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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디드 스페이스

핵심은 가치를 판단하는 주체가 기업이 아니라 고객이라는 사실입니다. 공간의 인상은 고객의 입장에서 고객의 사고를 기초로 결정해야 합니다. 브랜드 공간이 어떻게 고객과 긍정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 브랜드 공간이 어떻게 고객의 방문에 어떤 가치를 제공할 수 있을까?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 김지현 님은 박사 학위 연구에서 중요한 내용을 밝혔습니다. 브랜드 공간을 크게 고객의 실용적・기능적 가치를 위한 ‘기능 중심 공간’, 고객의 쾌락적・감성적 가치를 위한 ‘체험 중심 공간’, 고객에게 사회적・이타적 가치를 갖게 하는 ‘의미 중심 공간’으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스페이스 브랜딩, 브랜디드 스페이스 공간은 기업이 고객의 가치를 어느 속성으로 설정하느냐에 따라 이 세 가지 구분된 형식을 단일하게 또는 복합적으로 구현합니다. 이에 따르면 스페이스 브랜딩의 접근 방식은 형태 기반 기능 가치, 행태 기반 관계 가치, 의미 기반 대상 가치를 추구하는 세 가지 방식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➊ 형태 기반 기능 가치

2019년 퍼블리 <서비스 디자이너, MUJI HOTEL을 다시 찾았습니다> 리포트 발행 시 촬영한 MUJI HOTEL ©REDBUSBAGMAN

형태 기반 기능 가치를 추구하는 스페이스 브랜딩이란 공간의 기능적 측면으로서 브랜드 공간이 고객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가장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접근성, 이용 편의성, 쾌적한 환경 등 편의적 기능, 결과적으로 나타나는 공간의 형태와 파사드의 차별성, 스타일의 조화 등 시각적 표현에 대한 만족을 의미하는 심미적 형태, 그리고 상징적 표현이나 일관된 주제를 연상시키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제시해 공간이 갖는 의미를 연상적 기호로 경험하게 하는 브랜딩 방식입니다.

일본의 무인양품과 닥터자르트는 형태를 기반으로 가치를 추구한 좋은 사례로 볼 수 있습니다. 무인양품은 좋은 품질의 상품을 심플하고 담담하게 보여 주는 방식으로 매장을 구성해 ‘이것으로 충분하다’라는 기업의 철학을 공간에 구현했습니다. 기능적이고, 간결하고, 겸손한 공간의 인상은 무인양품이 추구하는 가치를 편의적 기능으로 브랜딩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닥터자르트는 브랜드 인상이 구축되지 않았을 때, 브랜드의 철학 ‘피부 본연의 건강’을 피부에 중요한 본질적 요소인 물, 공기, 빛으로 구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 요소들을 가장 정화된 형태로 경험할 수 있는 ‘필터 스페이스’ 공간을 구축했습니다. 2016년 브랜드 론칭을 성공으로 이끈 첫 플래그십 스토어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차단된 화학 실험실 같은 공간으로 디자인했습니다. 이 공간은 매 시즌 새로운 브랜드 경험 공간으로 진화되고 더 나아가 현대인의 수면의 질이 피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건강에 중요하다는 점에 착안해 숙면 연구소라는 공간도 구축했습니다. 공간으로 브랜드의 기능적 가치를 심미적 형태로 훌륭하게 인상 지은 것입니다.

❷ 행태 기반 관계 가치

Nike’s New NYC Flagship is the Face of Living Retail ©Nike

행태 기반 관계 가치를 추구하는 스페이스 브랜딩은 브랜드 공간이 고객의 체험이나 교류, 능동적 참여의 경험을 이끌어 브랜드와 고객이 긍정적인 관계를 만드는 방식을 말합니다. 행태 기반 관계 가치는 본질적으로 고객이 공간을 돌아다니며 즐거운 경험을 축적하는 자율적 행위, 브랜드 공간에 마련된 고객 참여 콘텐츠에 능동적으로 반응하며 만족하는 소통적 참여, 그리고 브랜드 공간에 특별히 마련한 이벤트 등에서 우연히 경험하게 되는 즉흥적인 사건에 만족하는 유희적 사건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 공간의 효용은 공간 구축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운영으로 완성됩니다. 변화하는 프로그램으로 공간을 운영해야 브랜딩이라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객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춘 다양한 운영 프로그램을 통해서 유희적 사건의 가치를 높일 때 스페이스 브랜딩의 효과는 극대화됩니다. 행태 기반 관계 가치를 추구하는 스페이스 브랜딩 사례로는 미국의 나이키와 한국의 무신사를 꼽을 수 있습니다.

