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광역버스에 백팩을 메고 탑니다
dark mode light mode NEWSLETTER

소비자의 입장에 서보는 방법

손을 내밀면 바로 꺼낼 수 있도록 책상 가까운 곳에 두는 책이 있습니다. 장인성 님이 쓴 『마케터의 일』입니다. 저는 마케터는 아니지만, 시장이 궁금하고 또 마케터와 협업하는 사람입니다. 이 책은 마케터가 아니더라도 소비자의 생각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챕터는 ⟪소비자의 입장에 서보는 방법⟫입니다.

소비자의 입장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볼게요. 어떻게 소비자 입장에 빙의할 수 있는가.

일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었는데요. 자세한 내용까지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대중음악 편집하는 이야기였어요. 좋은 소리를 만들려면 좋은 장비가 필요하잖아요. 악기도 스피커도 엄청 비싸고 좋은 걸 씁니다. 그런데 그 비싼 장비들로 가득한 편집실에서 숨소리, 미세한 소리 한 자락까지 신경 쓰며 편집을 마치고 최종 테스트를 할 때에는 흔히 구할 수 있는 싸구려 스피커로 들어본다는 거예요. 싸구려 스피커로 들어도 좋은 음악이어야 진짜 좋은 음악이라는 거죠. 원음을 생생히 재현하는 고음질이 아니라 대중이 듣는 저음질이 진짜라는.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눈이 뜨이고 귀가 뻥 뚫리는 느낌이었어요. 사실 우리가 평소 대중음악을 접하는 환경이 음악 강상에 최적화된 건 아니잖아요. 노트북 스피커로 듣거나 스마트폰 스피커로 듣고 스마트폰 패키지에 들어 있는 기본 이어폰으로 듣고, 카페나 술집이나 옷가게에서 사람들의 말소리 사이로 듣죠. 거실에서 TV 볼 때는 그나마 좋은 환경인 거네요.
마케팅 메시지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우리가 영혼을 담아 한 줄 한 줄 쓴 카피는 앞의 이야기에 나왔던 싸구려 스피커를 통해 사람들에게 읽힙니다. 메인 카피, 서브 카피, 그 아래 진심을 담아 깨알같이 자세히 쓴 것들 다 잘 들리지 않습니다. 우리 이야기를 그렇게 공들여서 열심히 읽고 적극적으로 이해하려 들지 않으니까요.
이런 상황을 뚫고 전달된 메시지만이 소비자에게 읽힙니다. 소비자는 우리와 이해관계가 다르고, 사전 지식이 다르고, 메시지를 접하는 상황이 다릅니다.
우리는 우리 브랜드에 관대합니다. '이렇게 좋은 걸 왜 안 사?'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소비자는 웬만하면 안 사는 게 기본입니다. '비슷한 게 있는데 살까 말까', '좀 비싼데 다음에 살까'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 중에 소비자가 모르는 게 뭐지?' 하고 스스로 물어보세요. 엄청 많을 거예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수많은 것들이 우리 눈에는 보이는데 소비자 눈에는 안 보입니다. 이야기는, 상대가 뭘 알고 뭘 모르는지 아는 것부터가 시작입니다.

저는 마케팅 메시지를 사용성으로, 마케터를 UX 리서처로, 소비자를 사용자로 치환해서 읽곤 합니다. 사용자는 읽지 않고 훑어볼 뿐이고, 팝업창이 열리면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고 그냥 닫아버릴 때가 많습니다. 제품을 고민해서 만들고, 수십 번 살펴본 제작자와 달리 가끔 한번 보고, 그마저 다 보지 않고 중간에 급한 일을 처리합니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과 쓰는 사람은 사전 지식이 다르고, 이해관계도 다르죠. 그 상황에서도 해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뛰어난 사용성입니다. 지하철 2호선 내선순환, 외선순환처럼 계속 접해도 헷갈리지 않도록 시계방향, 반시계방향으로 바꾸는 일. UX 리서처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