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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일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까?

일에서 만족감을 느낀다고 하면 ‘조건’부터 떠올리기 쉽죠. 조직 문화, 성장할 수 있는 커리어, 경쟁력 있는 보상 그리고 최고의 복지라고 말하고 싶은 동료. 4가지가 모두 완벽한 조합으로 구성된다면 일에서 얼마나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까요? 그런데 이 만족감은 어떻게 해야 오래 지속될까?라는 질문은 다시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이 질문들에 대해 답을 구하려면 “내가 일을 할 때 어떤 상태에서 만족감을 느끼는가?“를 스스로 묻고 답을 구해내는 고민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헝가리 출신의 미국 심리학자 칙센트미하이는 심리학에서 ‘행복’, ‘창조성’, ‘즐거움’ 등을 연구하는, 이른바 긍정 심리학을 확립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과제의 난이도와 기량이 고도로 균형을 이룬 상태에서 찾아오는 황홀한 상태를 ‘몰입’이라는 개념으로 정리하고 제창한 것으로 유명한데, 저는 심리학개론 수업 때부터 긍정심리학, 산업 및 조직심리학 수업에서 그의 이름을 여러 차례 들었고 논술 단골문제이기도 했습니다. 학부졸업을 앞둔 2008년 무렵, 웰빙(well-being)이라는 화두가 사회 전반에 마케팅 소재로 활용되었는데 그가 이야기한 ‘몰입(flow)’은 어디에도 잘 어울렸기에 아직도 기억이 생생합니다.

각 분야에서 성취를 이룬 사람들을 대상으로 수없이 많은 인터뷰를 마친 칙센트미하이는 몇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소니의 공동창업자 이부카 마사루 등 각기 다른 분야에서 고도의 전문가들이 일에 흠뻑 빠져 있는 상태를 표현하는 말로 종종 ‘몰입(flow)’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는 것이었죠. 칙센트미하이는 그들 전문가가 사용한 이 용어를 그대로 가져와 나중에 ‘몰입 이론’으로 널리 알려진 가설을 정리했습니다. 그는 절대적 몰입의 상태에 들어가면 다음과 같은 8가지 상황이 발생한다고 말했죠.

절대적 몰입의 상태에서 나타나는 8가지 상황

1️⃣ 과정의 모든 단계에 명확한 목표가 있다

목적이 불명확한 일상생활에서 생긴 일과는 대조적으로, 몰입 상태에서는 항상 해야 할 일을 확실히 알고 있다. 결과 중심이 아니라 목적에 따라 과정을 나누고 각 단계에서 내가 어떤 것을 해내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 그것이 궁극적 목표를 이루는 데 갖는 의미와 조직적 차원에서의 영향력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2️⃣ 행동에 대해 즉시 피드백한다

몰입 상태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어느 정도 잘하고 있는지를 자각하고 있다. 다르게 생각하면 어느 정도 못 하고 있는지, 어떤 부분에서 부족함이 있기에 어떤 능력을 개발해야 하는지 인지하고 있다.

3️⃣ 도전과 능력이 균형을 이룬다

자신의 능력에 맞는 도전을 하고 있으며 너무 쉬워서 지루한 일도, 너무 어려워서 도망치고 싶은 일도 없이 절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다. 너무 쉬운 일에는 호기심을 느끼기 어렵고, 너무 어려운 일은 좌절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내가 최선을 다하면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은 수준의 목표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동시에 내 능력이 향상되는 정도에 따라 목표를 상향, 또 컨디션을 고려해서 목표를 하향조정하는 능력이 있다.

4️⃣ 행위와 의식이 융합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완전히 집중하고 있다. 이걸 한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한다거나, 지금 하는 것 이외의 것을 동시에 병행하는 이른바 ‘멀티태스킹’을 하는 대신 지금 오롯이 집중해야 하는 것에 모든 신경과 에너지, 능력을 집중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의 행위와 의식이 나뉜 상태는 몰입이라고 볼 수 없다.

5️⃣ 집중을 흐트러뜨리는 일은 의식에서 배제한다

완전히 몰입해서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이나 고민이 의식에서 배제되어 있다. 시위를 당겨 과녁에 화살을 쏘기 직전의 순간, 손에 벌이 앉았을 때 또는 모기가 귓가에서 맴돌다 귀에 앉았을 때에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가 된다. 달리기를 할 때 주변의 소리, 햇볕, 습도 등을 의식하지 않고 나의 호흡과 지면에 닿는 발바닥의 면, 몸에 닿는 바람에만 집중하는 상태가 되는 것도 비슷하다.

6️⃣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완전히 몰입해 있어서 집중력과 능력이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실패에 대해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만약 마음속에서 불안이 밀려오면 몰입상태가 중단되어 조절감각을 잃고 만다. “이거 잘못되면 어쩌지?”라는 마음을 다스릴 수 있다. 충분한 연습과 자기 확신이 있고 지금 이 순간에 내가 집중해야 하는 것에 모든 신경을 쏟기 때문이다.

7️⃣ 자의식이 소멸된다

자신의 행위에 상당히 몰입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평가에 신경을 쓰거나 걱정하지 않는다. 몰입이 끝나면, 반대로 자신이 크게 성장했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남의 평가에 신경을 쓰지 않는 상태에 이른다”는 것은 지금 하는 일에 몰입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좋은 신호이다. 순서를 달리해 타인의 평가에 개의치 않고 내가 하는 일에 몰입하려는 노력이 몰입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8️⃣ 시간 감각이 왜곡된다

시간이 흐르는 것도 잊은 채 몰입하기 때문에 몇 시간이 몇 분처럼 느껴진다. 혹은 정반대로 스포츠 선수 같은 경우는 어느 한순간이 늘어나 긴 시간처럼 느낄 때도 있다. 재밌는 걸 하면 시간이 너무 빠르게 가서 아쉬운 마음도 순간의 또렷한 기억이 너무 강력해서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는 순간도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않는 몰입의 상태에서 나타나는 상반된 경험이다.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를 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