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 모임은 제럴드 M. 와인버그와 도널드 고즈가 쓴 『대체 뭐가 문제야』를 함께 읽는 시간이었습니다. 책의 원제는 ‘AYLO, Are your lights on? (전조등이 켜 있습니까?)’인데 책을 번역하면서 제목을 『대체 뭐가 문제야』로 바꿨습니다. 사실 이 책은 얇고 삽화도 많아 쉽게 읽을 수 있을 거라고 짐작했지만 같은 책을 3번 읽고서야 어렴풋이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근본적인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미국식 유머와 서사의 급진성까지. 함께 읽고 싶었던 이유는 이 책을 제대로 읽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독후감에서 멤버들도 비슷하게 느낀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 못 한 것 같은 이 느낌은 저만 그런 걸까요?” 위로가 되었습니다. 특히 트레바리 모임을 하면서 멤버들이 쓴 독후감을 함께 읽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모임을 이어나가는 충분한 이유가 되고 있습니다.
독감으로 인해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는 상황이라 죄송한 마음이 컸는데요. 그럼에도 귀 기울여주시고 함께 생각을 나눠주셔서 멤버 분들께 감사했습니다. 매끄럽게 진행해 주신 파트너 민영 님, 제주도 출장 중에 모임방에 마이크를 준비해 주신 트레바리 크루 승호 님께도 안부와 감사를 전합니다. 갑작스러운 야근으로 독후감을 제출하고도 참석하지 못한 하은 님, 현아 님께 이 모임 스케치로나마 모임 분위기와 토론 내용을 전해드립니다.
깜깜한 터널을 나갈 때 전조등 끄는 걸 깜빡하는 운전자들을 위한 솔루션이었다

북토크를 시작하기 전 새해 첫 모임인 만큼 2024년 연말 근황과 2025년 다짐을 나누었습니다. 2가지 의미에서 이 시간이 좋았습니다. 하나는 민영 님 말씀처럼 다짐을 밖으로 이야기하면서 선언함으로써 지킬 확률을 높이는 것이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이 커뮤니티가 주는 든든함과 따스함이 느껴져서 좋았습니다. 다짐을 이야기하고 느슨하지만 호의를 갖고 응원하는 사이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잔잔하지만 단단한 <리서치 하는데요>의 온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온기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다짐은 영어학원, 테니스, 건강, 새로운 회사에 적응, 일본어 시험 자격증, UXR 부서로 이동, 운동과 건강, 소소한 표현들을 아끼지 말기, 팀에서 UX 리서치 실행해 보기,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으로 이직하기, 기록하는 삶을 살기, 리서치 펀더멘털과 소프트스킬 늘리기, 매일 1줄 기록하기 등. 멤버들이 바라는 다짐들이 <리서치 하는데요>라는 모임을 통해 건강한 자극을 받고 지적 대화 속에서 안 해도 되는 걸 해야 할 이유로 이어지길 바라며 각자의 도전을 응원하겠습니다. 다음 3번째 모임에서 서로의 목표에 대한 진척(Progress)을 함께 나눠요!
모임에서 함께 나누고 싶었던 3가지 관점
- 성급한 해결에 대한 경계 – 해결책을 만드는 순간 새로운 문제가 시작되는 현상
- 문제의 주체와 관점에 대한 고민 – A라는 사람에게 문제인 것이 B라는 사람에게 문제가 아닐 수 있듯, A에게 해결책인 것이 B에게는 상황을 악화하는 현상
- 적응된 불편함은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가? – QWERTY 자판이 최초 기계식 활자기에서 고장을 방지하기 위해 자주 누르는 자판을 의도적으로 띄워둔 것인데 이미 이 자판에 적응한 사람들은 불편을 인지하지 못하는 현상
지난 시즌에 이어 잔잔하지만 단단한 이야기를 나눈 6가지 키워드
1️⃣ Internal Politics
‘사내 정치’라고 말하면 부정적인 느낌이 들지만, 실리콘밸리를 포함한 많은 Top-tier 기업에서는 Job-level을 높이는 과정에서, 프로모션을 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량이라고 평가하고 이를 늘리기 위한 노력도 중요하다는 인식이 있습니다. 사실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한다는 것을 가만히 살펴보면, 선택일 때가 많습니다. 리더의 의사결정을 돕는 것. 그래서 회사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도움을 받거나 설득해야 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파트너의 조력이 필요한지까지 의식해야 합니다.
시키는 일만 할 때에는 Internal Politics를 고려하지 않아도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하지만 리서치로 임팩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금 이 리서치 결과로 인한 의사결정이 누군가에게는 목표를 방해하는, 달성 속도를 저해하는 영향을 불러일으킨다고 판단할 테니 당연히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할 테죠.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안을 제시하거나, 이 결정이 그래도 더 중요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도록 핵심 이해관계자와 커뮤니케이션해야 합니다.
