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점이 주는 편향,
단순함이 주는 편리함.
편리함은 설명하지 못하는 지적 경험.
이 책을 읽고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Who else?‘ 누가 또 있을까? 였다. 사용자 그룹에서 내가 놓친 대상은 누구일까? 비즈니스 관점에서 보면 이 시장이 공략해야 하는 대상은 누구인가? 우리는 내가 익숙하지 않은 사용자들을 시니어를, 외국인을, 장애인으로 구분해 두고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비슷한 사람들끼리 모여서 일을 하면서 우리는 사용자를 알고 있다는 착각에 쉽게 빠지고 리서치가 주는 위로에 쉽게 만족한다. 포용적 디자인은 이 착각을 깨는 것에서 시작한다.
모임에서 함께 나눈 지적 대화의 쿠키들
1. 보조기구를 쓰는 인터뷰이
Zoom으로 화면 공유를 하며 UT를 진행하다 참가자의 마우스 컨트롤이 다른 참가자와 달리 매우 느린 것을 발견했다. 어림직작으로 약 1/4배 속도였다. 처음엔 테더링으로 접속했거나 화면 공유 방식에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기에 몇 가지를 프로토콜로 확인했지만 모두 예상을 빗나갔다. 몇 번의 질답을 이어가다 참가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실 제가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서 장애가 있어요. 보조기구로 해야 해서 조금 느린데 괜찮을까요?
크게 한 방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내가 구축한 리서치 시스템에는 판매자와 광고주가 섞여 있었다. 적정한 인터뷰이를 선정하기 위해 판매자 ID, 광고센터 ID 등을 매핑해서 분류했고, 그들의 비즈니스 성과, 광고비 집행 규모, 접속 빈도와 네이버 등 타사 서비스를 통한 매출 규모 등을 가능한 조사 방식으로 넣어 나름 시스템화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그 전과 비교하면 쿼리를 통해 접근 가능한 DB와 연동하고, 이를 통해 Right User를 선정하는 구조를 만들기 위해 애를 썼기 때문이다.
그런데 패널을 모집하는 문항에는 ‘보조기구 사용 여부’를 묻는 질문이 없었다. 내가 가정한 사용자들은 나와 우리 팀과 비슷하게 마우스를 오른손 혹은 왼손으로 쓸 것이라고 가정했다. 무선이냐 유선이냐의 차이만 있을 뿐.
나는 내가 속한 집단의 동질성을 가정하고 일을 하고 있었다.
제가 좀 느려서 불편하실 수도 있지만 저도 꼭 이 과정에 참여해 보고 싶었어요
부끄러움과 함께 ‘아, 아직 멀었구나. 더 개선할 게 많구나’라고 생각했고, UT에 참관했던 PO, 디자이너, 마케터, 분석가, 개발자와 함께 이번 리서치에 대한 경험을 UT 직후 바로 회고했다. 보조기구를 찾았고, 이 장비를 쓰는 실제 사용자의 모습도 공유했으며 앞으로 패널에 접근성과 포용성 원칙을 더하겠다며 그날 잠도 잘 잤다.
하지만 속도와 비즈니스 효율 앞에, P0(Priority 0) 과제 앞에 접근성을 높이는 것보다 판매자들이 더 많이, 더 자주 접속하게 만들고 광고주들이 더 많은 광고비를 집행하는 것에 모든 조직의 리소스를 집중했다. 그럼에도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을까? 스크리닝 문항을 수정하고, 강화된 접근성 규제에 빗대어 팀에서 논의를 이끌어 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달리는 열차의 바퀴를 바꾸는 것을 선망하는 조직에서 나의 애씀은 오래가지 못했다. 그게 내 인식의 수준이었고, 그래서 이번에 읽은 책은 교조적이지만 그때의 경험을 상기시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2. 구글이니까, 구글이라서
이 책의 원제는 ‘Building for Everyone‘이다. 출판사의 마케팅 전략일까? 왜 한국어로 ‘구글은 어떻게 디자인하는가?’로 번역했는지 그 의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구글이니까!” 이 정도 하는 거지 싶으면서도, 트럼프 행정부에서 그들의 포용성 정책(DEI, Diversity, Equity & Inclusion —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이 크게 후퇴한 점, 선언적인 가치를 통해 구글의 기업 브랜딩에 활용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은 찝찝했다.
