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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바리 시즌4, 첫 번째 모임을 마치고 – 보는 것과 보이는 것에 대하여

17명의 멤버와 새로운 파트너 민영 님과 13번째 <리서치 하는데요> 모임을 가졌습니다. 시즌 1부터 1년 동안 쉼 없이 매달 1번의 모임을 하고 2024년 11월은 모임을 갖지 않고 자기만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12권의 책을 다시 꺼내보고, 발제문과 함께 나눈 대화들을 다시 떠올리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리서치 하는데요> 4번째 시즌은 조금 특별했습니다. 매달 4번째 금요일에 하던 모임을 1번째 금요일에 시작하기로 했고, 시즌3 멤버였던 민영 님께서 파트너로 합류하셨습니다. UX 리서치와 디자인을 업으로 하는, UX 라이팅을 하는, 조경을 설계하는, 제조사에서 경험을 만드는, 스타트업을 만들고 운영하는, 설계한 경험이 잘 운영될 수 있게 만드는, 설계를 자동화하는, PO나 PM으로 서비스 기능을 기획하는 등 다양한 멤버들이 모였습니다. 새로운 시즌에서 지적 대화를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매 시즌 첫 모임은 어색함과 긴장, 설렘과 기대가 섞여 있기 마련입니다. 이런 어색함이 돈독함과 자연스러움으로 바뀌는데 2, 3번의 모임이 필요하다 보니 시즌을 마칠 때가 되어서야 내적 친밀감이 가득해지는 걸 반복합니다. 자연스럽게 지난 시즌에 이어 만나 뵐 수 있는 분들이 첫 모임에 계시는 것만으로 더 편안했고 감사했습니다.

<리서치 하는데요> 모임 성격은 여전히 ‘잔잔하고 단단한‘입니다. 서로 다른 배경, 고민을 갖고 있지만 클럽 소개에서 “애플리케이션만 이야기하지 않겠습니다. 사랑받는 콘텐츠, 사랑받는 공간, 사용자의 마음, 비즈니스 의사결정의 생리까지 일과 삶에서 체감하는 에피소드를 화두로 토론하겠습니다. 더 유용한 것과 더 쓰기 쉬운 것들을 살펴보면서 UX(사용자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라고 적은 것처럼 더 본질적인 사용자 경험, 사용자가 되어야 하고 리서치를 해야만 하는 근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색함을 견디고 정적을 깨고 자기의 고민과 생각을 나누어주신 시즌4 멤버 덕분에 어김없이 ‘지적 대화’를 나누고 돌아왔습니다. 이런 대화를 나눌 곳이 마땅하지 않기에, 여전히 집으로 가는 길엔 녹초가 되지만 13개월째 모임을 지속하는 것만 같습니다.

시즌을 거듭해도 지켜가고 싶은 것

여전히 잔잔해도 괜찮아

음… 트레바리가 원래 이런 거야?“라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사실 다른 클럽을 경험하신 몇몇 멤버분들의 표현에 따르면 클럽마다 정말 분위기 차이가 크다고 합니다. 어떤 클럽은 네트워킹에 중점을 두고, 어떤 클럽은 자신의 브랜드와 서비스를 홍보하기 위해서, 혹은 연애를 위해서. <리서치 하는데요>는 정적이 중간중간 있고 또 대화의 높낮이가 매우 일정한 클럽이라는 이야기를 시즌을 거듭하며 들었습니다. 여전히 정적이 어색할 때가 있지만 그럴 때 책을 다시 읽거나, 가만히 노트에 생각을 정리하거나, 정적을 깨는 질문을 하셔도 다 괜찮습니다.

클럽마다 분위기가 다른 건 클럽을 개설한 목적과 멤버들의 조합이 각각 다르기 때문일 겁니다. 저는 이 클럽에서 우리가 사용자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 당사자이면서 관찰자가 되어야만 볼 수 있는 것들, 리서치를 해야만 보이는 것들에 대한 가치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매 시즌 별로 다른 직무와 업계에서 오신 멤버들이 함께 이 가치를 바라보고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고, 관점을 확장하기 위한 토론에 집중할 계획입니다.

