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여섯 번째 시즌의 4번째 모임을 가졌습니다. <리서치 하는데요> 북클럽을 시작하고 24번째 모임이니 만 2년을 꼬박 채운 셈입니다. 첫 시즌을 함께 시작했던 유경 님과 태민 님, 은주 님을 처음 만난 지 3년이 지났으니, 제 생각보다 북클럽을 오래 이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리서치 하는데요>를 통해 평소 접하지 않았던 책을 함께 읽고, 다른 생각을 글과 말로 접하며, 내 생각을 확장하는 것이 그 이유라고 생각했는데, 시즌을 거듭하면서 편안함에 이른 것 같습니다.

모임에 나오지 못한 멤버의 안부가 궁금하고, 부서 이동이나 졸업, 이사와 이직을 앞둔 분들을 응원하며, 아이의 엄마가 되어 예상하지 못한 고난과 행복의 층위를 경험할 분에게 축복하는 마음을 갖게 되는 건, 지적 대화를 넘어 ‘동물의 숲’을 닮은 무해한 모임이 되었다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마지막 모임에 오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독후감을 통해 감상을 전해준 종성 님과 은주 님, 지수 님 그리고 안부를 전해준 태민 님 모두 고맙습니다.)
11월 14일(금) 마지막 모임에서는 이번 시즌을 시작할 때 나눴던 질문 “가장 기대되는 책과 그 이유”를 다시 떠올리며 안부를 나누고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지난 4개월 동안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 한 달에 1번, 분주한 강남역 중심에서 만나 같은 책을 두고 다른 생각을 나누었습니다. 간단히 메모해보니 멤버들이 이번 시즌을 마무리하며 가장 기억에 남은 책으로 꼽은 것들은 다음 순서였습니다.
- 류쉐펑, 『복잡한 세상을 이기는 수학의 힘』
-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 알랭 드 보통, 『행복의 건축』
- 크리스틴 로젠, 『경험의 멸종』
어떤 책은 이 모임이 아니었다면 읽지 않았을 것이고, 그래서 어렵고 낯설지만 매력적이라고 느꼈다는 감상이 기억에 남습니다. 『경험의 멸종』은 첫 번째 책이었기에 이미 내용을 파악한 상황에서 “가장 기억에 남은 책”을 꼽으라고 할 때 다른 책을 꼽았을 수도 있습니다. 이미 경험한 것보다는 미지의 것에 대해 더 기대하기 쉬운 편이니까요.

