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광역버스에 백팩을 메고 탑니다
dark mode light mode NEWSLETTER

트레바리 시즌3를 시작하며

트레바리 <리서치 하는데요> 시즌 2 마지막 모임을 어제 마쳤습니다. 함께 읽은 네 번째 책은 대니얼 카너먼의 <생각에 관한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가진 책은 2012년 발행한 1판 9쇄였는데 개정판과 비교하니 ‘휴리스틱’을 ‘어림짐작’으로 번역하는 등 몇 가지 용어를 다르게 쓰기도 하고 목차도 달라졌습니다. 2024년 6월에, 2012년 1판 1쇄를 발행한 이 책은 ‘행동경제학의 바이블’이라는 별명이 있지만 모임을 마친 후 저는 가까이 두고 다시 꺼내 볼 벽돌책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았습니다. 시스템 1과 시스템 2를 의식하지 않아도 우리는 매일 살아가며 기쁨과 슬픔을 느낄 테지만 다시 멈춰서 가만히 사용자의 행동과 판단, 감정 그리고 편향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 묵직한 이 책을 다시 꺼내보고 함께 나눈 이야기를 떠올려보면 좋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시즌 1을 마칠 때에도 비슷했습니다. 매달 1번 모임을 하고 나면 집에 가는 길에 정신이 또렷해집니다. “아, 이래서 트레바리를 하는구나”, “아, 지적 교류가 이런 자극을 주는구나”라며 잔잔하지만 생각의 소용돌이 속에 빠집니다. 내가 지나쳤던, 바빠서 가만히 들여다보지 못했던 사용자 경험에 대해 이야기 나눴던 순간들을 복귀하며 <리서치 하는데요> 단체방에 고마움과 안부를 전했습니다. 이건 모임을 마치고 돌아가는 흐뭇한 순간의 감정이었고 매달 네 번째 금요일, 자정 무렵에는 이 감정이 차올랐습니다.

시즌을 연장할지 결정하는 건 꽤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운동을 가기 전에 매번 고민하는 것처럼, 다녀오고 나면 “잘 다녀왔어!” 하지만 가기 전에 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10가지 떠올리듯 망설임이 있었습니다. “연장하길 잘했어!”라고 생각할 거라 믿는 이유가 몇 가지 있습니다. 다른 업종에서 일하며 다른 경험을 하고 있고 다른 직무로 UX를 의식하는 사람들과 만나는 건 사실 제 삶에서 트레바리 이외에는 정기적으로 갖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금요일 저녁, 강남역 한복판에서 자정까지 4시간 동안 함께 ‘인지적 편안함’과 ‘휴리스틱 질문’, ‘기저율 무시’와 ‘프레이밍 효과’를 이야기하는 발제문을 함께 읽는 경험은 소중합니다. 이 좋은 시간을 갖기 위해서는 몇 가지를 이겨내야 했기 때문입니다. 당장 클럽장으로서 제가 해야 하는 일들은 4가지입니다.

  • 매달 1권의 책을 정독하기
  • <리서치 하는데요> 목적에 맞는 발제문 쓰기
  • 발제문에 대해 함께 나눌 경험과 고민거리에 대해 미리 생각해 두기
  • 금요일 저녁부터 주말까지 이어지는 골든타임에 2박 3일 여행이나 금요일 약속 미루기

내적 고민은 더 깊습니다. 다음 시즌에서는 연장하는 멤버들에게 어떻게 이번 시즌에서 좋은 경험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할 것인가? 개인의 경험이 아니라 멤버들의 경험과 생각, 사고의 확장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도록 할까? 이번 시즌까지만 하고 모임을 연장하지 않는 멤버들과는 어떻게 건강한 관계를 유지해야 할까? 어떤 점이 부족해서 연장하지 않을까? 여러 가지 내적 고민에 대한 정답을 모두 찾지는 못했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고 <리서치 하는데요>를 쉬어가기엔 잔잔한 여운이 강합니다.

<리서치 하는데요> 시즌2에서 느낀 3가지

UX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은 UX팀만이 아니다

직무에 UX가 들어간 사람만 UX를 고민해서는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실제로 시즌2 멤버들은 기획자, 연구원, 교수, 마케터, CX, 리서처, 디자이너 등 다양한 직무를 넘나 들었습니다. 사실 공급자가 만드는 모든 것의 가치는 내부이든 외부이든 ‘사용자’를 향하고 있기 때문에 모든 메이커는 사용자에 대해 의식해야 하고 사용자에게 제공하는 경험에 초점을 둘 필요가 있습니다. UX, CX를 구분해서 사용자 경험을 개선할 수 없듯 사용자와 리서치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함께 했습니다. 우리는 공급자이기 전에 사용자이고, 공급자일 때보다 사용자일 때가 더 많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드는 것이 사용자 경험

트레바리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할 때 우리는 모바일 앱과 강남 아지트에서의 경험을 구분하지 않고 ‘트레바리’로 평가합니다. 만드는 사람이 조직으로 구분되어 있다고 사용자 경험도 검색, 광고, 결제 등으로 구분되는 건 아니니까요. 어제 네 번째 모임에서 우리는 ‘당근’에서의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무료 나눔을 받아 재판매를 하거나, 가정사정을 이야기하면서 “꼭 구매할게요”라고 이야기했던 사람이 연락두절이 되었던 사례 등 ‘당근빌런’ 캐릭터는 다양했습니다. 매너온도가 커머스의 ‘리뷰’와 비슷하다는 점에 주목하기도 했는데요. 발제문에서 이야기한 대로 ‘리뷰’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데 공감했습니다.

