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로부터 인정받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달콤하다. 당신은 그간 중요한 사람들(부모, 친구, 상사 등)의 인정과 칭찬을 받기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다. 때로 힘들어도 그들을 기쁘게 할 수 있다면 괜찮았고, 또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를 독려해 왔다.
“어쩜 그렇게 말을 조리 있게 잘하세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넌 나를 실망시키지 마라.”
“넌 우리 집의 자랑이야. 다음에도 꼭 1등 해야 한다. 이 엄마는 너를 굳게 믿는다.”
“참관 수업에 가보면 너만 또랑또랑한 눈으로 수업에 집중하더라. 다른 아이들은 딴짓을 하고 있는데 말이야. 너무 기특했어.”
이처럼 달콤한 칭찬들, 그리고 때로 부담스러운 기대의 말들을 참 많이도 들어왔다.
문제는 타인의 인정과 칭찬을 받는 데 ‘양면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쪽에는 칭찬을 받을 때마다 내가 잘하고 있다는 달콤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반대쪽에는 잘못하면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거라는 두려움이 공존한다. 처음엔 인정받는 것 자체가 기뻐서 열심히 노력했고 그럴수록 더 많은 인정과 칭찬이 보상으로 주어져서 좋았다.
그런데 ‘칭찬 효용 한계의 법칙’이던가, 점점 웬만큼 잘해서는 이전에 받았던 황홀한 칭찬을 듣기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 어느 순간 칭찬이 주는 기쁨의 크기가 한계에 달하게 되면, 이러다가 사람들을 실망시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자라게 된다. 걱정은 현실이 되는 법. 본의 아니게 실수를 했을 때 직면하게 된 사람들의 냉담한 표정을 마주하고 ‘너한테 정말 실망했어’ 같은 말을 듣게 되면, 마치 한겨울에 맨손으로 얼음을 깰 때 느껴지는 것 같은 서늘하고 날카로운 상처가 마음속에 남게 된다.
사실은 자신이 그렇게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킨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한없이 수치스럽고 불안한 마음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되는 것이다. 요컨대 인정추구형 완벽주의자들이 느끼는 기쁨의 이면에는 언젠가 나의 능력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드리워져 있다.
긍정적인 변화를 원한다면, 먼저 타인으로부터 인정과 칭찬을 받고 싶어 하는 스스로의 마음에 대해 차분히 생각해보자. 사람은 누구나 괜찮은 사람이기를 원하며 그 증거를 타인의 피드백에서 찾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구이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다만, 오직 타인의 인정을 통해서만 자신의 가치를 확인하고자 하는 것은, 내가 누구인가라는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증거일 수 있다.
새로운 계절을 맞아 ‘자유종목’을 기쁘게 연기하라
‘나는 누구인가’라는 명확한 자아정체감(identity)을 확립하기 전 단계에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중요한 주변 사람들의 평가를 통해 내가 괜찮은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게 된다. 타인의 평가와 피드백은 그 사람의 자존감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나 누군가의 인정과 칭찬을 간절히 원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혹은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가꾼 모습은 그 사람의 진정한 가치감을 형성하는 데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요컨대 이 단계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는 타인의 인정과 칭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마치 겨울에 추위를 막기 위해 두꺼운 외투를 입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확인을 다른 사람이 내게 보내는 반응을 통해서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계절이 바뀌는 시기가 온다. 겨울을 나는데 필요했던 외투가 아무리 멋져도 무더운 여름에는 장롱 속에 넣어두어야 한다. 여름에 외투를 입었다가는 열사병에 걸리고 말 것이다. 계절이 바뀌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이 바뀌듯이, 타인의 칭찬과 인정이라는 요소가 절대적이었던 계절을 벗어나 스스로 자기 가치감을 만들어가야 하는 계절이 되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이제 계절이 바뀌었다.
피겨스케이팅 경기를 본 적이 있는가? 김연아 선수가 세계를 제패했던 싱글 경기와 남녀 선수가 한 팀을 이뤄 연기하는 페어 경기는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두 부문 점수를 합산해 우열을 가리는 방식으로 치러진다. 전반부에 치러지는 쇼트프로그램은 규정된 일고여덟 가지 기술을 포함해 안무를 구성한 후 한정된 시간 내에 연기를 마쳐야 한다. 반면 후반부에 치러지는 프리스케이팅은 말 그대로 규정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이 준비한 안무로 자유롭게 연기를 펼치는 방식으로 점수가 매겨진다. 다시 말해, 쇼트프로그램이 ‘규정종목’ 시간이라면 프리스케이팅은 ‘자유종목’ 시간이다.