틈과 틈 사이에 정적이 있어도 괜찮아

지난 금요일, 13번째 모임까지 포함해 발제문 중 BOOK TALK 1의 첫 번째 항목을 읽고 바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발제문의 내용 자체가 함께 생각해 볼거리를 던지는 것이기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정답이 있는 퀴즈가 아니니, 정적을 갖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정적의 시간 동안 자기 경험을 떠올려보거나, 저자의 생각을 다시 바라보기 위해 책을 읽거나, 떠오른 사례를 검색해 보거나, 클럽장이 왜 이런 질문을 던질까? 생각의 꼬리를 물고 시간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정적을 쉽게 허락하지 않는 세상에 자연스러운 정적을 허락하면 좋겠습니다.

정적이 있어도 괜찮다는 말은 꼭 정적이 있어야만 한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있어도 좋고, 없어도 괜찮습니다. 나의 생각이 있거나 독후감에 적은 사유를 공유해 주시길 기다립니다. 그 생각 뒤에 또 다른 생각이 바로 이어질 수도 있고 정적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정적에도, 생각의 공유에도 거리낌이 없기를 바랍니다.

저자의 사적인 말

<리서치 하는데요> 발제문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닮고 싶은 관찰자, 생각노트 님의 『디테일의 발견』을 함께 읽으면서 저자의 생각을 다시 한번 듣고 싶었습니다. 기획자, 마케터로서 이렇게 사용자 입장에서 바라보고 꾸준히 기록하며 “왜 그럴까?”, “어떻게 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해석을 더해가는 그 태도는 제가 생각할 때 ‘더 나은 경험’을 만들고자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에게 ‘일 하는 단서’를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번 발제문에선 저자의 메시지를 가장 먼저 담았습니다. 이 내용을 제가 읽고 나서 토론을 시작할 때 “저자의 편지를 받은 것 같아서 감동을 받았다“라는 말씀이 떠오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디테일의 발견』을 쓴 생각노트라고 합니다. ‘리서치 하는데요’ 클럽 멤버분들께 인사드리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디테일의 발견』은 저의 ‘사적인 관찰 일기’에서 시작했습니다. 제품과 경험이 상향 평준화되는 시대에 그럼에도 ‘다름’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아이디어와 기획력이 그저 부럽고 많이 배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래서 순수한 사용자(유저) 입장에서 감동 받은 순간, 새로운 가치를 느낀 순간을 기록했고, 그 기록이 한 권의 책이 됐습니다.

저의 첫 책인 『도쿄의 디테일』부터 『디테일의 발견』까지, 제가 좋아한 디테일을 보면 결국 ‘사람’에 대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 많았습니다. 고객은 어떤 생각을 할까? 고객은 어떤 감정을 느낄까? 고객은 무엇이 더 필요할까? 고객은 어떤 부분에서 당혹감을 느낄까? 고객은 무엇을 궁금해할까? 고객은 무엇을 편하게 느낄까? 같은 질문의 답이 디테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았죠.

그래서 저는 사람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몇 가지 사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관찰이고, 두 번째는 왜/어떻게 사고 훈련이며, 세 번째는 책입니다.

어디를 가든 관찰을 통해 사람들의 행동을 들여다보며 욕망과 니즈를 이해하고자 합니다. 뜨고 지는 브랜드와 트렌드 사례를 왜/어떻게 기반으로 생각해 보며 제 관점으로 변화를 해석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책을 통해 타인의 삶을 마주하며 사람에 관한 해상도와 선명도를 높이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벼운 인사 자리에 말이 많이 길어졌는데요. 『디테일의 발견』에 담긴 101가지 사례를 통해 ‘사람’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습니다. AI를 비롯한 기술 혁명이 가속화되더라도 ‘사람 대 사람’의 경험은 영원할 것이며, 오히려 사람을 깊게 이해하고 건네는 ‘디테일’이 더없이 가치 있게 될 것이라 믿습니다. 답은 결국 사람, 고객, 사용자에게 있다는 불변의 진리도 계속될 것이고요. 긴 인사말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디테일의 발견』과 함께 즐겁고 유익한 시간 가지시길 바라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생각노트

