 가공되어 있거나 시의성이 떨어집니다. 고양이 목에 방울을 걸기 어려워 하는 많은 이들은 고양이 귀에 캔디를 넣곤 하니까요.

매 시즌을 구성할 때마다 의식적으로 함께 읽을 책에 에세이를 넣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제현주 님의 『일하는 마음』과 황현산 님의 『밤이 선생이다』, 야마구치 슈의 『일을 잘한다는 것』, 나가오카 겐메이의 『디자이너 마음으로 걷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같이 읽고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김겨울 님의 『책의 말들』은 100권의 책에서 모은 100개의 문장과 그 문장에서 시작된 사유가 담겨 있습니다. 책으로 지은 책. 들어가는 말에서 저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이 책은 책으로 건축되어 있다. 단순히 『책의 말들』이어서가 아니라 이 책 자체가 ‘책’이라는 주제로 중층 구조를 이루고 있어서다. 말하자면 이 책은 ‘책에서 발췌한 ‘책에 관한 문장’을 바탕으로 쓴 책이다. (p.11)

더불어 저자는 “책에 관한 문장을 뽑았다고 해서 책 이야기만 하지는 않았다. 해당 문장에서 연상되는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여 글을 썼으므로 이 책은 순전히 책에 관한 책이 아니라, 책을 읽어온 나와 내가 살아가는 세계에 대한 100편의 이야기이기도 하다”고 덧붙입니다.

트레바리 북클럽 <리서치 하는데요>에서 ‘리서치’만을 이야기하지 않겠다고 2023년에 다짐했던 마음을 이 책에서 찾은 기분입니다. 계절이 바뀌어 꺼낸 봄옷에서 5만원짜리를 찾았을 때, 그런 기분처럼 내 마음가짐을 찾았는데 행운이라며 ‘럭키’라고 외치는 그런 마음이요. 이 책은 2021년 1월에 지어졌습니다. 시간이 지나 2023년, 2026년에 그리고 그 다음에도. 우리가 책을 읽는 이 지루한 행위를 하고, 비효율적인 일을 통해 가끔 시간차를 두고 비슷한 생각을 해내며 위로를 받았으면 참 좋겠습니다.

독후감 중에 이런 문장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읽게 하고 싶다면 작가처럼 접근하면 어떨까. ‘책을 읽으세요’가 아닌 책을 오래 읽은 사람들의 생각과 사유를 보여주면”. ‘이것을 하세요’라고 설득하는 대신, 이미 하고 있는 사람의 맥락을 보여주면, 특히 그 일과 행위를 사랑하는 사람의 맥락을 보여줄 수 있다면 그것이 무언가를 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닐까요?

모임에서 함께 나눈 지적 대화의 쿠키들

트레바리 시즌7 세 번째 모임 — 책의 말들(김겨울 지음) 커버 이미지, 보라색 그라데이션 배경에 책 표지와 '가장 사적인 매체이자 사유의 도구 책에 담긴 말, 마음, 위로' 문구
트레바리 시즌7, 세 번째 모임 📚 ©REDBUSBAGMAN
트레바리 시즌7 인용카드 1/9 — 프랭클린 포어 '생각을 빼앗긴 세계'에서 발췌한 종이책 읽기에 대한 문장
《140자로 쓸 수 없어 14만 자가 된 노래를 읽는다》 — 프랭클린 포어, 《생각을 빼앗긴 세계》 ©REDBUSBAGMAN
트레바리 시즌7 인용카드 2/9 —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에서 발췌한 가방에 책을 넣는 습관에 대한 문장
《가방에 책 한 권도 들어 있지 않은 사람과는 (   )》 — 김진영, 《아침의 피아노》 ©REDBUSBAGMAN
트레바리 시즌7 인용카드 3/9 —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에서 발췌한 문장을 사탕처럼 음미한다는 표현
《송편이 그렇게 좋은 음식이면 김치와 함께 먹으란 말이야!》 — 보후밀 흐라발, 《너무 시끄러운 고독》 ©REDBUSBAGMAN
트레바리 시즌7 인용카드 6/9 —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에서 발췌한 미국행 이민 가방에 책을 넣는 장면
《미국에 갈 때도 책을 들고 갔다 (세상에)》 — 장강명, 《한국이 싫어서》 ©REDBUSBAGMAN

