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모임을 마친 후 48시간이 지나기 전에 모임에서 느낀 점을 간략히 기록합니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트레바리라는 플랫폼을 직접 경험한 것은 좋은 선택이었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연결되면 생각의 진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믿음을 확인했습니다.
강의나 기고 제안을 받았을 때는 2가지 감정이 동시에 느껴집니다. 내가 ‘밥값’을 할 만큼 깊이가 있는가? 기존에 기고했거나 전달했던 콘텐츠와 차별화된 양질의 메시지가 있는가? 주니어, 중니어까지만해도 저는 자기 합리화 성능이 좋은 편이라 자기 검열의 문을 쉽게 넘어섰는데 점점 출력이 떨어집니다. 자기 검열을 1번 더 하게 되고 본업에 더 집중하자는 마음이 고민을 깊게 만들죠. 이런 제안들 중 대부분은 제 고민을 오래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에 제가 거절하면 유사한 일을 하거나 경력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선택의 기회가 넘어갑니다. 그런 고민을 하던 중에 저는 트레바리 모임의 클럽장을 제안받았고 일단 한번 만나보기로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제안해 주신 승호 님을 만난 일이나, 클럽에 참여한 파트너와 멤버들과 연결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값진 경험을 했습니다. 밥값을 잘해야겠다고 다짐하며 토요일 자정을 맞이했어요.
1️⃣ 책을 다시 읽게 되는 새로운 경험
독후감을 읽으면서 나와 다른 사람의 생각에 눈 기울일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책은 장수연 PD가 쓴 『기획하는 일, 만드는 일』이었는데 2차례 정독했던 책임에도 18개의 독후감을 읽는 동안 질문을 떠올릴 수 있었습니다. 같은 것을 읽고 다른 생각을 했다면 똑같은 화면이나 경험을 하는 사용자 역시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겠구나.
2️⃣ 토론하는 경험이 주는 생각의 진폭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과 일이 아닌 주제, 돈이 걸리지 않은 주제, 일정이 좌우되지 않는 주제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금요일 저녁, 강남역 인근에서 갖게 되는 것만으로도 일상을 너머서는 경험이었습니다. 같은 콘텐츠를 보고 다른 페이지에 밑줄을 치고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은 울림이 있더군요.
3️⃣ 같은 관심사를 가진 사람과 나눌 수 있는 형이상학적 이야기
18명이 처음 모인 첫 번째 모임에서는 자기소개 시간을 1시간 동안 가졌는데요. 철학에 관심을 가진 분들이 계셨습니다. 사람의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지, 내가 하는 일의 정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어요. 학부 때 철학을 전공했다는 말과 함께 저 역시 관심을 더했습니다. 우리는 ‘콘텐츠’의 정의에 대해서, ‘UX(사용자경험)’에 대한 고민을 나누며 과거에 말했던 ‘콘텐츠’, ‘UX’와 지금의 것 그리고 2가지 사이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윤리적 역할과 주어진 책임, 균형감각에 대한 생각을 나눴습니다.
4️⃣ 첫 번째 모임에서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
충분히 전달이 되지 못했을 거란 의심을 갖고 파트너, 멤버들에게 발제자의 의도를 보완해 볼게요. 저는 ‘비즈니스를 떠난 좋은 UX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좋은 UX를 제공하는 서비스, 제품이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라져 가는 것을 2023년 11월에도 어김없이 보고 있습니다. UX 리서처를 공격적으로 채용했던 유망한 기업들은 IPO, 신규 투자유치가 어려워지자 UX 리서치, 브랜딩 조직을 축소했고 직무전환 또는 권고사직 등의 방법으로 수익성 강화에 나섰고요. 광고가 없던 페이지엔 새로운 광고가 들어서고 더 좋은 지면에 더 큰 광고가 들어서는 실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더 나은 UX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요? 직무적 책임감, 리서치를 하는데 가져야 할 책무는 무엇일까요?
저는 기획할 때,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먼저 탐구해보거든요. 그냥 사람들을 살펴봐요. 제 아내가 퇴근하면 무조건 플레이리스트를 틀어놓고 집안일을 시작하더라고요. 요즘 사람들이 플레이리스트를 많이 듣고, 또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차에서 누구의 '플리'를 듣느냐에 따라 자부심을 느끼기도 하고, 어떤 음악을 알고 있다는 게 제 자신의 정체성이 되기도 하고요. - 『기획하는 일, 만드는 일』 152, 153min
5️⃣ 그날 문득 든 생각, 연결과 닿음
뉴스레터를 처음 쓴 건 2013년 정도였어요. 당시 인트라넷으로 동기들에게 관심 있게 본 것을 전하면서 시작했습니다. 안부는 궁금한데 점점 멀어지면서 볼 기회가 줄어드는 게 아쉬워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회사를 옮기고 사내메일에 접근할 수 없게 되자 블로그를 개설했고 뉴스레터 대신 블로그에 소식을 적다 블로그를 개편하면서 뉴스레터를 병행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사용하던 메일링 플랫폼을 변경해 메일리에 정착한 것이 34개월 전이었죠. 한 달에 한번 잊을만하면 찾아가는 이 뉴스레터를 보고 트레바리 모임에 참석하셨다는 분들이 제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로켓펀치를 통해 참여하고 있는 ‘취준컴퍼니’에서 멘토링을 하며 인연을 맺은 분들도 계셨고요. 연결이 되어 있었구나. 한두 번의 커피챗, 한 달에 한번 뉴스레터는 간헐적이고 단편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꾸준히 하니까 이게 두툼한 실로 닿아 있는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습니다. 감사했습니다. 더 좋은 트레바리, <리서치 하는데요> 경험을 만들기 위해 고심할게요. 멤버 정원을 더 늘리지 않고 17명으로 마감한 것은 그런 점에서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스우파>는 <댄싱9>으로부터 9년 후에 만든 일곱 번째 프로그램이다. 이것이 "여성 스트릿 댄서라는 소재를 어떻게 찾아내셨어요?"라는 질문에 대한 답 아닐까? (중략) 한 우물만 파는 것이 성공의 공식은 아니겠으나 무언가를 경험하고 깊이 알게 되는 데에는 역시,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 『기획하는 일, 만드는 일』 119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