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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리 시즌5, 두 번째 모임을 마치고 – 세상에 대한 일말의 책임감에 대하여

TREVARI 시즌5 2번째 모임

샌드위치 휴가로 평소보다 도로가 한산했던 5월 2일(금) 저녁에 <리서치 하는데요> 시즌5 두 번째 모임을 가졌습니다. 시간이 되는 멤버들끼리 먼저 모여 트레바리 아지트 근처에서 피자를 먹고, 하나 둘 아지트에 도착했습니다. 유나 님이 겪었던 독후감 제출 에피소드에 대해 들으면서 트레바리 독후감 제출마감 시간(D-2, 수요일 자정)과 이 정책이 가진 목적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지난 한 달의 안부를 나누다 『도둑맞은 집중력』을 두고 본격적인 북토크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모임에 함께 못한 멤버들께 안부를 전하며, 다음 모임에서 더 반갑게 인사드리겠습니다.

지난 첫 모임에서 멤버들이 꼽은 가장 기대되는 책이었습니다. 요한 하리가 최근 내놓은 『매직필』도 인문학 분야 베스트셀러였기에 이 책을 다시 읽기에 좋은 시기였습니다. 2023년 이 책이 인기를 끌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디지털 디톡스‘ 열풍이 일었습니다. 스마트폰엔 스크린타임을 설정해 두고, 휴대폰 감옥을 두거나, 침실에 스마트폰을 가져가지 않는 것, 유튜브 검색기록을 끄는 등 개인 차원에서 해봄직한 시도들이 있었죠. 종이책을 더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던 날들도 있었습니다. 공교롭게 이 책은 이런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보다 시스템, 사회적 차원에서 집중력을 도둑질하는 것에 대해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지적하고 있습니다.

리디셀렉트 - 도둑맞은 집중력
침실에서 스마트폰 사용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며 리디셀렉트를 다시 꺼냈다 ©레드버스백맨
<리서치 하는데요> 시즌5 두 번째 발제문, 함께 읽은 책은 『도둑맞은 집중력』 ©레드버스백맨

모임에서 함께 나눈 지적 대화의 쿠키들

REDBUSBAGMAN_도둑맞은 집중력

1. 집중력을 높이려는 계획의 특징

계획을 세우고 이를 잘 실행하는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탄했고 또 응원했습니다. 회사를 다니면서 가장 하기 어렵다는 일 중의 하나인 새벽운동을 위해서 전날 미리 운동복을 챙겨두는 일, 저녁에 퇴근하고 집으로 바로 오지 않고 운동을 하려고 운동복과 운동화를 챙겨서 출근하는 일, 메일을 쓸 때마다 뽀모도로 타이머를 켜고 메신저나 스마트폰 등 다른 채널들에서 스스로를 분리해서 시간을 쪼개는 일. 선원들이 돛대에 자신을 묶어두는 일을 닮았습니다. 사전 약속(pre-commitment)은 내가 쉽게 포기하거나, 달성하기 어려운 목표에 다가가는 일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적인 노력이 유효해 보이는 영역이었습니다.

자신의 계획을 세우고 지켜내며 집중력을 유지하려고 하면 내가 하고자 하는 행동에 집중했을 때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측정하고, 또 어떤 순간을 겪으면 계획이 틀어지는지 살펴보고 그 상황으로부터 스스로를 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메일을 쓰는데 5분이 걸린다는 것, 집에 들르면 다시 나가서 저녁운동을 가지 않는다는 것, 아침에 일어나서 아침운동에 입을 옷을 고르는 것은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고 허들이 된다는 것.

스크린 타임을 설정했지만 1분 더, 15분 더, 오늘 하루 제한 없이 이용하는 것에 어느 순간부터 죄책감이 사라졌습니다. 번거로울 법도 한데 이 시간을 15분에서 30분으로 늘릴 생각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게 개인은, 사용자는 주어진 환경에서 적당히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느슨해진 끈을 이용해 또 끈의 탄성을 이용해 돛대에 묶인 자신을 점점 더 경계까지 모는 건 아닐까요? 호정 님께서 소개해주신 ‘Opal‘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습니다. iOS 스크린타임과 달리 이 앱은 계획해 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 동안 특정 앱을 사용하려고 할 때마다 메시지를 띄웁니다. 사용자에게 생각할 시간과 죄책감을 환기시키죠. 대화형 메시지를 통해 사용자가 목표를 다시 환기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효과적이었던 것처럼 들렸고 저는 이 앱을 사용해 보기로 했습니다.

