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광역버스에 백팩을 메고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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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묵혀둘 용기

속도가 글 쓸 때 가장 중요한 요건은 아니지만 의식한다. 라디오 방송에서 내레이션 코너는 대부분 3분 전후, 2백 자 원고지 6매가량이다. 이 정도 분량은 40분에 걸쳐 완성할 때 가장 상쾌하다. 집중해서 한 번에 끝까지 쓰는 방식을 지향하는데 만약 그렇게 되어가지 않으면 잘못하고 있다는 신호로 판단하고 일단 중단한다. 그 신호란 '잘 알지 못하면서 억지로 만들어내고 있다'이다.
40분 내에 2백 자 원고지 6매, A4로 1매가량 쓰는 속도는 받아쓰기 수준이다. 글감에 관련한 정보나 지식 등의 자료를 원고 분량 대비 최소 다섯 배 이상 확보하고 검토를 마쳤으며 생각을 정리해 전체 흐름과 방향을 결정했을 때 달성할 수 있다. 지식과 사유, 판단. 셋 중 하나만 부족해도 문장에 갇혀 뭉그적거린다. 운동선수가 워밍업도 안 하고 경기에 나선 격이니 행운의 여신이 적극적으로 편들어준다면 모를까, 패배하거나 부상당할 게 뻔하다. 원점으로 돌아가거나 폐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초고에 한한 얘기다. 나는 지금 원고지 9백 매 가량의 원고를 아홉 달째 매만지고 있다.
작가는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사람인데 무슨 자료가 그리 많이 필요하냐고 묻는 이들을 많이 보았다. 우선 자료의 성질에 대해 정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자료란 빵 만들 때 필요한 밀가루와 이스트, 물 같은 게 아니다. 재료가 없으면 빵을 만들 수 없지만 자료가 없어도 글을 쓸 수 있다.
글을 쓸 때 가장 중요한 재료는 당연히 자기 자신이다. 내가 없으면, 구체적으로 나의 생각과 느낌이 없다면 글을 쓸 수 없다. 그런데 만약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내가 세상에서 가장 특별한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이 목적이라면 일기 쓰기를 권한다. 이런 글쓰기는 분명 자기 치유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 그게 아니고서야 글 쓸 때 나는 이런 나이기를 바란다. "내가 '나'라고 할 때는 할 때는 당신들 모두를 가리키는 거요."
자료를 찾는 이유는 당신들 모두를 대변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고 싶어서다. 그럴 만한 타당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고 싶어서다. 찾은 자료는 정작 10분의 1도 원고에 활용하지 않는다. 그래도 자격을 갖추지 못한 채 모니터 앞에 앉으면 문장을 밀고 나가는 힘이 떨어지면서 스스로 부끄러워진다. 그 감지기가 내게는 속도다.
요점은 자료나 속도가 아니라 자격이다. 당신들 모두를 대변할 수 있는 자격을 가졌노라는 자신감 없이 - 설령 그것이 착각일지라도 - 글을 완성하기 힘들다. 그리고 그 자격은 남이 내게 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 나만이 내게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아들아, 역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대사다. 천여 년 전에 비슷한 말이 있었다. '흉유성죽(胸有成竹)', 글자대로 풀면 마음속에 완성된 대나무가 있다는 소리로 '일을 처리할 때 이미 계산이 모두 서 있음을 비유하는 말'이다. 11세기 북송에 조보지라는 시인이 있었다. 그의 친구 문동은 묵죽(수묵으로 그린 대나무 그림)으로 시대를 풍미했다. 한 청년이 조보지를 찾아와 문동이 천하제일의 묵죽을 그릴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들려준 말이다. '흉유성죽'은 같은 시대를 산 다른 시인 소동파에 이르러 예술론으로 꽃 피운다.
"대나무를 그릴 때에는 반드시 '먼저 마음속에 대나무를 완성하고 나서' 붓을 들고 자세히 바라보아야 그리고자 하는 것이 보일 것이니 그때에 급히 서둘러서 붓을 휘둘러 곧바로 그려내어 보인 것을 따라잡아야 한다." 그리고 강조한다. "마음속 생각이 충분하면 글은 저절로 써진다."
영화 <기생충>에서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라며 아들에게 감탄했던 기택은 나중에 "완전한 계획은 무계획이지. 계획을 짜도 소용없어. 계획대로 되지 않거든."이라며 전에 한 말을 뒤집는다. 글을 쓸 때 또한 그러하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 더 나은 발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기는 하다. 그렇다고 마냥 운수에 맡길 노릇은 아니라 쓰다 막히고 늘어지면 소동파의 말을 경계로 삼는다. '아직 마음속 생각이 충분하지 않구나'
생각하기도 요령이 있다. 앉은자리에서 골똘히 한다고 나아지지 않는다. 공간을 옮기면 발상이 달라지니 서재에서 거실로, 주방으로 왔다 갔다 해본다. 외출하지는 않는다. 생각의 흐름이 끊기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도 진전 없으면 묵혀두기로 결정한다. 그리곤 운동하러 가거나 산책하러 나간다.
공간을 크게 바꾸고 몸을 크게 움직이면 생각도 바뀐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끝을 보지 못한 생각을 계속 붙잡고 늘어지다 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니 되도록 내가 가장 잘 생각할 수 있는 생각으로 생각을 옮긴다. 생각에 패배해 의기소침해진 기운을 스스로 북돋으려는 의도도 있다. 이런 식으로 다람쥐가 도토리 여기저기 묻어두듯 생각을 묵혀둔다.
이동하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약속 시간보다 미리 도착한 카페에서, 재미없는 소리만 하는 모임 등에서 참나무로 자랄 소지가 있는지 어떻게 하면 참나무로 키울 수 있을지 곰곰이 내 도토리들을 들여다보곤 한다. 바로 몇 시간 전부터 묵히기 시작한 도토리도 있지만 10년도 훌쩍 넘긴 도토리들도 많다. 그쯤 되면 썩은 거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연의 씨는 천년 후에도 꽃을 피우지 않던가.
스페인 카탈루냐를 대표하는 3명의 화가로 피카소, 달리 그리고 호안 미로(Joan Miró)가 있다. 호안 미로가 말년에 그린 그림을 처음 보는 사람은 "이 정도는 나도 그릴 수 있겠다", "우리 아이가 유치원에서 그린 것 같다"라고 이야기할 때가 많다. 머리카락은 선 3가닥으로 표현하고, 새는 선 1개, 별은 선 4개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가 유년시절에 그린 그림을 보면 관찰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거울에 비친 모습까지, 눈동자에 비친 잔상까지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걸 보고 나면 그의 그림을 다시 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노인이 아이처럼 그림을 그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한번 그려보고 깨닫느다. 호안 미로는 친구가 만들어준 자신의 작업실에서 수십 개의 그림을 동시에 그렸다. 하나의 그림을 그리다 다시 묵혀두고 다른 그림을 그리고, 묵혀둔 그림을 꺼내서 다시 그렸다. 파리 유학 중에 그의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고 그림을 구매해 준 사람은 다른 아닌 피카소였다.

Source: 유선경, 『어른의 어휘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