1. 듣고 있었던 건지, 끝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모임을 거듭할 때마다 같은 책을 읽은 다른 이의 독후감을 읽는 건 색다른 기쁨입니다. 책을 다시 펴보게 만들고, 문장을 다시 떠올리게 만듭니다. 뭐랄까, 저는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나면 그 OST를 들으며 그 영화의 장면을 다시 생각할 수 있는데 독후감이 그런 토템 같은 역할을 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우리는 이 책을 읽고 경청과 효율, 아니 비효율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책 읽기는 느린 행위다. 우리에게 멈춰 서도록 요구한다. 그러므로 책 읽기란 얼마나 비효율적인 행위인가. 그러나 비효율이 곧 우리가 삶을 버틸 수 있게 만들어주는 힘임을 경청하는 이들은 안다. (p.29)

비효율과 경청을 책 읽기에 빗대어 생각해 본 적이 있던가? 독서를 경청이라 표현한 것에서 이 책의 제목이 “책의 글들”이 아닌 “책의 말들”인 이유를 찾게 됩니다.

조급함을 느끼던 찰나, 저자가 만든 과속방지턱에 미끄러져도 보고, 앞구르기, 뒷구르기도 해 보고, 문질러도 보면서 나만의 경청 방식을 찾아가고 싶다는 독후감이 있었습니다. 이 문장을 메모해둔 덕분에 운전을 할 때마다 과속방지턱을 만나면 덜컹하는 대신, 그래 내 방식대로, 비효율을 선택해도 괜찮다라며 주문을 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효율과 비효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영화를 만드는 일은 효율적인 일인가요? 책을 읽기 위해서 금요일 저녁, 강남역에 모여 4시간 동안 책에 관한 생각을 나누는 일. 한 권의 책을 읽고도 남을 시간을 들이는 일이 효율적일까요? 그런데 효율적으로 하면 그게 가치와 비례할까요?

많은 낭만은 비효율에서 오고, 비효율을 선택하는 것만이 사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아닐까?

어떤 이는 영화 티켓에 적힌 시간 보다 10분 정도 늦게 영화관에 도착합니다. 10분은 광고가 나오는 시간이기 때문이죠. 그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기 무섭게 암전된 조명이 다시 빛을 내면 불이나케 먼저 영화관을 벗어나 엘리베이터에 몸을 싣고 주차장에 도착해 효율적으로 영화를 봅니다. 그때쯤 엔딩크레딧은 끝나죠. 어떤 이는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끝까지 보며, 잘 알지도 못하는 이름과 회사들이 지나가는 순간을 기다립니다. 둘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영화를 보았습니다.

비효율은 선택하는 사람은 어떤 마음일까요? 무단횡단을 하지 않고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차도 다니지 않지만 초록불을 기다리는 마음은 무엇일까요? 아, 그걸 품위라고 하는구나. 다른 이는 몰라도 내가 아니까. 이게 습관이 되면 나중에 내가 사랑하는 존재가 그걸 보고 배울까봐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 왜 그렇게까지 해?라는 말을 듣는 사람은 품위가 있는 걸지 모르겠습니다.

2. 도, 레, 미, 파, 솔. 다시 도, 레, 미, 파, 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Op.18 2악장 Adagio sostenuto —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피아노,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오자와 세이지 지휘, Deutsche Grammophon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C단조 Op.18 — 2악장 Adagio sostenuto. 크리스티안 지메르만(피아노),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오자와 세이지(지휘). ©Deutsche Grammophon

이 글을 쓰는 동안 크리스티안 지메르만이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을 듣고 있습니다. 1897년, 교향곡 1번의 혹평으로 3년간 아무것도 쓸 수 없었던 라흐마니노프는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의 치료를 받은 뒤 이 곡을 완성했고, 달 박사에게 헌정했습니다. 책이 사람을 위로하듯, 이 곡은 한 사람의 침묵을 끝낸 음악입니다.

클래식을 전공한 호준 님은 대학에 갔을 때 스승으로부터 도, 레, 미, 파, 솔 다시 도, 레, 미, 파, 솔을 치는 것만 1년 넘게 배워야 했다며 그때의 에피소드를 들려주었습니다. 이미 라흐마니노프의 곡도 연주할 수 있는데 기본만 해야 하는 시간들을 견뎌내는 것은 효율과 비효율 중 어디에 해당하는 걸까요? 돌아보니 힘을 빼지 않으면 피아노를 치더라도 내는 소리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힘을 빼고 피아노 건반을 누르는 것을 배웠던 시간이었습니다.

거장들의 명곡을 연주할 수 있지만 다시 힘을 빼기 위해 배우는 시간을 견디는 것. 클래식을 전공하면서 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 그 시간을 견뎌내야 그 다음에 힘을 빼고 연주할 수 있다는 점은 우리가 일을 하면서 하는 느낌을 내며 효율을 추구하는 순간을 경계할 이유를 말해줍니다.