2️⃣ In-house Discount
제가 만든 표현이라 정확한 사전적 개념이 있지는 않습니다. 일을 하다 보니 전문가 집단이라고 경력직으로 채용했지만, 채용이 이루어진 순간부터 인하우스 디스카운트 현상이 나타난다고 느꼈습니다. 내부에 있는 사람에게 전문적인 분석을 맡기기보다는 외부에 컨설팅을 맡기는 경우가 대표적이죠. 또는 외부 전문가 자문그룹을 이용하거나, 또 다른 전문가를 채용하는 방식. 균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컨설팅 결과는 페이퍼로는 완벽에 가깝더라도 현장에, 운영에 적용하려고 하면 운영의 현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거나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않은 결과로 그럴듯한 솔루션에 그쳤을 때가 많았습니다. 또 외부 Top-tier 기업에서 모셔온 리더는 이해관계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이 있었고 일의 성과를 내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여러 회사에서 이런 현상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면서 이 현상을 인하우스 디스카운트라고 부르면서 이걸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레드버스백맨’이라는 퍼스널 브랜드로 UX 리서처로서 계속 성장하기 위한 개인적인 노력, 외부와의 연결, 목소리를 전하는 자리를 만들어가는 것도 하나의 시도입니다. 대체 뭐가 문제야에서 “물고기는 물을 보지 못한다”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내부에 있는 사람은 이해관계가 엮여 있기 때문에 현상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한 걸음 떨어져서 바라보고, 직접 체험하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쓰는지 관찰하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3️⃣ VoC와 Pain-points
고객이 이야기하는 여러 불만 속에서 정말 중요한 문제를 정의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실 VoC는 소음에 가깝습니다. 단순 문의가 다수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이 소음을 무시해서는 안 되죠. VoC를 제기하는 사용자는 고마운 존재입니다. 자신의 시간을 들여 불만족한 현상에 대해 자발적으로 데이터를 제공하기 때문이죠. 매달, 매주 VoC를 살펴보면서 신호를 발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신호란 무엇일까요? 저는 조직마다 이 신호에 대한 정의가 내부적으로 합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서비스는 어떤 간편 결제든 5초 안에 결제가 이루어져야 한다”, “영업일 기준 2일 이내에 환불처리가 완료되어야 한다”와 같은 선언적인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전에 맥도널드 HQ를 컨설팅한 적이 있었는데 맥도널드 내부에는 키오스크, POS를 통해 들어온 주문이 50초 안에 준비되어야 한다는 미션이 있었습니다. 이걸 가능하게 하기 위해 Behind the Counter의 시스템을 바꾸거나, 점점 더 커스트마이징 되는 (토마토 추가, 치즈는 빼고 등) 주문을 새로 투입된 파트타이머가 쉽게 만들 수 있도록 직원용 디스플레이를 최적화하는 등의 디자인 개편이 이루어졌죠.
쿠팡에서는 Customer Job이라는 걸 조직 내에서 정해서 소음 속에서 신호를 찾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습니다. 당연해 보이는 이야기이지만 Home 화면에서는 “최신 유행 상품을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할인 상품 및 혜택 정보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검색 화면에서는 “정확한 키워드를 모르더라도 원하는 상품을 검색할 수 있어야 한다”와 같은 형식이었습니다. 이건 B2B2C에서 구매하는 사용자에 대한 것이고, 광고주나 판매자, 물류센터 직원들 대상으로는 또 다른 Customer Job이 있어야 합니다.
4️⃣ 사용자에게 동의를 구하는 문제
필수 동의항목과 선택 동의항목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많은 기업은 고객의 데이터가 ‘돈’이 된다는 생각으로 회원가입 때부터 과다한 정보를 수집합니다. 현재 비즈니스에 활용할 정보가 아님에도 언젠가 서비스를 확장할 때 필요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회원가입 때 받아두는 것이죠. 그럴듯한 판단처럼 보입니다. 회원가입 때를 제외하면 약관 동의를 흔쾌히 받거나, 정보입력의 유인을 제공하기가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이게 도덕적인 선택이고 정당한 것인가? 에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이렇게 쌓은 개인을 특정할 수 있는 고객 정보는 엄격한 관리가 필요한데, 서비스에 활용하지 않는 정보를 엄격하게 관리할 수 있을까요? 그 체계가 미흡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사용자에게 필수 동의항목과 선택 동의항목을 쉽고 명확하게 구분해서 안내하는 것, 서비스에 대한 통제권을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것이 사용자 경험을 고민하는 전문가 그룹에게는 언제나 필요한 고민입니다.
