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광역버스에 백팩을 메고 탑니다
dark mode light mode NEWSLETTER

무한 성장에 순간의 쉼일지라도

안녕하세요, 쿠팡에서의 커리어를 마치고 멀리 간다는 마음으로 7월까지 잠시 휴가를 갖고 있습니다. 순식간에 지나간 2년 3개월이지만 회사는 계획대로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섰고 매니저는 3번 바뀌었을 만큼 변화도 많았습니다. 예상과 다른 변화의 모든 순간에도 UX 리서처로 일 하는 스스로를 사랑했습니다. 회고는 더 나은 내일을 만들고, 성장을 도모하는 계기가 된다고 믿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오답이어도 괜찮으니 표본을 늘린다는 생각으로 느낀 점들을 정리합니다.

마지막 근무일에 사원증 반납하기 전에 찍은 사진 ©REDBUSBAGMAN
마지막 근무일에 사원증 반납하기 전에 찍은 사진 😊

아쉬웠기에 앞으로 바꿔보려는 부분

  • 기대했던 만큼 ‘보이는 임팩트’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B2B2C 성격을 가진 프로덕트였기 때문에 판매자(광고주)와 구매자를 동시에 고려해야 했는데 돈을 지불하는 판매자(광고주)에 리서치 초점이 맞춰진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비즈니스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주가 되고, UX 리서치의 임팩트를 증명하기 위해서는 묵묵하기보다 보여주기 위한 일들도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도 필요했습니다. 보여주기 위한 일들에 더 애를 쓰는 일을 다음엔 잘할 수 있을까?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 발제해서 진행한 프로젝트의 비중이 적었습니다. 프로덕트 조직 내에서 요청받은 주제, 목적성이 분명한 주제가 많았고 동시에 6개의 다른 주제에 대해 리서치를 진행하면서 진단이 필요한 다른 지점을 적극적으로 살펴보지 못했습니다. 발견 – 탐색 – 정의검증 4단계 중 리소스를 뒤의 2단계에 많이 할당했습니다.
  • 롤모델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13년 차 시니어 UX 리서처로서 리서치 설계, 접근방법, 커리어 고민에 대해 나눌 수 있는 롤모델이 없었습니다. 훌륭한 동료들이 있었지만 ’15년 차 UX 리서처의 모습은 어때야 하는가?’, ‘IC(Individual Contributor)와 People Manager 중 어떤 트랙이 나에게 더 잘 맞을까?’라는 질문은 미완이었습니다. 앞서 묵묵히 걸어가는 시니어 UX 리서처로부터 지지와 코칭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좋았기에 앞으로 계속 가져갈 부분들

  • 나태하지 않게 방망이를 깎았습니다. OKR 우선순위가 가장 높은 프로젝트에 투입되어 빠른 템포로 UX 리서처의 일을 하면서도 OKR 논의에서는 타이밍, 우선순위, 담당자 퇴사 등으로 빠져있던 기능들이 있었습니다. 사용자가 제품을 쓸 때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부분이라면 OKR 딱지가 없다고 외면하지 않고 필요한 리서치까지 치열하게 했습니다. 해야만 하는 일들은 물론이고, 애를 써야만 할 수 있던 일까지가 제 몫이라고 여겼습니다.
  • 그릇을 키우려 했습니다. 돈을 받으니 일을 하는 것이야 당연한데 주어진 업무 외적인 일까지로 경계를 늘리려 애를 써봤습니다. 리서치 수요가 늘어나는 판을 보고 리서치를 시스템화하는 것부터 시작했습니다. 패널을 갖추고 자체 채널을 만든 이후에는 리서처들이 쓸 수 있도록 쿼리문을 만들고 공유했습니다. 모두 있으면 함께 활용할 텐데 만드는데 시간이 걸리고 자기 일이 바쁘니까 챙기지 못했던 그레이존입니다.
  • 팀으로 일 했습니다. 2년 3개월 동안 매니저가 3번 바뀌었는데, 그 사이 불안했습니다. 팀의 입지, 나의 커리어, 나의 성장. 불안에 그치는 대신 동료들의 불안이나 고민을 알아차리기 위한 팀빌딩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문화를 만들려고 했고 “우리 다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습니다. 저보다 먼저 퇴사한 동료는 ‘UX Research Chat’ 미팅이 쿠팡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퇴사일에 말했는데, 마음이 닿았던 것 같아 심심한 위로가 되었습니다.
  • 그럼에도 꾸역꾸역, 어찌어찌 <UX 리서처의 일> 책을 내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로 책을 지었다니요! 계획한 것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렸지만, 블로그에 지은 글들을 엮어 내는 것이었지만 든든했습니다. 서점에 가면 내가 쓴 책이 있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선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넉넉합니다.

교훈들

  • 나를 채용한 매니저와 함께 일하는 매니저, 퇴사 시점의 매니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보여주기 위한 일만 해서는 안 되지만, 보이는 일에 전략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도 필요합니다.
  • 시니어로 조직에 합류할 때에는 닮고 싶은 사람이나 배울 수 있다고 기대되는 롤모델이 있는지 확인합니다.
  • 지속가능한 복지는 결국 계속 연결되고 싶은 동료들입니다. 성숙한 사람의 생각에는 공감대가 있습니다. 고민을 나누는 것만으로 마음이 나아졌습니다.

그래서 다음 스텝은?

  • 못 했던 강의와 자문, 북토크, 제 도움이 필요한 분들과 커피챗들을 이어갈 생각입니다.
  • 가만히 쉬는 것보다 경험하고, 느끼고, 기록하고, 공유하는 것이 좋아 휴식은 짧게 가질 계획입니다.
  • 함께 하고 싶은 일이 있거나 제안해 주실 일들이 있다면 손 내밀어주세요. 손 내밀면 닿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 처우를 먼저 확인하세요. 시니어라면 새로운 기회를 제안받았을 때 서류, 과제, 인터뷰 등 모든 프로세스를 진행하기 전, 가능하면 일찍 처우를 맞춰줄 수 있는지 채용 담당자나 미래의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모든 단계를 통과하고 처우 협의를 시작하기도 전에 처우를 맞추기 어렵다는 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시간과 에너지를 투입하기 전에 현재의 처우 기반으로 어느 수준까지 협의가 가능한지 먼저 두들겨보세요.
  • 처우가 전부는 아닙니다. 4가지 중 1가지일 뿐입니다. (Compensation, Colleague, Chance, Culture)
  • “어떻게 이직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아래 2가지 글을 참고하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