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광역버스에 백팩을 메고 탑니다
dark mode light mode NEWSLETTER

잘 하려면 제로, 처음으로

오늘의 Intro는 “제로, 처음으로“입니다.
무언가를 잘 해내기 위해 고민할 때가 있습니다.

축구를 할 때엔, 조금 더 안정적인 트래핑을 위해서 고민했고
회의록을 쓸 때라면, 조금 더 빠르고 정확하게 요약하는 방법을 생각했죠.
그러려면 군더더기가 없어야 했습니다. 필요한 움직임만 하고 몸에 힘을 빼야했죠.

책상 위에 짐이 많습니다.

둘러보니 소설도 10권 남짓 있습니다.
좋아하는 커피 원두 몇 개는 선물받았지만 또 유통기한을 넘기고 말았네요.
커피를 자주 마시는 편인데 사내커피는 제 입맛에 맞지 않아 핸드드립을 위한 도구도 갖춰놓았습니다.
고민도 많지만 그 보다 물욕이 많은 편이라 사무실을 이동하거나 자리를 옮길 때에면 다들 제 자리를 보고 한숨을 내쉬었죠.

” 언제 다 옮길래? ”

보통은 아까워서 잘 버리지 못합니다.
이것도 나중에 쓸텐데, 이건 지금 사는게 이득인데 하면서 “1+1” 상품을 사는 식이죠.
그렇게 산 물건들을 모아놓으니 책상 위는 ‘미니멀리즘’과는 거리가 멀고 자본주의 실패에 가까워 보입니다.

다음에 이사를 갈 때에는 자리를 단초하게 할 생각입니다.
물론 이런 다짐대로 “컴퓨터 + 모니터 + 키보드 + 마우스 + 전화기 ” 주변은 욕심의 농도가 진합니다.
다짐하기를 몇 차례였는데 오늘은 물건을 좀 치우고 쓸만한데 필요하지 않은 건 주변에 나눌 생각입니다.

책상 위에 아무 것도 두지 않았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역설을 생각합니다.

[ 춥고, 따뜻하고, 아름답고 ]

에스토니아에는 두 차례 다녀왔습니다.
20일 정도 머물렀는데, 또 가고 싶은 작고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지 궁금했습니다.
EU에 가입한 발트 3국 에스토니아에는
스탈린의 첫 번째 별장과 소련 최초의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 국립공원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궁금해서 찾았죠.
라헤마 국립공원 겨울은 춥고 아름다웠고, 중세시대 모습을 간직한 도심 성곽은 따뜻했습니다.

2008년에 블록체인 기술을 전자정부 보안에 도입할 정도였으니
일찍부터 에스토니아는 IT 강국이었습니다.

자주 사용해보지 않았지만
익숙했던 Skype는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 외곽에 있는 기업이었죠.
도심에서 버스를 타고 1시간 남짓 걸려 도착한 Skype 본사를 잠시나마 둘러보는 것만으로 즐거웠습니다.

헬싱키에서 페리로 2시간 30분이면 도착하는 에스토니아는
한국, 영국, 이스라엘, 뉴질랜드와 함께 Digital-5 회원입니다.

[ Digital – 5 ]

2014년 12월, 디지털에 앞선 5개 회원국이 결성한 정부 간 조직입니다.
개방형 표준과 오픈소스로 전자 정부를 더욱 효율화한다는 목표로 구성한 연합체이죠.

실제로 에스토니아는 가장 민감한 의료정보를 온라인으로 공유하고
전자 투표를 인구 30%가 활용하고 있는 가장 앞선 전자정부 체계를 갖고 있죠.
국민 98%가 디지털 ID를 갖고 있고 이를 통해 결혼, 이혼, 주택 구입을 제외한 모든 행정 처리를 진행합니다.

1991년 소련 붕괴 후 독립한 에스토니아.
별다른 통치기반이 없었던 국가는 현실적으로 IT를 필요로 했죠.
오프라인 인프라를 확충하기에는 효율이 낮고 국가를 운영할 인력, 시스템이 없었거든요.
가장 빠르고 효과적으로, 효율이 높게 국가를 운영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전자 정부를 자연스럽게 택했습니다.

실제로 아프리카 대부분 국가에는 유/무선전화기가 없습니다.
이를 확충하는 데 굉장한 인프라 비용이 들기 때문이고 수익을 내기 어려웠으니까요.
스페인 등 외국통신사들은 유/무선전화기 대신 이동통신망, WiFi를 확산하기 시작했습니다.
현실적으로 가장 빠르게 통신망을 갖추는 방법이 유/무선전화가 아닌 3G폰이었던 셈이니까요.

덕분에 은행점포는 없지만
모바일폰을 기반으로 한 금융서비스가 발달하게 되었죠.

세계적으로 2억 명 이상의 가입자를 확보한 PayPal이 중국에서 확산하지 못한 것도 비슷합니다.
신용카드 위조가 빈번한 나라에서 소비자들은 신용카드를 쓰기 꺼립니다. 은행이 직접 보증해주는 걸 선호하죠.
신용카드를 신뢰하지 않고 자주 쓰지 않는 나라에서 신용카드 사용을 간편하게 해주겠다는 그들의 제안은 매력적이지 않았습니다.

물리적이거나 사회적인 환경이 기술발전을 가이드하는 셈이죠.
기술분야 기업에서 사회학, 심리학 등 사회과학에 관심을 갖는 건 아마도 이 때문일겁니다.

[ 유럽의 실리콘벨리 ]

2017년에 찾은 에스토니아는
스타트업이 사랑하는 도시가 되었습니다.
연남동에 비교할 만한 가장 인기있는 탈린 지역엔
EU 회원국에서 날아온 스타트업 멤버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았죠.
e-레지던시라는 디지털 시민 제도를 운영하는 에스토니아이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정부 서비스를 통해 EU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죠.
현재 알리바바 마윈이 에스토니아 e-레시던시 기술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관료들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기술과 사업을 도와줄까 생각합니다.
관리하기 어려운, 신종 서비스와 사업을 도울 방법을 몰라 규제하지 않죠.

정부가 주장하는 것이 ‘제로 뷰로크라시(Zero Bureaucracy)’입니다.
관료들이 ‘관료주의 제로화’, ‘관료제 제로화’를 주장하는 역설적인 모습에서 발전가능성을 봅니다.

Walcoln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