구글의 DEI 후퇴 – 무슨 일이 있었던가?
구글은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인력 다양성 확대를 위한 구체적인 채용 목표를 세웠다. 그러나 2025년 2월, 트럼프 행정부의 DEI 관련 행정명령에 따라 이 채용 목표를 공식 철회했다. 연례 보고서에서 ‘다양성, 형평성, 포용성’이라는 문구 자체도 삭제했다. 포용성을 핵심 철학이라 말하던 기업이, 정치적 환경이 바뀌자 후퇴한 셈이다. 트럼프 시대에 그들이 말한 포용성은 금새 후퇴했다. 그럼에도 구글이 이렇게 하는 것이 나쁘다고 할 수 있는가? 위선은 선이 아닌가? 착한 척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이 사회를 이롭게 하지 않는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다시 꺼내 보게 만드는 이 책은 “구글이니까!”이기도 했지만 “구글이라서!”로 귀결되는 순간들이 이어졌다.
3. 독후감을 읽는 즐거움과 평점의 편향
독후감을 읽는 건 내게 큰 즐거움이다. 같은 책을 읽고 다양한 배경을 가진 구성원들이 쓴 독후감을 읽는 건 나의 세상을 넓혀 준다. 지난 시즌에서는 경험하지 못했던 독후감 읽기의 편향도 있었다. 독후감을 읽으려고 하면 독후감을 쓴 멤버가 매긴 이 책의 평점이 5점 척도로 나타난다.

〈리서치 하는데요〉 시즌 7, 2번째 책의 평점은 평균 2점대였다. 물론 5점도 있었다! 나는 2점대의 평가를 보고 독후감을 읽어 내려가야 했기에 “아, 태민 님도 이 책에 대해 실망이 크셨나 보다”, “아, 수정 님도 비판적으로 살펴보셨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펼쳐 내려갔다.
두괄식 사회는 어쩌면 다음 이야기에 대해 쉽게 단정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4. ‘차별’과 ‘차별화’에 담긴 본성
모임에서 나눈 대화 중 내가 가장 섬뜩했던 순간이 있다.
우리는 서구 문화권에 여행을 갔다 불쾌한 경험을 간혹 한다. 극히 주관적인 경험이지만 내 경험으로는 아시아 남자로 미국, 이탈리아, 프랑스, 호주 여행을 혼자 하면 차별을 경험하는 순간이 가끔 있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면 그 도시가, 그 나라가, 그 사람들이 미워지기 십상이다. 인종 차별이 2025년에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사회가 들썩인다. 생물학적인 이유로 차별이 이뤄지는 것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그걸 공식적으로 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지성이라고 생각한다.
섬뜩한 건 이렇게 악몽 같은 경험 ‘차별’이 제품을 만들 때에는 무방비적으로 쓰인다는 점이다. 우리는 기능을 ‘차별화’하고 또 서비스를 경쟁사 대비 ‘차별화’하기 위해 무한히 애를 쓴다. 제품 조직 안에서 차별화를 잘하는 것은 선의 가치에 가깝다. 그런데 그 말 안에는 ‘차별’이 있다. 우리가 포용성을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인간의 본성이 스스로를 우위, 안전한 집단에 포함시키면서 타자를 배척하기 때문은 아닐까?