공간을 통해 행태 기반 관계 가치를 처음 선보인 곳은 1996년 문을 연 뉴욕 5번가 나이키타운입니다. 이 플래그십 스토어는 매출과 상관없이 고객이 ‘Just Do It’이라는 가치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구축되었기 때문입니다. 경영진은 고객의 경험이 브랜드 광고보다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건물의 붉은 벽돌과 아치형 창문의 파사드는 의도적으로 1960년대 뉴욕의 공립 학교 체육관의 외관을 차용했습니다. 벽에는 “명예, 용기, 승리 및 팀워크”라는 스포츠의 보편적 가치가 새겨져 있습니다. 농구의 마이클 조던 등 각 스포츠 종목을 대표하는 스타플레이어를 중심으로 한 인터랙티브 공간은 나이키 팬들로부터 ‘사원’이라 불리며 맨해튼의 명소로 거듭났습니다. 애플스토어 이전에 도시를 대표하는 명소가 된 브랜드 매장의 선구자 격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개장 이래 하루 약 1만 5000명이 방문했을 만큼 인기를 얻었죠. 2020년, 오리지널 스토어는 문을 닫았고 2018년 11월 15일, 5번가 52nd Steet에 ‘NYC House of Innovation 000’이라는 새로운 플래그십 공간이 문을 열었습니다. 나이키타운의 몰입적 체험 브랜딩의 전통을 이어 커스트마이징 등을 통한 브랜드 관계가치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온라인 편집숍 무신사는 2019년 9월 홍대 앞에 무신사 테라스를 열었습니다. 공간은 철저히 무신사 브랜드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설계했습니다. 전체 공간의 4분의 1만 기능적 판매의 공간으로 활용했습니다. 온라인 스토어 특성상 무신사는 고객과의 직접적인 대면 접점이 없고, 브랜드 자체를 통한 고부가 가치 창출이 어렵다는 점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고 무신사 테라스는 그 시도의 신호탄이었습니다. 고객은 무신사가 추구하는 ‘패션’이 ‘문화’라는 가치를 오프라인 공간에서 다양한 행사를 경험하며 체득했습니다. 고객은 공간에 머무르는 동안 쇼핑 페스티벌, 영화 상영회, 라이브 공연, 식사, 패션쇼, 디자인 전시 등 무신사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유희적 사건의 관계 가치로 경험했습니다.

❸ 의미 기반 가치

마지막으로 의미를 기반으로 해 대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은 브랜드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합니다. 즉, 브랜드 공간이 고객 개인의 차원을 넘어 공공의 안녕, 행복과 같은 공동체의 삶의 질을 높이고자 하는 사회・문화적 가치, 공유 가치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의미 기반 대상 가치는 두 가지의 세부 가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브랜드 공간을 구축하는 지역, 장소의 환경과 역사・문화 등을 배려하는 맥락적 가치를 추구하는 방식, 둘째는 브랜드 공간 자체를 고객을 위한 공유재로 개방하는 방식입니다. 최근 공간 재생이 화두로 부상하고 있는 것은 맥락적 장소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고객의 특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의미 기반 대상 가치 스페이스 브랜딩의 대표적인 사례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샤넬 스토어입니다. 2016년 샤넬은 명품 부티크들이 모여 있는 고급 쇼핑 거리에 혁신적 스토어를 선보였습니다. 네덜란드 건축가 MVRDV가 디자인한 크리스털 하우스는 평범한 건물의 1층과 2층의 벽돌을 유리블록으로, 창문 프레임을 유리로 바꿔 마치 투명 건물처럼 보였습니다. 밤에는 매장의 전체 공간이 투명하게 그대로 거리에 투사되면서 독보적인 이미지를 만들었습니다. 거리의 풍경을 헤치지 않고 지역의 맥락과 함께 하면서도 매우 창의적인 공간을 통해 샤넬은 의미 기반 스페이스 브랜딩을 선보였습니다. 현재 이 공간은 샤넬이 아닌 에르메스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고급 소매 부동산 투자사 바레나르(Warenar)가 소유하고 있는 이 건물은 샤넬이 만든 것이 아니라 임대를 위해 구축된 공간입니다. 지역의 맥락을 반영하는 공간은 어떤 브랜드에도 긍정적 인상을 심어 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세계 각국에 진출해 있는 호주의 글로벌 화장품 브랜드 이솝의 매장은 모두 다른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어느 도시에서나 그 도시의 문화와 철학을 바탕으로 매장을 설계하기 때문입니다. 도시의 문화와 지역성을 대변하는 공간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이솝은 ‘매일의 일상을 한 단계 높게 끌어올린다’는 가치를 각 도시의 고유한 맥락적 장소로서의 공간에 풀어냅니다. 제품과 패키지를 최소한의 장식으로 배치하는 비주얼은 광고 없이도 이솝을 브랜딩합니다. 온도, 음악, 냄새, 촉감 등 강력한 디테일이 이솝이라는 브랜드 정체성을 구성하는 겁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화장품 브랜드 아모레퍼시픽의 아모레 성수는 2019년 성수동에 체험만을 위한 대규모 공유 공간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젊은 층 사이에서 가장 핫한 동네로 부상한 성수동은 본질적으로 화장품 브랜드와는 어울리지 않는 공장 지대입니다. 한마디로 어울리지 않는 조합, 의외의 조합입니다. MZ세대는 이러한 이질성에 대해 쿨하다, 매력이 있다고 받아들입니다. 아모레 성수는 과거 자동차 정비소의 공간적 흔적을 경계 없이 바라볼 수 있는 중앙의 조경 ‘성수 가든’에서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을 자유롭게 경험하도록 설계했습니다. 고객들은 공유와 보존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품은 공간에서 체험에 몰입합니다. 아모레 성수는 ‘(화장품을) 바르다’라는 가치를 온전히 경험할 수 있도록 화장품을 발라 보는 데 장애가 되는 요소들을 모든 공간에서 덜어내는 스페이스 브랜딩을 했습니다.

©김주연, 『스페이스 브랜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