첫 모임과 이어진 대화 속에서 메모한 것들

‘보는 것’과 ‘보이는 것’에 대하여

트레바리 강남아지트 엘리베이터에서 기다리다 마주치는 인사

당사자가 되어야만 ‘보는 것‘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에 따라 ‘보이는 것‘의 수준도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책을 읽고 나서야 키보드 F, J 버튼에 있는 작은 돌기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토론을 한 이후에야 트레바리 강남아지트 1층 엘리베이터 상단 디스플레이 아래에 적힌 “엘리베이터가 한 개뿐이라 죄송합니다“라는 문구가 보였습니다. 토스의 간편 송금을 쓰기 전까지는 시중 5대 은행 App을 통한 송금이 불편하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하나은행은 왜 계좌이체를 하기 위해 모든 정보(계좌번호, 금액)까지 입력하고 나서야 “WiFi 환경에서는 불가능합니다”라는 메시지를 띄우는 걸까요?

관찰자가 사용자가 되는 순간에 대하여

법인카드로 밥을 사주는 사람이 생색내는 것은 글쎄요“라는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자기 돈과 시간을 온전히 들이지 않고서는 사용자가 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요. 사용자가 10만 원을 내고 묵는 숙소를 5만 원에 묵는다면, 같은 눈높이에서 기대하고 효용을 평가하지 못할 겁니다. 모든 서비스, 재화는 교환가치를 기준으로 평가받기 때문인데 모임에선 이야기를 나누지 못했지만 JTBD(Jobs To Be Done)과 관련해 이 글을 함께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사용자는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비스를 고용하는 것이고 그게 잘 되지 않으면 해고하고 다른 서비스를 고용한다는 개념입니다.

처음엔 왜 이렇게 만들지 못했을까?라는 의문에 대하여

좋은 사용자 경험이란 무엇일까? 버스정류장에 버스노선 안내 지도에 화살표를 붙이는 사람, 등산로 이정표에 정상까지 남은 거리를 글씨로 적은 사람. 왜 만들 때에는 이 중요한 정보가 빠져 있던 건지, 이 정보가 더해지기까지 사용자는 어떤 불편함과 애씀이 필요했던 걸까?

이케아 효과

“번거로워 보이는 과정이지만 실제로 이 조립 과정을 통해 고객은 이케아 가구에 애정을 갖게 됩니다. 학자들은 노력을 투입한 물건에 더 애정을 갖게 되는 인지적 편향을 두고 ‘이케아 효과’라고 정의하기도 했죠. ‘이케아 효과’를 보고 고객의 불편함이 애착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이야기하면서 (1) 본질은 ‘불편함’이 아니라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이용할 만한 가치가 있는가? (2) 견뎌낼 수 있는 수준의 ‘불편함’으로 낮췄는가? (3) 불편함이 개선되는 것이 보이는가?라는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구독 서비스의 실패에 대하여

세탁특공대, 청소연구소, 미소, 숨고 등을 1~2번 사용하고 이탈한 사용자 경험을 나누었습니다. 패딩 세탁을 맡겼는데 때가 하나도 빠지지 않고 돌아왔던 경험. 그때를 세재를 묻혀 손으로 쓱쓱 닦아보니 바로 닦이는 수준인데 이렇게 고객에게 ‘완료된 세탁물’이라며 전달받았을 때 느낀 실망감. 청소를 해주시는 분에 따라 전혀 다른 수준의 상태가 되는 것을 봤을 때, 도움을 받기 위해 부른 서비스 담당자의 눈치를 봐야 했을 때. 불편한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O2O 플랫폼은 서비스 공급자와 수혜자를 연결해 주는 것으로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데 (1) 플랫폼이 직접 개입하지 않고 중개만 했을 때 생기는 품질 차이 (2) 전문성이 필요한 서비스인데 충분한 교육, 장비 등을 통해 고객이 기대하는 수준을 달성하지 못하는 역량 차이가 근원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용자는 서비스를 이용할 때 불확실성을 감내하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단순한 배달과 달리 청소, 세탁, 분갈이 등에는 전문성이 요구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기대하는 품질의 차이와 교육이 필요한 이유는 분명해집니다.

