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단은 인간의 마음을 도구로 사용하는 측정이다. 측정이란 개념에는 정확성이 내포되어 있다. 다시 말해 측정의 목표는 진실에 접근하고 오류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판단의 목표는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것도, 입장을 표명하는 것도, 누군가를 설득하는 것도 아니다. 판단(judgement)은 사고(thinking)와 다르고, 정확한 판단을 내리는 것은 좋은 판단을 내리는 것과 같지 않다.
판단을 내리는 행위는 일종의 측정이다. 판사는 어떤 척도를 기준으로 죄의 경중을 따져 형벌을 내린다. 보험심사역이 특정 리스크에 대한 보험 상품의 보험료를 산정할 때나 의사가 진단을 내릴 때도 마찬가지다. 줄자로 카펫 길이가 몇 인치인지를 재고, 온도계를 보면서 화씨나 섭씨로 숫자를 확인하는 것이 측정이다. 판단은 기온을 보고 ‘오늘 날씨가 매섭게 춥다’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이때 판단은 판단을 내리는 정신적인 활동과 그 활동의 산물을 모두 의미한다.
측정을 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과학적 측정에서도 이 목표를 완벽하게 달성하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니 판단에는 어쩔 수 없이 어느 정도 오류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 오류 가운데 어떤 것은 편향이요, 어떤 것은 잡음이다. 잡음과 편향이 오류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스마트폰을 가지고 1분 안에 테스트해 보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스마트폰에서 스톱워치를 찾아서 랩(lap) 메뉴를 선택해라. 이 기능으로 스톱워치를 멈추거나 심지어 화면을 보지 않고 연속적으로 시간 간격을 측정할 수 있다. 목표는 10초. 스마트폰을 보지 않고 10초마다 다섯 번 연속 랩을 설정하는 것이다. 속으로 10초를 셈하고 그때마다 다섯 번 버튼을 누르면 된다. 시작하기에 앞서 스톱워치를 눌러 10초가 어느 정도 길이인지 서너 번 확인해 보면 좋겠다. 자, 시작하자.
이제 스마트폰에 기록된 랩타입을 확인하자. 스마트폰 자체는 잡음으로부터 자유롭진 않아도 잡음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랩타임이 정확하게 10초는 아님을, 상당한 시간 차이가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분명히 정확하게 똑같은 타이밍에 랩을 설정하려고 시도했겠지만, 그렇게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위적으로 통제할 수 없었던 ‘변산성’, 그게 바로 잡음의 증거다.
이 결과는 별로 놀랍지 않다. 심리학과 물리학에서 보면 잡음은 보편적이기 때문이다. 변산성은 모든 생물 개체에서 나타나는 생물학적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한 꼬투리에서 나온 완두콩 두 알도 완전히 똑같을 순 없다. 그리고 한 사람에게서도 변산성이 존재한다. 우리의 심장은 정확하게 규칙적으로 뛰진 않는다. 우리는 하나의 동작을 완전히 똑같이 반복할 수도 없다. (똑같은 동작이라고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차이가 크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을 때 청력검사를 받는데 어떤 소리는 너무 작아서 전혀 안 들리고, 어떤 소리는 너무 커서 매번 들린다. 어떤 때는 들리다가 어떤 때는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이제 스마트폰에 찍힌 다섯 개의 랩타입을 보자. 어떤 패턴이 눈에 들어오는가? 예를 들어 랩 다섯 개 모두가 10초보다 짧은가? 이것이 체내 시계가 실제 시간보다 빨리 돌아간다는 의미일까? 이 단순한 게임에서 편향은 랩타입의 평균과 10초의 차이다(랩의 평균 랩타임은 10초보다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다.) 잡음은 이런 변산성을 구성하는데, ‘과녁에 쏜 총알의 분산된 자국’과 비슷하다. 통계학에서 변산성을 측정하는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표준편차다.
Source: 대니얼 카너먼, 『노이즈: 생각의 잡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