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리서치 하는데요> 시즌4, 세 번째 모임이었습니다.’어느새’, ‘벌써’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2월의 첫 번째 금요일은 날이 추웠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윤정 님께서 준비해 주신 공식모임 전 번개에는 8명이 모였는데요. 도치피자에서 먼저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 덕분에 모임은 평소보다 한결 더 따뜻하게 시작했습니다. 집에 오는 길엔 매달 1번, 4시간 가까이 얼굴을 마주 보고 같은 책에 대해 다른 생각과 고민, 관점을 공유하며 각자의 해상도를 넓혀가는 것은 큰 퍼즐을 함께 맞춰가는 것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매 모임마다 잔잔하면서도 단단한 모임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동시에 개인적으로 안부를 묻고 싶은 마음, 독후감에서 엿보인 멤버의 고민에 대해 더 들어보고 싶은 마음들이 함께 있습니다. 4번의 시즌을 하는 동안에 공통적으로 느끼는 건 3번째 모임이 되어서야 비로소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여기서는 ‘안전하다’, ‘무해하다’라는 감각입니다. (물론 클럽장으로서의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습니다) 시즌을 이어나간다면 어떻게 그 감각을 함께 느낄 수 있을지, 조금 더 빨리 그런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 보겠습니다. 이번 모임도 잔잔하고도 단단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함께 모임을 만들어주시는 파트너, 민영 님께도 다시 한번 고마움을 전합니다. 덕분에 다음 시즌5도 어찌어찌, 꾸역꾸역 시작해 볼 생각입니다.
북토크를 시작하기 전 근황을 나누었습니다. 지난 모임이 마침 1월 초였기에 새해 다짐에 대해 공유했는데 어떻게 되어가는지, 어떤 계획이 새롭게 생겼는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짐을 밖으로 선언하는 것이 다짐을 실행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믿음으로, 또 그런 다짐을 무해하게 응원하는 트레바리 <리서치 하는데요> 멤버로서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는 그 다짐들과 설 연휴의 시간들을 공유해 주는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노트에 적었습니다. 폭설로 본가에 내려가지 못해 생각을 하거나, 스키장에 다녀오거나, 가족과 함께 벼르던 석화를 해치운 에피소드. 게임에 몰입하거나 영상을 잠시 멀리하고 책에 빠지거나, 하루를 이렇게도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함께 느끼는 영어학원 등록 이야기, 주기적인 단식으로 건강함을 지켜가는 이야기와 제주도에서 만난 사장님과 편의점에서 새벽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낸 이야기, 블로그를 정리하고 세나개에서 배운 설채현 선생님의 가르침을 직접 수행해 본 이야기, 고민 끝에 퇴사를 이야기하고 나니 아쉬움 대신 마음에 쉬움이 찾아왔던 이야기, 기침을 하다 갈비뼈가 부러졌다는 심각하지만 웃을 수 있게 해 준 이야기, 5월에 갈 시드니 티켓을 120만 원이라는 좋은 가격에 구했던 이야기까지. 그렇게 우리는 1달 전에 만났을 때의 모습으로 천천히 돌아갔습니다.
이번 모임에서 읽은 제현주 님의 『일하는 마음』은 제가 항상 곁에 두고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나는 지금 이 일을 하면서 행복한 걸까?”,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라는 마음이 들 때마다 꺼내보는 책입니다. 아껴둔 책을 제가 아끼는 모임에서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읽고 다른 생각을 나누며 돌아오는 길은 생각보다 따뜻했습니다.
모임에서 함께 나누고 싶었던 3가지 관점
- 일을 하면서 어떻게 성장할 수 있어요? – 성장 자체를 목표로 하기보다 오늘의 과업에 집중해야 할 때가 있어요.
- 책임감을 갖는 게 도움이 될까요? – 무언가에 책임감을 갖는 것, 어떤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다는 것은 ‘쓰임’이나 ‘자기 효능감’을 느끼는 데 필수적일 수 있어요. 다만, 그 책임감이 나의 의식과 일치되어 있는 것인지, 조직이나 상사가 부여해서 시키는 일에 그치는 것인지 판단해 볼 필요가 있어요.
- ‘필요 이상’을 쏟아붓는 선택은 언제 해야 할까요? – 손에 일이 익지 않았을 때 가성비를 따지기 어려운 시기가 있습니다. “10분짜리 인터뷰를 위해 밤을 꼬박 새워 준비했던” 김현정 PD의 이야기처럼, 가장 깊은 지점까지 닿으려면 숨을 참고 물속으로 내려가야 하는 때가 있을 테니까요. 다만, ‘과잉노력과 즐거움의 총량 늘리기’ 그래프에서 나눈 이야기처럼, ‘필요 이상’의 기울기를 너무 가파르게 해 90도에 가깝게 만들면 마음과 몸이 지칠 수 있습니다. 그래프가 완성되려면 기울기가 0도가 되는 지점까지 이르러야 하는데 그전에 그만두면 즐거움을 느낄 수 없으니까요. 내가 내일도 운동장에 나가서 뛸 수 있는 정도로, 무게를 들어 올릴 수 있을 만큼의 ‘필요 이상’을 선택해야 합니다.