최근 토스에서 진행한 전생 프로필 만들기 이벤트는 얼굴인식을 통해 토스플레이스에서 간편 결제를 할 수 있는 신체 데이터를 수집하는 활동이었는데요. 고양이 키우기, 이상형 월드컵, 만보기 등 Gamification 요소와 리워드 제공을 묶어서 사용자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재방문과 체류시간을 늘리는 기능들을 능수능란하게 만드는 토스에 감탄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얼굴사진을 통해 간편 결제에 활용하려는 비즈니스 목적을 사용자에게 더 상세히, 정확히 고지하는 것까지도 전문가 집단이 회피하면 안 되는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토론에서도, 팀에서도 이야기를 나눈 결과 단순히 재미로 하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분들이 계셨고 암묵적으로 보이는 생체 데이터 수집이라는 점에 대해 불편함을 느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얼굴입장 미리 등록하기 만으로는 충분히 설명이 되지 않으니까요. 공유하기, 다시 찾기 버튼 아래 ‘어디에 사용되는지 살펴보기’ 또는 ‘동의 철회하기’ 버튼을 두는 것까지도 생각해 보면 좋겠습니다.
5️⃣ 오래 걸리더라도 제대로 고치겠습니다
태희 님께서 에스컬레이터 수리할 때 세워진 팻말의 문구가 인상적이라며 소개해주셨는데요. 여러 멤버들이 이에 공감했습니다. “그래, 제대로 고치는 것이 중요하지”라며 계단을 이용하는 흔쾌한 마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인데요. 객관적 불편과 인지된 불편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볼 지점이었습니다. 은수 님 말씀처럼 이 팻말이 2, 3개월 계속 세워져 있으면 신뢰가 깨져서 불만이 생길 거라고 하셨을 때, 민영 님께서 일을 할 때 리더에게 빠르게 초안을 가져가서 피드백을 받는 방식에 대해 말씀해 주셨을 때 넷플릭스 콘텐츠 로딩이 떠올라 사례를 공유드렸습니다.
넷플릭스에 많은 콘텐츠가 들어오면서 사용자가 어떤 영상을 다음에 볼 것인지 경우의 수가 늘어났죠. 새 영상을 로딩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졌습니다. 약 15초 정도까지 시간이 걸렸죠. 고화질 콘텐츠가 늘어난 것도 한몫했을 겁니다. 이때 기술적으로 접근하면 다음에 볼 영상을 예측하거나, CDN(Content Delivery Network – 전 세계 주요 지역에 서버 증설) 확장이나 압축기술을 고도화하는 방식이 있죠. 사용자 경험 관점에서 접근하면 Visibility를 높이는 것이 솔루션이 될 수 있습니다. 동일한 대기 시간도 덜 지루하게 만드는 전략이죠. 엘리베이터의 거울처럼, 뭔가 나오고 있다는 느낌을 주면서 기다리는 지루함을 줄여주는 거죠. 처음엔 낮은 화질 영상으로 보여주다가 점점 화질을 높이거나, 영상만 먼저 보여주고 소리는 나중에 보여주는 방식, 맞춤형 썸네일을 통해 사용자의 주의를 환기하는 방식 등이 해당합니다. 진척을 보여주는 것이 서비스에 대한 신뢰도를 유지하는 데 중요하다는 생각을 나눴습니다.
6️⃣ 문제를 정의하는 프레임워크
맨 아래 삽입한 이미지와 함께 JTBD(Jobs To Be Done)이 대표적이라 이 글을 참고하시면 좋겠습니다. 바로가기
책을 읽으면서 저는 귀퉁이에 메모를 했습니다. “사례는 과장할 수 있지만, 원칙은 비교적 꾸밈이 없다“. 어색한 번역체와 주인공 이름(영리함 씨, 왕공룡 씨, 이해타산 씨 등)으로 단숨에 완벽히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었지만 그럼에도 계속 많은 독자들이 찾는 이유는 ‘문제 정의’에 대해 내 경험, 내 생각을 대입할 여지가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리서치에서 가장 주의해야 하는 것은 너무 빠르게 문제를 정의하려고 하는 것, 방법론의 함정에 빠지는 것, 단순히 사용자의 이야기를 현상으로만 전달하는 것입니다. 3가지 질문을 기억하고 일을 하면서 이 책을 다시 꺼내보면 좋겠습니다.
- 이게 정말 가장 심각한 문제일까?
- 그 문제는 어디에서 비롯되는가?
- 내가 물고기라면 나는 물을 의식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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