5. 브랜디 멜빌(Brandy Melville), 그리고 포용의 역설

학부 수업 때 ‘서구중심주의’를 배운 적이 있다. 롯데캐슬을 포함해 아파트공화국이라고 불리는 한국의 고급 주거 브랜드 이름에는 서구중심주의가 스며들어 있다. 힐스테이트, 아이파크, 아크로, 더샵, 위브, 드파인 등. 브랜드 이름이 영어인 건 업종을 넘나들지만 초기 아파트 광고를 보면 금발의 백인 모델이 주인공이었다. 많은 미드에서 그려지는 아시안들이 특정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들도 비슷한 맥락이자 오리엔탈리즘이라고 생각한다.
모임에서 민영 님 소개로 알게 된 여성 패션 브랜드 브랜디 멜빌(Brandy Melville)은 1가지 사이즈의 옷만 판매한다. XS~S, 한국 기준 44 사이즈. 1980년대 이탈리아에서 설립되었고, 2009년 미국에 진출했다. 브랜드 스토리는 미국 소녀 브랜디와 영국 소년 멜빌이 로마에서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2025년 1월 3일, 서울 성수동 연무장길 101-1에 국내 첫 매장을 열었고, 오픈 당일부터 긴 대기줄이 이어졌다. 이 브랜드의 슬로건은 ‘One Size Fits Most’. 이전에는 ‘One Size Fits All’이었지만, 비판을 받아 변경한 것이다. ‘One Size Fits (sm)All’이라는 조롱도 따라붙었다. 2024년에는 HBO 다큐멘터리 “Brandy Hellville & the Cult of Fast Fashion“에서 인종차별, 바디셰이밍 등이 폭로되기도 했다.
포용성과 인간의 본성을 생각할 때 인간의 본성에 맡기면 안 되는 가치가 아닐까?
우리가 지금 누리는 많은 것들이 누군가의 불편함, 개선하기 위한 노력, 인간의 본성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만드는 ‘지켜야 하는 선‘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여전히 가야 할 길은 멀다.
이번 책은 내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부채를 남겼다.
역설적이게도, 브랜디 멜빌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우측 하단에 접근성(Accessibility) 메뉴가 존재한다. 단 하나의 사이즈로 제품을 팔지만, 웹사이트에서는 시각·청각·인지 장애를 가진 사용자를 위한 접근성 설정을 제공하는 것이다. 몸의 다양성은 배제하면서 디지털 접근성은 준수하는 이 이중성.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포용이 ‘가치’가 아니라 ‘규정 준수’로 전락했을 때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다행히 구글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소프트도 Inclusive Design에 대해 강조하고 있었다. (도현 님 소개)
Key Takeaways
- ‘Who else?’ — 리서치 시스템이 놓치는 사용자는 누구인가? 보조기구를 쓰는 참가자를 만난 경험은 리서치 패널의 동질성 가정에 균열을 냈다.
- 포용성은 교조적 선언이 아니라, 스크리닝 문항 하나를 바꾸는 것에서 시작한다 — 최우선순위 과제 앞에서도 할 수 있는 작은 변화가 있다. 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판단이 들어간다.
- ‘차별’과 ‘차별화’는 같은 뿌리 — 인간 본성이 타자를 배척하는 메커니즘이 제품 언어에도 스며들어 있다.
- 평점은 편향을 만든다 — 두괄식 사회에서 다음 이야기를 단정하지 않기.
Q. 포용적 디자인은 비즈니스 효율과 양립할 수 있는가?
A. P0 과제 앞에서 접근성은 늘 후순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크리닝 문항 하나를 바꾸는 것은 비용이 들지 않는다. 내가 할 수 있는 변화부터 시작하는 것이 포용의 시작일 수도 있다.
📖 이 글에 영감을 준 책
구글은 어떻게 디자인하는가 애니 장-바티스트(Annie Jean-Baptiste)
구글의 포용성 책임자가 쓴 책은 제품을 만드는 모든 과정에서 “누가 빠져 있는가?”를 묻는 것이 왜 중요한지 설명한다. 교훈적이지만 그 설득 방식은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이걸 나쁘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책의 제목은 Building for Everyone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