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이마누엘 칸트는 정확하고 규칙적인 삶을 산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산책하는 것을 보고 시계를 맞추는 사람들이 있었다고 할 정도로, 칸트는 자신의 일과 계획을 철저하게 지키는 완벽주의자였다. 국내 한 TV프로그램에서 다뤄 화제가 된 ‘칸트가 결혼을 하지 못한 이유‘는 칸트의 완벽주의적 성향이 얼마나 강했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칸트는 젊은 시절 인기가 상당히 많았다. 특히 한 여인이 적극적으로 구애하며,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칸트에게 먼저 청혼을 했다. 그녀의 이런 적극적인 모습에 마음이 흔들린 칸트는 진지하게 결혼에 대해 고민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마침내 칸트는 결혼을 해야 하는 이유 354가지와 결혼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350가지를 찾아냈고, 이점이 더 크다는 것을 확인한 후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청혼했던 여성을 찾아가 결혼 승낙 의사를 밝힌 칸트는 보기 좋게 거절을 당하고 말했다. 그 이유는 칸트가 7년이라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결혼에 대해 고민한 탓에, 청혼했던 여성이 이미 결혼해 두 아이까지 둔 상태였기 때문이다. 결국 무엇이든 철두철미하게 검증해야만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칸트의 완벽주의 탓에 그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칸트의 삶이 실패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근대 계몽주의를 정점에 올려놓았고 독일 관념철학의 기반을 확립한 철학자로서, 칸트와 그의 철학적 관점은 아직까지도 중요한 연구 주제로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재해석되고 있다. 참고로 칸트가 이뤄낸 놀라운 성과와 더불어 타인보다 자신의 결정에 집중하는 모습으로 미뤄 짐작해 볼 때, 칸트는 ‘강철멘탈 성장지향형’에 해당하는 완벽주의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에필로그에서 칸트의 일화를 꺼낸 이유는, 그의 이야기가 하나에 집중하면 하나를 잃을 수밖에 없는 완벽주의의 양면적 측면을 쉽게 비교해 볼 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엉뚱한 상상이지만, 만약 칸트가 결혼을 하지 못한 것에 충격을 받고 철저한 검증이라는 자신의 오랜 습관을 버렸다면 어떤 일이 생겼을까? 어쩌면 후대에 큰 영향을 미친 칸트의 학문적 성취들은 모두 사라지고, 그의 이름 또한 역사적으로 남지 않았을지 모른다. 칸트가 자신의 완벽주의적 성향을 힘들어하며 벗어나고자 노력했는지는 확인된 바 없다. 명확한 것은 그의 완벽주의적 성향이 놀라운 성취를 이끌어낸 커다란 강점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완벽주의의 양면성을 이겨내기 위하여
그러나 칸트처럼 비범한 존재가 아닌 대다수의 평범한 완벽주의자들은, 이 책에서 살펴본 것처럼 자신의 완벽주의적 성격을 힘겨워하며 딜레마에 빠지기 쉽다. 정말로 완벽하지 않은 것이 ‘완벽하게 좋은 방법’인지 확신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완벽주의로 인해 힘들지만 또 완벽함을 지향하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 좋아서, 차라리 완벽주의가 스스로 나를 떠나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사람에게는 원래 밀고 당기기의 이중성이 있다. 이것을 ‘접근-회피 동기’라고 하는데, 이는 ‘정말 잘 해내고 싶어. 하지만 완벽주의 때문에 괴로운 건 너무 힘들어’와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는 두 가지 역설과 마주하게 된다.
첫째는 완벽함의 추구, 즉 ‘달성하기 매우 어려운 높은 기준을 세워놓고 끊임없이 노력하며 무결점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과는 달리 우리 자신이 불완전하다는 결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둘째는 완벽주의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상반된 두 얼굴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완벽주의자는 탁월함을 추구하는 행복한 모습과 더불어, 실패에 대한 두려움과 자기 비난이라는 행복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동시에 지닌다. 따라서 완벽주의를 추구하는 과정은 때로는 성취의 기쁨으로 가득하지만 또 다른 때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회의와 우울로 이어질 수도 있다.
사람은 언제 행복해할까? 어떤 학자는 행복한 이와 맛있는 것을 먹을 때라고도 하고 또 다른 이는 좋아하는 사람과 가까이 있으면 행복이 전염된다고도 한다. 심리학자 에드워드 데시와 리처드 라이언은 우리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세 가지 기본심리욕구인 자율성, 유능성, 그리고 관계성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중 유능성은 내가 무언가를 잘한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유능성은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과 능력을 의미하기에 행복하려면 자발적이고 성장지향형인 ‘탁월함의 추구’가 필요하다. 그래서 우리는 불행한 완벽주의를 행복한 완벽주의로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
자신을 믿는 만큼 변화할 수 있다.
변화하려면 나 자신을 존중하고 내가 지닌 능력을 자각해야 한다. 즉, 나는 불행한 완벽주의에 시달리지 않을 가치가 있고(자존감), 나에게는 이 상황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자기효능감)을 깨달아야 한다. 또 다른 완벽주의자인 미켈란젤로의 말로 이 책을 마친다.
“작은 일이 완벽함을 만든다. 그리고 완벽함은 작은 일이 아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네 명의 완벽주의자 유형
1️⃣ 눈치백단 인정추구형
누구에게든 쉽게 호감을 얻지만 완벽주의 수준이 가장 높으며 타인을 신경 쓰느라 정작 자신에게는 소홀한 유형
2️⃣ 스릴추구 막판스퍼트형
임기응변이 뛰어나지만 중요한 일을 맡았을 때 실패와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 일을 미루는 경향이 있는 유형
3️⃣ 방탄조끼 안전지향형
신중하고 성실해서 한국 사회에서 가장 환영받지만 안전과 현상 유지를 1순위로 여기기 때문에 변화나 도전을 기피하는 경향이 있는 유형
4️⃣ 강철멘탈 성장지향형
자신감 있고 주도적이지만 ‘조화’를 강조하는 한국 사회에서는 일면 ‘튀는 사람’으로 인식될 수도 있는 유형
Source: 이동귀᛫손하림᛫김서영 – 『네 명의 완벽주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