멤버들과 토론을 하면서 생각했던 나의 일하는 마음
1. 일을 하는 이유와 나만의 마스터피스를 만들기
- 일을 하면서 가끔 떠오르는 멘토이자 선배들이 있습니다. 첫 회사에서 일을 하면서 고객을 대상으로 디자인 컨설팅을 하던 시기의 일입니다. 컨설팅 프로젝트가 끝나고 나면 암묵적으로 ‘봄방학’ 같은 기간이 있었습니다. 고생했으니 휴가는 아니지만 사실상 출근해서 자리를 길게 비우더라도 찾지 않고, 휴가를 올리지 않고도 일찍 퇴근해도 눈치를 주지 않는 개인정비의 시간이었죠. 그런 시기에도 채식주의자 선배는 항상 자리를 지켰습니다. 전과 다르지 않게 열심히 무언가를 하는 모습이었죠. “선배, 저 동기들이랑 커피 한잔 마시고 올게요”라는 이야기를 꺼내고 한참이 지나 돌아와도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회사에서도 인정을 받는 분이었고 긴 프로젝트를 함께 하면서 가까이서 보니 왜 좋은 평판을 갖고 있는지 직접 깨달을 수 있는 ‘롤모델’로 삼을 만한 분이었습니다.
- 다른 업종에서 경험을 쌓겠다며 입사 후 7년 만에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저는 선배와 이야기를 나누며 궁금했던 점을 물었습니다. “선배님은 왜 봄방학에도 그렇게 열심히 하시는 거예요?”, “왜 쉬지 않고 계속하시는 거예요?” 이런 종류의 가벼운 질문이었습니다. 묻고 싶었는데 물어볼 기회가 없었으니 저는 어쩌면 마지막 커피챗이 될지도 모르는 자리에서 물었습니다. “왜 일을 하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 선배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자기 만의 ‘마스터피스’를 만들기 위해서 일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회고를 하는 시간이 따로 있었지만 선배는 봄방학 때 누가 시키지 않아도 회고를 했던 것이었습니다. 방금 마친 프로젝트에서 스스로 아쉬웠던 것과 그 이유, 그게 본인에게 달려 있지 않은 책임이어도 팀과 프로젝트, 회사 차원에서 회고를 시작했고 그 사이에서 본인이 시니어로서 할 수 있는 역할과 그걸 충분히 수행할 수 있는 역량을 가졌는지에 대해 돌아본 것이죠. 그리고 그걸 기록했고 저와 팀원들에게 공유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일을 하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게 맞을까?라는 의문이 들 때 떠올리는 선배들이 있는데, 모임을 하면서 그 선배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 자기만의 마스터피스를 빚는 5가지 방법
- 과거에 해 온 것을 개선하려고 노력하세요
- 자기 만족에 그치는 것보다는 문제 해결, 고객 만족이라는 객관적 기준으로 평가하세요
- 마스터피스를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건 성실함입니다
- 동료는 이때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 도움을 구할 대상입니다
- 동료는 도움만 구할 대상은 아니고 내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대상입니다
2. 책임감을 갖는 사람이 경계해야 하는 일하는 마음, 억울함
- 일을 하다 억울한 순간이 있습니다. 내가 한 일을 마치 다른 사람이 한 것처럼 알려질 때. 혹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나의 잘못이나 책임처럼 알려질 때. 성과를 쉽게 낼 수 있고 의사결정자의 관심이 높은 프로젝트는 다른 사람이 하고 나는 비교적 중요도가 낮거나, 해도 티가 나지 않는 일만 하는 것 같을 때. 그레이존을 채우는 일을 하고 있지만 가까운 동료도 그 애씀을 알아주지 않을 때. 잠깐만 떠올려봐도 많은 상황들은 일을 하면서 억울함을 갖게 합니다.
- 저는 이 억울함이 사실 ‘책임감’이랑 매우 가까이에 있는 감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에 대해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일수록 이런 억울함을 느낄 가능성이나 상황이 많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일에 대한 주인의식이 없거나, 그레이존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은 “그건 제 일이 아닌데요?”라는 마음이기 때문에 억울함을 느낄 상황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억울함은 상황에 가까이 닿아 있을 때, 애정을 갖고 있을 때, 명확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자신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크게 느끼는 법이니까요.
- 책임감이 큰 사람은 억울함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억울한 마음이 들 때에는 가만히 자신의 선택이 무엇인지 떠올려보는 것이 유용합니다. 내가 어떤 일을 하기로 선택했고 어디까지가 내가 하는 일인가? 그 대답은 스스로 할 수 있습니다. 체면을 차리지 않고 내가 하는 일에 성심을 다하는 것은 다행히 탁월함으로 이어지는 기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탁월해지려면 억울하게 책임을 지는 상황에 대해서 조금 무던해져야 합니다. 책임감에 억울한 상황이 있다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이렇게까지 하나? 싶은 마음이 든다면 자기 최면에 가깝지만 “내가 성장하고 있구나”라며 탁월함에 가까워진다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 저는 다이어리에 태희 님의 독후감 중 “내적 동기가 소진되어 한계에 다다르면 책임감이 나설 차례다“라는 문장을 메모해 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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