수정 님은 뜨개질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뜨개질을 처음 하는 이들이 가장 흔히 범하는 실수는 처음부터 너무 잘하려고 힘을 주면서 빡빡하게 뜨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주 촘촘하고 뒤로 갈수록 느슨해지면서 균형이 깨지며 도안대로 결과물이 나오지 않는 것. 많이 망쳐보고 다시 해보고 그래서 힘을 빼고 해야 끝까지 일정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걸 보면, 무언가를 해내는 데에는 효율과 비효율을 넘어 그냥 하는 것, 계속 하는 것의 단계가 필요한 것도 같습니다.

정말 잘하려면 어깨에 힘을 툭 빼고 해도 된다. 처음에 힘을 주고 하면 오래하지 못한다. 나다운 것을 해야 오래할 수 있는데 나다운 것에는 힘이 덜 들어간다. 보여주려고 과장하지 않고, 내가 즐거우니까 지속할 수 있다. 그런 일을 하고 있는가?

3. 쓸모의 세상에서 종이책이 손에 닿는 기분

종이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자는 종이책을 사고 보관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적었습니다.

트레바리 시즌7 인용카드 4/9 — 움베르토 에코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에서 발췌한 종이책 구매와 먼지에 대한 문장
《종이책 구매는 부동산 문제다》 — 움베르토 에코, 《책으로 천년을 사는 방법》 ©REDBUSBAGMAN

이사를 할 때 가장 무거운 짐 중의 하나가 책이며, 나만의 서재를 갖는 일이 많은 애독가들의 소망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왜 ‘종이책 구매는 부동산 문제’인지 공감할 수 있게 됩니다. 법전도 아닌 책들을 읽고 사고 잠재우는 데에도 왜 이리 공간은 부족한 것일까요?

독후감에서 가장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한 주제 중 하나가 종이책의 물성이었습니다. 인쇄된 종이의 촉감, 플래그나 북마크를 붙여두었을 때 읽은 분량을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한 페이지에 저자와 편집자가 의도한 만큼의 분량의 텍스트가 잘 짜여진 레이아웃으로 새겨진 것까지. 누군가의 집에 갔을 때 그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이는 것만 같아 눈길이 간다는 이야기까지. 그 책들을 통해 그 사람의 관심사를, 그 사람의 결을 보며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 드는 경험도 나누었습니다.

AI 시대에 손편지를 쓰는 사람

그럼에도 효율이 비효율을, 편리함이 물성을 대체하는 시대입니다. 영화도 줄여서 보고, 책도 유튜브에서 1.5배속, 2배속으로 보는 시대에 종이책이라니요? e-ink가 개발된 지 얼마나 오래되었는데 종이책을 고집하시나요? 무한 스크롤이 익숙한 시대에 유한한 책이야 말로 인간이 안심할 수 있는 유일한 지적 쾌락의 수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책을 넘길 때 느껴지는 감각, 그 책이 내 가방에 (심지어 거의 읽지 못하고 들고 나갔다 그냥 들고 들어오는 날도 있지만) 있다는 사실만으로 괜찮은 기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런 설렘 3초, 5초, 1분으로 하루를 살아가곤 합니다.

무한 스크롤의 시대에 한계가 있는 것들에 안도감을 느끼곤 합니다.

<리서치 하는데요> 시즌 7에서는 틈틈이 AI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하며 일 하는 사람으로 살아갈 것인가?에 대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AI 시대를 떠올리면서 자주 등장하는 영화가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Her인데요. 이 영화가 2013년 작입니다. 그리고 LA가 배경이었는데 2025년 정도를 추정하며 그리고 있어요. 올해가 2026년인데! 영화를 본 많은 이들은 AI 여자친구, 사만다를 기억합니다. 스칼렛 요한슨이 목소리 연기를 했지요. 남자 주인공 시어도어 트웜블리(호아킨 피닉스)의 직업은 무엇인지 혹시 아시나요?

영화 Her(2013) 스틸컷 — 시어도어 트웜블리가 손편지 대필 사무실에서 편지를 들고 앉아 있는 장면, 좌측에 영화 타이틀 'her' 로고
영화 Her (2013, 스파이크 존스 감독) — AI가 대체하는 시대를 그린 영화의 남자 주인공 직업은 손편지를 대신 써주는 사람이었다. ©REDBUSBAGMAN

정답은 해린 님이 맞히셨어요. 아! 저도 편지를 쓰는 사무실 장면이 생각났는데 한발 늦었습니다. ☺️

손편지를 대신 써주는 사람이었어요. 재밌지 않나요? 우리가 AI가 많은 것을 대체한다며 떠올리는 영화의 남자 주인공 직업은 손편지를 대신 써주는 사람이라는 것. 손편지야 말로 효율로 판단할 때 존재가치가 부정되기 쉬운 일이지만 우리의 삶은 비효율에 감동을 느끼며, 비합리성을 통해 로봇과 다름을 증명하는 것만 같습니다. 김겨울 님의 『책의 말들』을 2021년에 읽고 2026년에 다시 읽는 것도 AI가 볼 땐 이해하기 어려운 비효율적인 일이겠지요? 물론, 굳이 이해하려고 하지 않겠지만.