Opal
  • 진짜 당신의 삶을 사세요
  • 열정 가득한 삶의 주인공이 되세요
  • 잠깐 심호흡은 해보시는 건 어때요? 심호흡을 하고 다시 결정하세요

2. 화상회의 중에서 92%는 멀티태스킹을 한다

Notta(AI 기반 미팅 솔루션 기업)가 자체 실시한 2025년 설문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2%는 화상회의 중 멀티태스킹을 한다고 답했습니다. 100명 중 8명을 제외하고는 화상회의 중 메일을 확인하거나, 메일을 쓰거나, 메신저에 답을 하거나 질문을 하거나. 주의를 분산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렇게 놀랍지 않았습니다. 다만 놀라운 건 오리건 대학의 마이클 포스너 교수가 밝힌 23분이라는 시간이었습니다. 그가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다가 방해를 받을 경우 전과 같은 집중 상태로 돌아오는데 평균 23분이 걸립니다. 오전에 4시간을 근무한다고 가정하고 중간에 3번 정도 멀티태스킹으로 주의를 분산하면 집중상태로 돌아오기 위해서만 1시간을 넘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3시간 동안 집중하는 것도 아닙니다. 집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있을 것이고, 그 집중력을 유지하는 건 그리 길지 않을 겁니다. 어쩌면 오전에 4시간을 일하면서 집중한 시간은 23분도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저는 모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윤정 님이 갖고 다니는 뽀모도로 타이머를 구매했습니다. ☺️

멀티태스킹은 좋은 걸까요?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일을 해내는 것이라고 믿었던 멀티태스킹이 멋져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해야 하는 일은 많고, 시간은 부족한 날들이 이어질 때마다 생산성을 끌어올려야겠다는 불안감은 점점 더 많은 일을 테트리스처럼 쌓게 만들었고 테트리스는 이상적인 계획에 가까워 하나를 마치고 다음으로 가는 대신 하나를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이 창과 저 창을 오가며 내가 정작 있어야 하는 화면을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질문을 바꿔보겠습니다. 멀티태스킹이 가능한가요?

책을 읽은 후 멀티태스킹은 결국 산만함만 키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싱글태스킹을 계획대로 끊어서 순서대로 하는 방식으로 진행하는 것만이 생산성을 관리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대부분 합리적인 인간이 회의 중에 대부분 다른 태스크를 처리하는 것은 회의시간이 너무 길거나, 회의 주제와 무관한 사람들까지 회의에 초대하거나 남겨두는 “일단 모여서 이야기하시죠” 방식의 부작용은 아닐지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됩니다.

3. 우리가 설계하는 것들이 중독적이진 않을까?

사람들을 유입시키기 위해서, 더 잡아두기 위해서 사용하는 작동방식이 때로는 도박을 닮았고 때로는 마약을 닮았다는 불편한 생각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중독경제’라고 부르는 시스템은 사람들이 스스로 기대하는 모습과 현재 사이의 차이를 더 여실히 느껴 불안감과 시기심을 동력으로 삼고 이를 토대로 더 쉽게 그 사다리를 오를 수 있는 방법을 서비스로 제안할 때가 많습니다. ‘공유하기만 하면 돈을 준다’, ‘친구를 초대하면 10만 원을 준다’와 같은 방식으로 여러 서비스가 적용하는 레퍼럴 서비스는 알리, 테무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이미 한국의 많은 커머스, 핀테크 서비스들은 단기적인 효과를 지표로 검증한 ‘초대’, ‘키우기’ 등의 방식을 답습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길을 가다 보이는 ‘마약’, ‘중독’, 메뉴판에 있는 ‘폭탄맛’ 등의 단어들도 불편해졌습니다. 떡볶이에 왜 마약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중독되는 맛이라는 표현을 쓰는지. 폭탄 4단계라는 표현이 아무렇지 않게 느껴지는 순간 우리는 어디까지 괜찮고 어디부터는 불편하다고 말할 수 있는지 헷갈릴 수 있습니다. 멀티태스킹을 하나 어떤 화면이 내가 지금 집중해야 하는 화면인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죠. 『도둑맞은 집중력』은 우리를 우리가 원하던 곳이 아니라 미로 속에 남겨둡니다.

무언가에 중독되면 아무도 안 시켰지만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지고 지금 환경은 수많은 경험이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도록 유도하는 메커니즘에 기반해 수익을 내고 있습니다.

책과 함께 보면 좋은 콘텐츠

Black Mirror Season 7
Black Mirror Season 7 ©Netflix
  • 넷플릭스Black Mirror | Common People (2025) – 아름 님 추천
  • 넷플릭스Social Dilemma (2020)
  • 레드버스백맨<UX Designer가 갖는 책임의식> (2019)
  • 조선일보 <요한 하리 인터뷰>(2023)
    • Q. 오래 일해 집중력이 떨어지면 생산성에도 영향을 미치나?
    • A. 한국은 생산성에 대해 잘못된 관념을 갖고 있다. 아침에 제일 먼저 출근하고 밤에 가장 늦게 퇴근하며, 이메일에 즉시 답장하고, 쌓인 스트레스는 모두 흡수하고 절대 벗어나려고 하지 않는 직원이 유능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한국 축구 대표팀이 전날 밤 스트레스를 풀지 못하고 지친 상태로 스마트폰을 쥔 채 경기장에 들어서는 모습을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생산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직장인들을 비생산적으로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