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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순간 김성립이었다

  허균의 누이이자 천재시인이었으면서도 시대를 잘못 타고나 불운한 삶을 살다 간 허난설헌이 생전에 입버릇처럼 말했다는 세 가지 한恨(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김성립의 아내가 된 것)을 떠올리면, 지금의 인식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해진다. 악몽의 데자뷔는 악몽 자체보다 훨씬 더 끔찍하다. 두 악몽의 시간적 간극이 클수록 공포는 배가된다. 질곡을 벗어난 지 한참 되었다고 생각했으나, 여전히 그 부근이라는 인식은 우리를 절망에 빠뜨린다. 김성립의 자리에 내 이름을 넣어봤다. 어울릴 수 없다고 부정해보지만 장담은 못하겠다. 순간순간 김성립이었던 적이 많았던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밤 곤죽이 되어 베개도 베지 못하고 정신없이 자든 아내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얼마나 피곤했던지, 속된 비유지만 아내는 정말 껌처럼 침대에 쩍 붙어 있었다. 괜히 미안하고 죄스러워 나도 아내 곁에 껌처럼 누웠다. 나는 아내의 천근 같은 머리를 떼어 팔베개를 넣어주고 82년생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생각하며, 71년생 김지영의 삶을 떠올렸다. 82년생 김지영 씨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을 것이다. 우리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적어도, 각자 자신만의 김지영 씨를 소환해보는 마음과 김성립으로 환치되지 않으려는 노력, 그 언저리에는 서 있어야 하지 않을까?

   물론 잘못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는 남성이 생길 수도 있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펜스룰과 성추행 포비아도 만연하다. 누군가 나를 지하철 성추행범으로 지목한다면 결백함을 입증할 수 있을까 상상해보지만, 나조차도 쉽게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올바른 방향으로의 여정은 멈출 수 없다. 한참 늦은 여정을 앞당기기 위해 시공을 구부려 순간적으로 워프이동하려면 극심한 고통을 피할 수 없다.

   나는 페미니즘을 둘러싼 최근의 격렬한 논쟁이 늦었지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갈등은 부글부글 끓어올라야 한다. 분노와 갈등이 드러나지 않고 침잠하면 안으로 썩을 뿐이다. 부글부글 끓어야 맛있는 김치가 되고 술이 된다. 정성껏 쓴 손편지가 우체통과 우체국을 거치며 잘 발효되어 상대에게 전달되듯(이문재, <푸른 곰팡이>, ⟪산책시편⟫, 민음사, 2007), 지금은 손편지가 배달되기 전 발효의 시간이다. 나는 그렇게 더디게 온 손편지가 어떤 내용일지 무척 궁금하다.

   재판을 하다 보면, 법률의 존재나 의미를 잘 몰랐다는 주장을 많이 접한다. 실제로 많은 법규정은 전문가가 보아도 이해하기 어렵고 모호하다. 세법같이 지나치게 자주 바뀌는 법도 있다. 그러나 성범죄 사건에서 수범자受範者에게 부과된 정언명령이나 금지규정에 대한 이해와 해석은 그리 복잡한 기술이 아니다. 간단하고 단순하다. 다른 사람의 몸을 허락 없이 만지지 말라. 폭력이나 협박, 이와 동일시할 수 있는 힘을 사용해 간음하지 말라. 무엇이 어려운가.

박주영, ⟪어떤 양형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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