4. 오래하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 속도로

현진 님은 브이로그를 시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렇게 누구나 창작하기 쉬운 시대에 무언가를 소비만 하는게 아니라 생산하는 사람이 되겠다는 다짐에서 시작해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쇼츠 콘텐츠를 4개 업로드하면서 장고 끝에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그런데 이걸 요즘 유행하는 것처럼 자극적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고 그렇게 만들 수도 없고 자기가 좋아하는 취향을 보여주는 것으로 꾸몄다고 했습니다. 10개의 영상이 쌓이면 <리서치 하는데요>에도 공개해주시기로 했지요!

무한히 응원합니다.

현진 님을 응원한다는 건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시작한 사람을 응원하며, 오래하려면 내 속도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한다고 믿는 사람들을 응원합니다. 그리고 저도 그런 사람이고 싶습니다. <리서치 하는데요>를 시작할 때에는 그런 마음이 없었는데 가능한 더 오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도 이 모임이 기다려진 건, 이렇게 응원하고 싶은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고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며 경청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궁금한게 참 많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우리의 비효율적인 모임은 벌써 4회차 마지막 모임을 앞두고 있어서 벌써 조금 섭섭해지는 마음도 듭니다.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합니다.

5. 품위를 지키며 사는 사람은 인생의 주인공이자 목격자

3번째 모임을 마치고 제 마음속에 새겨진 단어는 ‘품위’라는 단어입니다. 품위를 지키는 사람인가?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그렇게 되겠노라 다짐했습니다. 다행히 정수기에 갔을 때 종이컵이 1개만 남았을 때, 나보다 더 목이 마른 사람을 위해 물을 마시지 않는 습관도 ‘품위’에 해당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무단횡단을 하지 않는 일,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도 누가 볼 때와 마찬가지의 행동을 하는 일. 그건 삶의 주인공이자 유일한 목격자로서 최선을 다할 때 가능한 거라고 믿습니다.

누구나 죽을 때에 이으러서는 오로지 자신만이 읽을 수 있는 외로운 책을 갖게 된다. 자신만이 읽었고 읽을 수 있으며 단 한 번 낭독되었고 앞으로 결코 완독될 일이 없는 책이다. 누구도 읽을 일 없는 이 책을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쓰는 태도를 우리는 품위라고 부른다. (p.153)

자기만의 필름을, 페이지를, 시간을 쌓아가는 삶에서 내가 유일하게 선택할 수 있는 일은 품위를 지키는 것이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려면 내가 좋아하는 걸 찾고 그걸 찾는 과정에서 실패해보고, 무엇을 좋아하는 건지 스스로 잘 알아차리기 어려울 때에는 기록하고, 그 기록을 반복하고, 같은 책을 읽으며 다른 생각을 나누는 것도 필요합니다. 작가가 서문에서 ‘다른 세계를 상상하고 공감하기 위하여’라고 적었듯이, 저는 3번째 모임에서 대화를 나눈 이들의 세계에 한 걸음 더 다가선 느낌이었고 그럼으로써 그들이 내 삶에 공감한다고 느꼈습니다. (저만 그런 건 아니겠지요?)