진화하는 맥락에 대하여, 구매부터 반품까지

“도구가 진화하면 사람의 욕망과 크리에이티브도 진화한다”(p.266)라는 하라 켄야의 말에선 우체국에 피팅룸을 넣은 이유를 다르게 해석해 봤습니다. 한국처럼 3시간 만에 바로 원하는 물건을 받아볼 수 있는 상황과 달리 온라인에서 주문한 제품을 받아보는 데 며칠이나 걸리는 캐나다와 같은 곳에선 사용자가 2가지 니즈를 동시에 가질 겁니다. (1) 내가 주문한 제품을 빨리 받고 싶다. (2)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다른 색, 핏, 소재라면 빨리 반품하고 싶다. 빨리 받는 것만큼이나 빨리 반품하는 것도 중요한 과업입니다. 그래야 결제를 취소할 수 있고, 다른 물건을 구매할 때 마음이 편안하니까요. ‘캐나다 우체국’은 피팅룸을 통해 고객의 현장반품 수요를 바로 소화할 수 있게 된 겁니다.

Closing

오늘 『디테일의 발견』을 통해 우리는 ‘관찰’과 ‘이해’의 깊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 것까지 누가 신경 쓰냐”는 말속에서도 우리는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고, ‘당연함’이라는 이름으로 지나쳤던 순간들을 다시 돌아보았습니다. 제가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닳고 닳은 길에도 언제나 뒤집어보지 않은 돌들이 있는 법이다”라는 구절입니다. UX 리서처로서 우리는 그 돌을 뒤집어보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발견되는 작은 통찰들이 모여 더 나은 사용자 경험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 우리 따뜻하게 관찰하고 부지런히 기록하며, 새해 모임에서도 여러분의 깊이 있는 관찰과 따뜻한 시선을 기대하겠습니다.

우리의 대화 속에 나왔던 이야기들

트레바리 <리서치 하는데요> 시즌4 첫 번째 단체사진 📚

  • 주은수 – 발제문을 읽고 모임에서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미리 정리한 ‘내 생각
  • 오잔 바롤 – 『문샷』 | ‘문샷(Moonshot)’은 달을 제대로 보기 위해 망원경을 제작하거나 성능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달탐사선을 제작하는 식의 통큰 계획을 일컫는다.
  • 윤석덕 한국도로공사 차장 인터뷰 | 누가 뭐라하든 도로에 ‘분홍선’, 노면 색깔 유도선 개발
  • 레드버스백맨 – 우리는 왜 사용자의 진짜 니즈를 놓치는가(JTBD)

공간

  • 바늘이야기 | 뜨개질 하려는 사람을 위해 마련한 연희동의 복합문화공간으로 대니얼 카너먼의 ‘피크엔드 법칙’을 느낄 수 있는 사례로 은수 님이 소개. 문을 열 때에는 바늘코와 실을 활용해 코를 당기는 방식으로 시작해 구매를 마치고 나갈 때에는 고소한 버터향이 나오는 카페가 나오고 ‘바만추(바늘이야기에서 만남 추구)’라는 문구로 ‘뜨개질’을 공통 관심사로 한 자연스러운 만남까지. 카페에서는 모두 뜨개질을 하고 있었다고 ☺️
  • SWIMMING TURTLE |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갈 때 계단이 아닌 낮은 경사도의 슬로프를 걸어 올라가도록 만든 강원도 고성의 카페. 슬로프를 오르고 내릴 때 편안했고 계단과 다른 경험을 통해 공간에 대해 인상을 갖게 한 곳. 이름은 바다거북이라는 뜻이라고
  • 송고고택 | “송소고택 방으로 안내하기 전, 내일 손님을 맞을 다른 방 아궁이에 잠시 멈췄다. 참나무 향이 기분 좋게 나며 벌겋게 타는 장작을 보여주며 “손님이 예약하면 하루 전부터 방에 불을 이렇게 땝니다. 당일 날 때면 방이 뜨거워 손님이 잘 수가 없어서 하루 전에 불을 땝니다. 이틀 동안 그 온기로만 손님들이 편한 밤을 보내시지요”라고 설명했다. 온돌처럼 은은한 온기를 담은 목소리로 전해지는 진심은 추위를 녹이고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