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광역버스에 백팩을 메고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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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icy Salif Philippe Starck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루이스 설리번

설리번의 말은 건축과 디자인을 관통하는 모더니즘의 명제로 여전히 유효합니다. 20세기 초 미국 마천루를 이끌었던 시카고 파, 대표적인 건축가이자 상업주의 건축을 추구했던 루이스 설리번. 미국 3대 건축가로 꼽히는 그의 말이 여전히 디자인을 규정하는 명제로 사용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꾸밈이 아름답다는 장식미술의 개념을 구식으로, 간결한 형태를 추구해야 한다는 모더니즘 디자인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이 명제는 여전히 유효할까요? 정연우 교수님의 2018년 기고문을 5년 만에 다시 읽어봅니다.

1896년에 지어진 설리번과 아들러의 대표적 건축물 중 하나인 뉴욕 개런티(프루덴셜) 빌딩. 그리스 신전에서 고전건축의 정면요소 중 3가지, 다리(주초), 몸통(주신), 머리(페디먼트)를 도출하고 이에 기반해 설계하는 방식으로 현대식 고층건물의 미학적 형식을 표현했다 ©Nick Stanley
1899년에 완성된 설리번의 대표작. 설리번 센터라고 불리는 시카고의 카슨 피리 스콧 백화점. 3층까지는 상업 시설, 그 이후의 층은 사무실 용도로 재질과 형태를 달리하면서 저층부는 상업 목적에 맞게 화려함과 고급스러움을 강조하고 오피스 영역은 장식을 빼고 백색 테라코타로 지성을 표현했다 ©강태웅

1️⃣ 모양이 기능을 따르는 사례들

손아귀 움직임을 지탱하기 위해 손가락 구멍이 뚫려있는 가위, 한쪽에 주름이 있어 관절처럼 원하는 각도로 조정해 음료를 마실 수 있는 빨대, 낮고 넓게 바디를 만들어 공기저항을 줄이고 고속주행할 때 안정성을 높이려는 스포츠카, 성냥갑 같이 생겼기에 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네모난 모양의 현대식 아파트들은 모양이 기능을 따르는 사례입니다.

2️⃣ 귀엽고 아름다워서 기능을 따르지 않아도 괜찮은 사례들

필립 스탁의 쥬시 샐리프 레몬 스퀴저, 1990년 이탈리아의 한 바다에서 휴가를 즐기는 동안 음식점 냅킨에 초기 도안을 구상하여 디자인한 제품으로 본래의 기능을 떠나 장식품으로 널리 쓰인다 ©루밍

필립 스탁의 레몬즙 짜개는 실제로 레몬즙을 짜기에는 그다지 편리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인기를 끄는 주방소품입니다. 어떤 것들은 기능이 훌륭하지 않지만 작품으로, 기쁨과 만족감을 주기 때문에 오브제처럼 쓰임에도 사랑받습니다. 젠틀몬스터 사옥을 보면 공간 효율을 극대화했다기보다는 특유의 개성과 도전을 상징하는 것 같은데 주목받습니다. 어떤 것들은 형태가 기능을 극대화하지 않아도 다른 가치가 있으니 괜찮은 것 같습니다.

3️⃣ 만약 아름다움으로 인한 만족감도 기능이라고 한다면 어떨까?

형태가 기능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기능이 형태를 따른다는 말을 가만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휘두르려고 방망이를 만든 게 아니라 누군가 기다란 나뭇가지를 보고 휘두르기 시작했습니다. 사슴벌레는 뿔이 크니까 경쟁자 수컷을 던질 때 뿔을 쓰죠. 꽃이 예쁘고 향기를 내니까 나비도 사람도 모입니다. 부드러운 공간에 끌리는 감성이 효율 기능을 압도할 수 있습니다. 기능이 떨어져도 사랑받는 것들은 사랑받기에 충분한 감성적 기능이 작동하는 게 아닐까요? 감성적 기능도 기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큰 TV를 더 크게, 놀랍도록 얇아진 TV를 더 얇게, 보기에 더 좋게 때로는 그냥 이유를 잘 모르지만 마음에 더 들게 만들고 있으니까요.

주변을 관찰해보니 손님이 우산을 꽂는 통은 쓰레기통이였다

스콜이 쏟아지다 해가 다시 쨍쨍 내리쬐는 변덕스러운 날들의 연속입니다. 지금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외출할 때에는 우산을 챙기기 마련이죠. 카페에서 사람들을 기다리면서 관찰해 보니 입장하는 손님들은 우산꽂이가 없는 가게 입구에 놓인 빈 쓰레기통에 우산을 자연스럽게 꽂습니다. 안정적으로 우산을 보관하고 물이 흐르더라도 주변을 어지럽히지 않을 수 있는 몸이 긴 통이 필요했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