Key Takeaways

  • 물성이 주는 경험 가치 — AI 시대에도 대체될 수 없는 것 영상 기술이 처음 세상에 등장했을 때 사진 작가들은 자신의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 믿었습니다. 우리는 영화도 보고 사진도 감상하며 2가지를 함께 누리며 살아갑니다. 종이책은 e북 단말기가 보급되는 것과 별개로 존재하며, 페이지를 넘기는 감각은 무한 스크롤로 대체되지 않습니다. 한계가 있는 것에서 우리는 위로를 받곤 합니다.
  • 이케아 효과(IKEA Effect) — 2011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노턴(Michael Norton), 듀크대학의 댄 애리얼리(Dan Ariely), 튤레인대학의 다니엘 모촌(Daniel Mochon)이 발표한 행동경제학 개념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조립하거나 만든 것에 실제 가치보다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이케아 가구를 힘들게 조립한 사람이 완제품보다 자기가 만든 가구에 더 애착을 느끼는 현상에서 이름이 붙었습니다. 노력이 들어갈수록 결과물에 대한 애정이 커집니다. 내가 들인 노력이 가치를 키우는 것입니다.
  • 열쇠공의 역설(Locksmith Paradox) – 유사한 개념으로 열쇠공의 역설(Locksmith Paradox)이 있습니다. 댄 애리얼리가 소개한 이야기입니다. 한 열쇠공이 초보일 때는 자물쇠를 여는 데 오래 걸렸고, 고객들은 고생하는 모습을 보며 팁을 넉넉히 줬습니다. 숙련공이 되어 몇 초 만에 열자, 같은 결과를 냈는데도 고객들은 오히려 비용이 아깝다고 느꼈습니다. 결과의 품질은 올라갔는데 지불 의향은 떨어진 겁니다. 금융 App이나 이커머스 결제에서도 이러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의도된 지연효과로 안심하게 만드는 거죠. 내 돈이 잘 갖춘 보안체계 안에서 이체되거나 주문에 쓰이는구나.
  • 잔잔하고도 단단한 모임에서 얻는 가치 – 과정의 무게가 가치를 결정한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종이책 읽기와 <리서치 하는데요> 모임도 비슷합니다. 요약본을 10분만에 누워서 보고 듣는 것과, 100개의 에피소드를 읽고 400자 독후감을 쓰고 타인의 독후감을 읽은 후 금요일 저녁 강남역에 모여 4시간 가까이 책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 얻는 정보가 비슷하더라도 모임에서 더 깊은 의미와 가치를 느끼는 건, 그 과정에 들인 시간 때문입니다. 비효율이 만드는 행복도 내가 얼마나 시간을 많이 들여서 얻어낸 경험이냐에 달려있는 건 아닐까요?

Q. 고독해서 행복할 수 있는가?

A. 저자는 “고독해서 행복을 느낀다”라고 이야기합니다. 혼자 조용히 보내는 시간을 갖는 것, 그 과정에 책이 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테크 기업들이 인류의 모든 것을 남김없이 흡수해 버리려고 해도, 종이책 읽기는 그들이 완전히 손에 넣을 수 없는 몇 남지 않은 영역’이니까요. 연결에서 위로를 얻고, 자기만의 시간에서 행복할 수 있습니다.


📖 이 글에 영감을 준 책

트레바리 시즌7 세 번째 모임 — 책의 말들(김겨울 지음) 커버 이미지, 보라색 그라데이션 배경에 책 표지와 '가장 사적인 매체이자 사유의 도구 책에 담긴 말, 마음, 위로' 문구
트레바리 시즌7, 세 번째 모임 📚 ©REDBUSBAGMAN

『책의 말들』, 김겨울

“책은 내가 간신히 얻은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안정, 삶, 집 같은 단어이다.” (p.73)

모임에서 함께 나눈 콘텐츠 모음

  • 공간
  • 음악영화
    • 밴드 선셋롤러코스터 라이브 공연 영상 (용수 님) – 유튜브
    • 연주곡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2악장 (호준 님) – 애플뮤직
    • Official HIGE DANdism 115, 115km에 인생을 빗댄 웨딩송 (태민 님 독후감) – 애플뮤직
    • Her (2013) – 넷플릭스
  • 문구류
  • App
    • 터닝: 앱 잠금, 폰 잠금, 공부/집중 타이머, 루틴 앱 – 릴스 보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유료 결제한 앱 (해린 님)
    • Spotify SongDNA – 음악을 만든 엔지니어 등 창작자들을 조명하는 기능으로 한국에서도 베타테스트 중
  • 북클럽
    • 책을 읽고 모르는 이와 펜팔을 하는 설렘 – 문학동네 북클럽 (송이 님과 해린 님)
  • 이미지
    • 낯선 이에게 받는 친절에서 오는 위로
    • 인간과 AI의 차이점은 불합리성과 희망 (현진 님)
REDBUSBAGMAN X(트위터) 게시물 — 살다 보니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 기대가 없던 사람에게 위로를 받곤 한다, 퇴사할 때 같은 팀 한 분의 응원 메시지와 집주인의 따뜻한 답변 스크린샷
“기대하지 않았던 곳에서 피어난 애틋함에 위로를 받는다.” ©REDBUSBAGMAN
AI와 인간의 차이에 대한 인터뷰 장면 6컷 — 불합리성이 반드시 차이를 만들어낸다는 자막이 보이는 팟캐스트 화면
“누가 물어보면 저는 불합리성이라고 말해요” — 결과를 알면서도 다르게 행동하는 것, 그런 불합리성이 반드시 차이를 만들어낸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