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X 리서치를 하면서 리서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꼽는다면 ‘균형감각’이라고 생각합니다. 리서치는 가설을 검증하는 목적을 가진 행위인데 검증이라는 것에는 결국 주관적인 판단이 들어갑니다. ‘어떻게 검증할 것인가?’, ‘어디까지 검증할 것인가?’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해서는 리서처가 혹은 리서처가 속한 조직의 의사결정자가 판단을 하기 때문입니다. 판단에는 해석이 들어가는데, 이 해석이 지나치면 오류가 되죠. 의사결정은 빠를수록 좋죠. 단, 심각한 오류가 없어야 합니다. 저는 리서처로서 숫자를 절대적으로 신뢰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동시에 숫자도 참고합니다.
간단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국가 간의 통계를 비교할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는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한국의 경우 ‘OECD 평균’이라는 수치를 기준정보로 삼을 때가 많습니다. 세계 주요 선진국을 ‘OECD(경제협력개발기구)’라는 집단으로 가정하고 38개국을 비교 대상으로 삼죠. 문제는 38개국 사이의 편차입니다. 세계적인 선진국으로 분류할 수 있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도 있고 상대적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불안정한 콜롬비아, 코스타리카도 함께 속해있기 때문입니다. 평균의 함정에 빠지기 쉬운 것이 ‘집단’을 동일시할 때라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GDP, 가처분소득입니다. 돈으로 환산하면 편합니다. 순위를 정해서 나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어떤 글을 보거나 표를 볼 때 Top 10, Top 5 이렇게 살펴보면 간편합니다. 간편함은 사용성에서 큰 이득이기 때문에 우리는 놓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순위를 세워서 살펴보곤 하죠. 순위는 가장 편안한 구분법입니다. 문제는 GDP를 통해서 사회적인 안정성, 삶의 질을 평가하는데 심각한 어려움이 있습니다. 시위가 급증해서 경찰 등 공권력이 빈번하게 투입되고, 부상자가 늘어나서 병원에 빈 병상이 없어서 입원을 기다리다 죽음을 맞이하는 심각한 사회에서도 GDP는 계속 상승합니다. 또한 평균 가처분소득은 사회 안전망이나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서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죠. 그래서 삶의 질을 나타내는 최고의 지표로 ‘유아 사망률’을 살펴보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유아 사망률은 강력한 지표입니다. 양질의 생활 조건을 규정하는 몇몇 핵심 조건(➊ 전반적으로는 훌륭한 의료 수준, ➋ 구체적으로는 출생 전후 관리, ➌ 신생아 관리, 산모와 유아의 적절한 영양 관리, ➍ 충분히 위생적인 생활 조건, ➎ 취약 가정을 위한 사회적 지원), 그리고 이용 및 접근이 유지되는 사회 기반 시설, 소득, 정부와 개인의 적절한 지출에 근거한 조건을 겸비하지 않고서는 유아 사망률을 낮추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생후 첫해의 생존을 결정짓는 상당수의 전제 조건이 담겨 있는 셈이죠.
흥미로운 점은 유아 사망률이 낮은 국가를 살펴보면 가처분소득 순위와 일치하지 않습니다. 유아 사망률이 낮은 국가는 몇 가지 특징이 있는데 ➊ 국가가 상대적으로 작아서 인구가 1,000만 명 이하인 경우가 많습니다 ➋ 인구 특성을 볼 때 세계에서 가장 동질적이라 이민자 비중이 적습니다 ➌ 출생률이 매우 낮습니다. 캐나다는 현재 유아 사망률이 5명 수준인데 아이슬란드는 3명 정도로 차이가 있습니다. 이렇게만 비교하면 놓치는 것이 있죠. 인구 규모와 구성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캐나다는 아이슬란드에 비해 인구가 100배나 많고, 매년 아이슬란드 총인구만큼 이민자를 수십 개국에서 받아들이고 있죠. 이민자 대부분이 아시아 저소득층 출신이기도 합니다. 미국 유아 사망률은 6명인데, 높은 경제적 불평등이 원인으로 꼽힙니다.
팬데믹을 통해서도 숫자와 리서치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처음 알려졌을 때, 흔히 비교하던 것이 스페인 독감과 메르스, 인플루엔자 정도였습니다. 스페인 독감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메르스 때 우리가 어떻게 대처했고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 많은 미디어가 보도했죠. 이때 바이러스의 잔인함을 이야기하는 기준은 ‘치사율’입니다. 어떤 바이러스로 인해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 사례를 발병 사례의 수로 나눈 값인데 이 수치를 통해서 총 감염자 수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비율을 계산할 때 문제는 분자가 아니라 분모에 있습니다. 분자에는 '의사에 의해 사망진단서에 바이러스 감염이 확인된 사례'라는 숫자가 공통적으로 있지만, 분모에는 다음 3가지 숫자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숫자는 2009년 1월 미국에서 시작되어 2010년 8월까지 일부 지역에서 끈질기게 이어진 인플루엔자, 즉 신종 플루를 기준으로 10만 명당 사망자 숫자입니다. (출처: 『숫자는 어떻게 진실을 말하는가』)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수] ➊ 검사소에서 확인한 사례만 포함한 경우 - 100 ~ 5,000명 사이 ➋ 증상을 보인 사람을 포함한 경우 - 5 ~ 50명 ➌ 예측된 감염 사례*만 포함한 경우 - 1 ~ 10명 *예측된 감염 사례는 무증상 감염이 있을 것이라는 전제 하에 항체가 생성되었는지 검사하는 혈청 테스트 기준
리서치에서는 숫자보다 숫자를 셈하는 기준과 범위가 중요합니다. 분자만 정확히 알아서는 안 되고, 분모까지 고려해야만 비율을 따질 수 있기 때문이죠. 모집단과 표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재 진형형인 경우가 많은 UX 리서치에서 어떤 기준으로 분모를 정의했느냐, 그 판단에 따라 비율과 결론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기적인 조사를 통해서 경향성(추세)을 보는 것이 리서치에서는 해석을 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