직원을 동원해서 가짜리뷰를 작성하거나, 적립금을 받기 위한 보상적 리뷰 혹은 서비스 메뉴를 배달해 줬기 때문에 인지상정 리뷰, 네이버 플레이스 리뷰처럼 내가 쓰지 않고 카테고리 내에서 여러 가지 버튼 중 하나씩 선택해서 “분위기가 좋아요”, “스타일이 좋아요” 등을 선택할 때에는 고민하지 않고 가장 먼저 보이거나 랜덤 하게 그냥 누르기도 하잖아요. 우리는 종종 생생한 개인의 리뷰, 사람들의 마음을 혹하게 만드는 자극적인 댓글에 관심을 더 주고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에어팟이 처음 나왔을 때의 리뷰를 찾아보니 “스티브잡스가 천국에서 피눈물”이라는 리뷰가 가장 많은 공감을 얻기도 했으니까요.

<리서치 하는데요>에서 고민한 트레바리 3가지 사용성 개선 포인트

1️⃣ 독후감을 쓸 때 간편 로그인 버튼이 홈화면에서 바로 보이지 않음

독후감을 써야만 트레바리 모임에 참석할 수 있기 때문에 모임이 있는 주, 수요일 자정까지 독후감을 쓰는 건 멤버들에게 큰 부담입니다. 스트레스 수준이 높은 상황에서 긴 텍스트를 써야 하는 작업은 모바일보다 PC에 적합하죠. PC에서 트레바리 화면에 로그인을 할 때 모바일뷰가 보이기 때문에 PC 버전에 맞춰 해상도를 조정하면 로그인 버튼이 홈화면에서 보이지 않고 하단으로 스크롤링을 해야 합니다. 간편 로그인이 간편하지 않아요.

2️⃣ 브라우징 하면서 뒤로가기 버튼을 누르면 맨 위로 올라감

다른 클럽 '놀러 가기'를 하기 위해 여러 클럽을 브라우징 할 때 생기는 반복적인 문제는 클럽을 하나 선택(클릭)해서 살펴보고 난 후 뒤로 가기를 누르면 맨 위로 올라가는 것인데요. 이건 스크롤을 할 때 현재 위치(값)를 세션 스토리지에 저장해두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놀러 가기'를 하기 불편하고 어려워서 놀러 가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고 있어요.

3️⃣ 클럽명을 검색해도 내가 멤버로 참여하고 있는 클럽이 나오지 않음

<리서치 하는데요> 클럽에 참여하고 있는 멤버(사용자)가 검색창에 '리서치 하는데요'를 검색해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클럽이 나오지 않습니다. 마이페이지를 통해서 들어가야 하는데 시즌을 연장한 멤버는 스크롤을 이동해서 다시 선택해야 하니 간편하지가 않습니다. 이걸 의도적으로 막아둘 필요가 없다면 검색어에 따라 검색결과가 매핑될 수 있도록 해서 검색창을 유용하게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정적을 견딜 수 있는 힘

이번 시즌2에도 함께 했던 시즌1 멤버가 4분이 계셨습니다. 개인적으로 감사합니다. 제가 하는 모임이 커머스 성격을 갖는 것을 원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리텐션이 되어주셨다는 점에 고마운 마음이 컸습니다. 마지막 모임에는 3분이 함께 해주셨는데 첫 모임 때 <리서치 하는데요>를 소개해주시면서 ‘잔잔함’을 특징으로 꼽아주셨습니다. ‘잔잔하지만 머리가 바삐 움직여서 에너지를 엄청 써요‘라고 말씀해주셨던 것을 오래 기억할 겁니다. 시즌1에 비하면 시즌2에서는 발제문의 BOOK TALK 1, BOOK TALK 2의 생각해 볼 질문들을 소개하고 그 이후의 정적을 조금 더 견뎌낼 힘이 생겼습니다. 정적의 시간 동안에도 멤버들은 생각을 하고 책을 다시 읽고 시스템 2를 작동하며 생각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과정이 작동할 것이고 그렇지 않아도 이 모임은 괜찮다라는 안전감이 생겼습니다.

Closing

시즌3 모임에 대해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는 대신 의식적으로 더 편안하게 느끼려고 합니다. 책을 정독하고 발제문을 진심으로 작성하고 치열하게 이야기하지만 칠링 한 화이트와인을 한잔 나눌 여유, 번개 모임에서는 강남을 벗어나 스튜디오 오오이(@studioooe)이와 같은 우아한 공간에서 서로의 안부와 고민을 흔쾌히 나눌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생각입니다. ‘리서치’를 주제로 한 다른 클럽과도 교류하는 자리를 만드는 것도 생각해 봤어요. 즐겁게, 지속할 수 있도록, 너무 힘 많이 주지 않고 어차피 내가 정답이 아닐 수 있는데 틀려도 괜찮으니 ‘표본을 확장한다’는 마음으로 계속 리서치하면서, 계속 사용자로 남아있으면서 함께 책을 읽겠습니다.

시즌 3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