이제 당신의 전반부 ‘규정종목’ 연기는 끝났다.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이 나를 성장시켰던 때가 지나가고 이제 후반부인 ‘자유종목’ 시간이 온 것이다. 어떤 책의 제목처럼 이제 ‘그 누구의 인정도 아닌’ 나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나만의 모습을 만들어가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인정추구형 완벽주의자들에게 필요한 변화는 이러한 주변인의 평가로부터 분리 개별화되는 과정과 맞닿아 있다. 이 새로운 계절에 중요한 키워드는 내가 좋아하는 것 그리고 잘하는 것, 즉 ‘내게 가치 있는 것’을 알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나에게 가치 있는 것을 찾아보기
나에게 가치 있는 것들을 찾아보기 위해서는 먼저 노트 한 권이 필요하다. 새 노트를 열어 다음의 두 가지 사항을 진지하게 적어보자. 첫 번째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두 번째는 내가 잘하는 것(강점)과 내가 더 발전시키면 좋을 것(약점)을 적어보는 것이다.
➊ 내가 ‘좋아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기
좋아하는 것을 정리할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지점은 다음의 세 가지다.
첫째, 가능한 구체적으로 적는다. 예를 들어 ‘나는 햇살 가득한 날을 좋아한다’처럼 두루뭉술하게 적는 것이 아니라 ‘나는 오후 2시경 한강공원 00 앞에 있는 평상에 앉아 왼쪽 45도 각도로 보이는 나무에 걸려 반짝거리는 햇살을 좋아한다’처럼 말이다. 또한 ‘나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한다’와 같이 간단히 적기보다는 ‘나는 미샤 마이스키가 연주하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곡 1악장을 듣는 것을 (혹은 연주하는 것을) 좋아한다’처럼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적어야 한다. 그 내용이 나만의 사적인 것일수록 또 구체적인 것일수록 ‘진짜 내 모습’이 진하게 투영될 수 있고 그것이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둘째, 생각나는 대로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적는 것이 좋다. 처음에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적었다고 해서 계속 음악과 관련된 내용만을 적을 필요는 없다. 생각나는 대로, 분야와 종류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적어보자.
셋째,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다 적은 후 비슷한 내용, 혹은 서로 관련되는 내용들을 묶어보고 각 범주마다 이름을 붙여보는 것이다. 가령 ‘휴식할 수 있는 공간에 관한 것’,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타인과의 교류’와 같이 분류해 보자.
그러고 나면 각 범주의 이름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내가 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고 좋아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정리된 것들을 더 많이 실현할수록 인생은 더욱더 행복해질 테니, 어쩌면 더 나은 삶을 위한 실행 리스트가 정리된 것이라 볼 수도 있겠다.
범주화해서 이름을 붙이는 작업을 끝낸 후에는 시간과 공간적인 제약을 감안했을 때 내가 일상 속에서 손쉽게, 더 자주 실천할 수 있는 범주를 위주로 우선순위를 매겨보고 가능한 많이 실천해 보도록 노력하자. 그리고 이 과정에서 느낀 점, 혹은 새롭게 알게 된 점을 노트에 적어보자.
➋ 이미 잘하는 것과 앞으로 발전시키면 좋을 것 적어보기
강점을 가리키는 ‘이미 잘하는 것’과 약점을 가리키는 ‘앞으로 발전시키면 좋을 것’을 적을 때는 한눈에 보이도록 적는 것이 좋다. 그래야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과 ‘나의 강약점’을 쉽게 파악하고 비교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트 중앙에 세로줄을 그어서 왼쪽에는 잘하는 것을, 오른쪽에는 앞으로 더 발전시키면 좋을 것을 적도록 한다. 앞서 나왔던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적을 때와 마찬가지로 나에게 의미 있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는 것이 중요하다.
이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강점과 약점을 적을 때 그 비율을 다르게 적어보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약점은 빨리 그리고 많이 생각해 내지만, 강점은 쉽게 생각해 내기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들의 제안은 약점을 한 개 적으면 강점은 두 개 이상 적는 것이다. 즉, 강점과 약점의 비율이 최소한 2:1이 되도록 적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강점과 약점을 적을 때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는가 혹은 사회적으로 어떤 모습이 더 바람직한가 보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중심으로 적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 그 누구도 아닌 당신 자신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임을 기억하다.
앞선 실습과 마찬가지로 떠오르는 대로 적는 것이 중요하다. 강점과 약점 적기가 끝나면 유사한 것끼리 묶어 이름을 붙여보고, 그 과정에서 어떤 점을 느끼고 새롭게 알게 되었는지를 적어보도록 하자. 아울러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자신이 적은 강점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활용해 볼 수 있는지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인정추구형 완벽주의자에게 가장 필요한 변화는 ‘타인보다 내 마음에 집중’하는 것이다.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할 때 스스로 중심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변화의 방향을 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스스로에 대한 이해와 굳건한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을 때 타인의 신뢰와 인정 또한 더 깊어지고 오래 지속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Source: 이동귀᛫손하림᛫김서영 – 『네 명의 완벽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