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바보같이 굴었을까.’
지나온 세월을 돌이켜 보면 후회되는 일이 한둘이 아니다. 그럴 때면 속상하기도 하고 나 자신이 밉기도 하다. 그런데 후회는 고통스럽지만 달콤하다. ‘그때 그런 잘못을 안 했더라면” 이란 가정법은 잘못된 과거를 되돌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상상 속으로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그때 그일 만 아니었어도 나는 지금 더 잘 돼 있을 거야’
후회 속에는 이런 마음이 숨어 있다. 우리는 과거의 사소한 실수만 아니었어도 크게 바뀌어 있을 현재를 상상함으로써 손상된 자존감을 회복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 경우 현재와 미래보다 과거가 더 중요해진다. 그러므로 후회 속에 사는 사람들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를 고치려고 현재와 미래를 담보로 내놓고 있는 것과 같다.
잘못된 과거를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에 빠져 지금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 정신분석 치료를 받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여기에 속한다. 이런 환자들을 치료하다 보면 그들이 커다란 우주복을 입고 산다는 느낌을 받는다. 우주복 안은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도 환자들은 감히 우주복을 벗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그저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과거에 얽매여 있다. 우주복을 벗으면 세상의 맑은 공기와 따뜻한 햇볕과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텐데 차마 그럴 용기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몸이 성할 날이 없었던 한 환자가 있었다. 그런데 그녀는 폭력적인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를 둔 여자가 알코올중독자인 남자를 만나는 경우도 있었다. 이들은 ‘과거’라는 우주복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도돌이표처럼 끔찍한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사실 내면의 상처 입은 어린아이가 성장하고자 몸부림치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 힘이 없을 때 너무나 고통스럽고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아이는 깊은 상처를 안고 마음속 깊숙이 숨어 버린다.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에 떨며 성장하기를 멈춰 버린다. 그렇지만 그 아이도 어떻게든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래서 과거와 똑같은 상황을 재현함으로써 그것을 없었던 일로 만들거나 극복하려고 애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는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그저 고통만을 반복하게 될 뿐이다.
그처럼 과거에 묶여 꼼짝도 못 하는 사람들이 스스로 문제가 있음을 깨닫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바로 정신분석이다. 환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문제를 직면하고, 그것을 이해하고 풀 수 있도록 해석해 주고, 기다려 주는 것이다. 그런데 가끔 사람들은 나에게 그런 질문은 던진다.
“그래서요? 과거를 알면 어떻게 되는데요? 안다고 뭐가 달라지나요? 고통스러운 과거가 갑자기 없어지기라도 하나요?”
그들의 말이 맞다. 사람들 앞에만 가면 불안하고 도망치고 싶어지는 마음이 어릴 적 무서운 아버지가 조그만 실수에도 심하게 야단치고 벌을 주던 기억과 관련이 있는 것을 알았다고 해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렇다고 무섭고 엄한 아버지가 갑자기 따뜻한 아버지가 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항상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그들의 요구를 잘 거절하지 못하는 것이 어릴 적 외갓집에 보내졌던 기억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해도 그게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단지 알았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처럼 이론적으로 현재 자신이 겪는 불안과 두려움이 과거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을 ‘지식적 통찰’이라고 한다. 그런데 지식적 통찰은 큰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감정적 통찰’이다. 그것은 문제의 원인에 대해 ‘아 , 그렇구나’ 하고 가슴 깊이 느끼며, 그동안의 슬픔과 두려움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을 말한다. 그리고 이 감정적 통찰이 우리를 변화시킨다.
하지만 한 번의 통찰로는 불충분하다. 사람은 변화하지 않으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고, 과거를 반복하려는 속성도 지니고 있기 때문에 통찰을 생활에 적용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 걸음 전진하면 한 걸음 후퇴하고, 또 한 걸음 전진하면 다시 한 걸음 후퇴하며, 전진과 후퇴를 반복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영원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아무리 노력해 봤자 안 되는 것일까? 그럴 때 나는 말한다.
“시작이 반입니다.”
일단 문제의 원인을 어렴풋하게나마 알게 되면 그 문제로부터 ‘거리 두기’가 가능해진다.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가 거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 것을 알고 나면 적어도 현재와 과거를 분리할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다시 똑같은 상황에 놓였을 때 멈칫하게 된다.
‘아, 내가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있구나’
그러면 스스로 선택권을 쥐게 된다. 과거 속에서 살 것인가. 아니면 현재를 있는 그대로 직시할 것인가. 이때 현재의 고통이 과거에서 유래됐음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마음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기에 지금과 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지 자세히 알 필요가 있다. 과거의 일이 지금의 심리 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그 메커니즘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다.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하는 환자의 경우, 어릴 때 외갓집에서 겪은 일들이 분노를 일으켰고, 분노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초자아가 지나칠 정도로 엄격하게 발달했으며, 그래서 조그만 잘못도 심한 잘못처럼 느낀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또 자기 안에 존재하는 강한 분노 때문에 스스로를 나쁜 아이로 여기고, 그것이 알려져 언제고 사람들로부터 버려지게 될까 봐 불안해서 사람들과 가까워지지 못하고 있었음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그렇게 나쁜 아이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고, 초자아가 좀 더 부드러워지면서 죄책감이 줄어들고, 사람들과도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과정은 물론 어렵다. 그게 쉽다면 왜 정신분석 치료가 수년씩 걸리겠는가. 그러나 만일 사랑하는 사람이 괴로움 속에서 자꾸 똑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아마도 꼭 안아 주며 그것은 모두 지난 일이라고 알려 주고 다른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마찬가지로 당신 안의 상처받은 어린아이에게도 그렇게 해 주어야 한다.
이제 당신은 무력한 어린애가 아니다. 당신은 어떤 문제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고 행복을 설계할 수 있는 어른이다. 만일 마음속 상처받은 어린아이가 당신을 짓누르고 있다면, 그래서 알 수 없는 불안과 공포 때문에 현재 어떤 문제를 반복하고 있다면,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어떤 경험이 당신을 힘들게 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 애써야 하는 것이다.
더 이상 과거가 당신의 현재를 지배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현재를 덮고 있는 과거의 무거운 이불을 걷어 내고 밖으로 나와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푸른 하늘을 보는 것이다. 과거가 고통스러웠다고 해서 현재까지 고통스러워야 한다는 법은 없다. 과거가 고통스러웠다면 그것을 잘 지나 온 당신은 그것만으로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다. 분명 당신은 행복해질 것이다. 과거의 슬픔을 인정하고 슬픔을 이겨 낸 자신을 대견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행복해질 자격이 스스로 있다고 믿는다면, 새로운 방식으로 사는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Source: 김혜남,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