모임에서 함께 나눈 지적 대화의 쿠키들




발제문에 메모해 둔 문장
- “사랑의 반댓말은 두려움이다”
- “기억만이 현재의 폭을 두껍게 만들어준다”
- “동지는 밤이 가장 길어 천천히 나를 돌아볼 수 있다”
- “요즘 광고는 1) Gamification 2) 보상 3) 귀여움 중 하나를 충족해야 한다”
1. 오늘 밤은 선생일 수 있을까?
저는 『밤이 선생이다』라는 네 번째 모임의 책을 꼽았는데, 어떤 삶을 살 것인지, 앞으로 어떤 밤을 보낼 것인지 고민하는 시기에 이 책을 다시 읽었기 때문일 겁니다. 어쩌면 과거를 과거로 두고 앞으로 어떤 어른이 되어야 할 것인가,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관심이 많아진 탓일 겁니다.
이 책의 제목에 얽힌 저자의 인터뷰는 흥미로웠습니다. 밤이 왜 선생이야? 밤에 무수한 생각들이 이어지며 잠에 들지 못하는 그 시간은 괴롭기 마련입니다. ‘잡생각’이 들지 않도록 몸을 혹사시키는 밤도 있었죠. 그런데 밤에 사유를 하며 편안함에 이른다는 것은 공자님 말씀과 같은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듭니다. (이 책에는 공자님도 등장하지요)
“고민하고 있을 때 한숨 자고 나면 좋은 생각이 떠오를 거라고들 말하지요. 밤이 좋은 생각을 가져다준다는 의미의 프랑스 속담이 있는데 ‘밤이 선생’이라고 웃자고 말했다가 책 제목으로 쓰게 됐습니다.” – 황현산
낮에는 해야 할 일이 많고 정해진 일들이 대부분입니다. 회사에서 사용하는 아웃룩 캘린더를 켜면 매주 반복되는 월요일 Weekly 일정부터 시작해 내가 하고 있는, 해야 하는 일들과 관련한 미팅들이 테트리스처럼 알록달록 화면을 채웁니다.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 할 수도 있고 혹은 거부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 미팅에서 나의 책임을 다하는 것과 별개로 밤은 내 의지에 따라 비교적 수월하게 채울 수 있습니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도록 달릴 때도 있고, 지금의 불안을 마주하며 근원을 들여다보고 지금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에 몰입하기도 하지요. 그 어느 쪽도 나의 선택이고 밤에는 보통 그 주도권이 나에게 있었습니다. 그 수많은 밤들을 어떻게 보냈는가에 따라 지금 나의 편안함의 상태가 다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2. 고요함에 깨어나는 감각
“고요함은 감각이 비활성화된 상태일까?”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고요함과 몰입은 인과관계는 아니더라도 높은 상관관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변과 내면이 고요한 상태에서 나는 무언가에 몰입할 수 있습니다. 몰입은 집중과 달라서, 내가 무엇인가에 집중하고 있다는 의식조차 하지 않습니다. “시간이 이렇게 지났어?”라고 뒤늦게 깨닫는 것과 비슷합니다. 어쩌면 고요함이란 나의 감각 중 몰입에 필요한 몇 가지가 가장 각성된 상태가 아닐까요?
트레바리 강남 아지트를 가는 길에 신분당선 강남역 지하상가를 걸어가며 12번 출구로 향하는 길, 사람들을 관찰합니다. 기둥부터 바닥, 벽면까지 XYZ 축을 가득 채운 옥외광고 지면에는 성형외과와 어학원, 법무법인과 취업 부트캠프까지 정보가 가득합니다. 이곳을 통과하는 사람들은 스마트폰을 보며 더 가볍게 더 넓은 세계를 탐닉하며 걸어가고, 귀에는 노이즈캔슬링 이어폰을 끼고 있습니다. 정보가 가득한 시대는 두 발을 딛고 있는 곳이나 두 눈을 향한 곳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정보가 늘어난 시대에 우리는 세상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었을까요? 씨줄과 날줄의 무한 스크롤 시대에 어떻게 몰입할 수 있을까요?
즉각적 만족감을 주는 것들이 선택받는 시대입니다. 결제는 밀어서 하고, 배송은 샛별이 뜨지 않아도 해가 뜨기 전에 툭 도착합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하는데 배송비는 무료가 되었고, 광고를 보면 유료 서비스도 무료(라고 여기며) 사용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오늘만 파는 제품, 한정수량으로 파는 제품, 고객님께만 제공되는 혜택은 수천 장의 쿠폰을 받을 수 있지만 적용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는 상황처럼 헛헛할 때가 있습니다. 즉각적인 것은 그 특성상 휘발되기도 합니다.
3. 어떻게 일 할 것인가?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부터
신철규 시인은 황현산 비평가를 추모하며 “선생님은 말의 시간과 시간의 말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지하였기에 시와 시인의 가장 깊은 곳까지 내려가실 수 있었다. 선생님은 다감한 스승이었고, 엄정한 번역가였으며, 따뜻한 비평가였다“라며 애틋함을 표현했습니다. 비즈니스를 해야 하는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이렇게까지 예민할 필요가 있어?”라는 물음은 무용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는 것을 알아차리고, 일을 하는 나와 일 밖의 나를 공존할 수 있게 하는 감각을 깨우는 계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면 다 사람이 하는 일이고 사람의 일이며 사소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물성이 있는 일, 실존하는 일, 감각을 깨우는 일은 분명히 나를 충만하게 만듭니다. 그런 생각들을 통해 “나도 더 좋은 사람이 되어야겠다”라는 다짐을 하고 “더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는 기분”을 느낀다면 그걸로 충분하겠지요.
<리서치 하는데요> 7번째 시즌은 12월을 쉬어가고 1월에 시작합니다. 연말엔 천천히 생각하는 밤을 보내며 쌓아둔 책들도 꺼내보고 낮에 잃은 것들을 되찾을 생각입니다. 지적 대화를 함께 해준 시즌6 멤버들께 애틋한 감사를 전하며 다시 만날 때 반갑게 인사를 드리겠습니다.
책과 함께 나눈 콘텐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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