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니 아이브 페라리 루체(Luce) 프로젝트를 보며 UX 리서처로서 깊은 통찰을 얻었습니다. 2026년 2월 현재,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이 장면은 단순한 디자인 비평을 넘어 ‘사용성(Usability)의 시대가 저물고 신뢰(Trust)의 설계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중요한 이정표이기 때문입니다.
1. 27년의 관성과 6개월의 몰입 – 프로세스는 ‘알리바이’인가?

조니 아이브는 1992년부터 27년간 애플의 황금기를 설계하며 ‘단순함이 곧 정교함’이라는 표준을 세운 인물입니다. 2019년 애플을 떠나 ‘러브프롬(LoveFrom)’을 세운 그가 페라리와 손잡고 보낸 6개월, 그리고 그 과정에서 탄생한 4권의 리서치 북은 단순한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많은 비평가가 “6개월간 공부하고 4권의 책을 냈음에도 결과물이 피아트(Fiat)처럼 평범하다“고 지적합니다. 하지만 리서처의 시각에서 조니 아이브 페라리 루체 프로젝트의 방대한 과정은 단순한 근거 남기기가 아닙니다. 내연기관의 ‘포효’라는 강력한 경험 자산을 잃어버린 페라리에게, 전기차라는 낯선 캔버스 위에 새겨넣을 ‘경험의 정수’를 다시 정의하는 치열한 산고였을 것입니다.
이 4권의 리서치 북은 단순한 디자인 제안서가 아닙니다. 조니 아이브는 페라리의 새로운 100년을 위해 ‘LoveFrom Ferrari’라는 전용 타이포그래피 시스템을 처음부터 다시 설계했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Theoretical Research‘ 편은 엔진소리가 사라진 전기차에서 인간이 느끼는 ‘공간감’과 ‘속도감’을 어떻게 촉각과 시각으로 치환할 것인지에 대한 심리학적 접근을 담고 있습니다. 디지털 계기판과 물리 버튼에 새겨진 서체 역시 허투루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페라리의 클래식 레이싱카에서 영감을 얻으면서도, 시속 300km 주행 중에도 한눈에 읽히도록 자간과 굵기를 정교하게 다듬었죠. ‘Visual Research’ 북에 이르면 8겹 OLED에 투사될 아이콘 하나하나의 곡률과 빛의 투과율까지 정의되어 있습니다.
2. 조니 아이브 페라리 루체가 마주한 ‘고요 속의 위기감’
페라리의 비즈니스는 현재 전례 없는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2023년 페라리는 순이익 10억 유로 돌파에 이어, 2025년 한 해 매출은 71억 유로를 기록하며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습니다. 브랜드 최초의 순수 전기차 아키텍처를 공개하며 전동화의 서막도 알렸습니다. 실적은 화려하지만 위기감은 깊습니다. 2030년까지 전체 모델의 80%를 전동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엔진 소리 없는 페라리’가 어떻게 럭셔리를 증명할 것인가?는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였죠.
이번 인터페이스 프로젝트는 단순히 화면을 보기 좋게 만드는 작업을 넘어, 페라리의 감성적 가치를 디지털 언어로 번역하는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조니 아이브는 이를 위해 소재의 질감부터 빛의 흐름까지 다시 설계했습니다.
3. ‘알루미늄 바늘’의 역설 – 디지털 캔버스 위에 그은 아날로그 획
이번 조니 아이브 페라리 루체 프로젝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지점은 대시보드 정중앙에 고집스럽게 살아남은 ‘알루미늄 바늘’입니다. 8겹의 투명 OLED가 겹쳐진 첨단 레이어드 비너클(Layered Binnacle) 위를 가로지르는 이 차가운 금속 바늘은 조니 아이브가 던진 핵심 메시지입니다.
디지털 숫자가 무미건조하게 올라가는 것과, 물리적 바늘이 중력을 이기며 호를 그리는 것은 운전자가 느끼는 전율의 차원이 다릅니다. 정보가 범람하는 디지털 환경에서 변하지 않는 물리적 실체는 심리적 안정감을 줍니다. 눈이 돌아갈 곳이 생기는 거죠. 조니 아이브는 화려한 그래픽으로 기술을 과시하는 대신, 가장 아날로그적인 장치와 빛(Luce)을 전면에 내세웠습니다. 기술이 인간의 감각을 조용히 보조하는 ‘절제된 첨단‘을 완성한 겁니다.
4. 자전거 페달을 놓아야 할 시간 – ‘사용성’에서 ‘신뢰’로

과거 링크드인 포스팅에서 언급한 노션(Notion) 창업자 이반 자오의 ‘자전거에서 자동차로의 전환’이라는 비유를 떠올려 봅니다. 지금까지의 UX가 사용자가 페달을 더 효율적으로 밟게 돕는 ‘도구적 사용성(Usability)’에 집중했다면, 2026년 에이전틱 AI(Agentic AI) 시대의 UX는 전혀 다른 궤도에 있습니다.
이제 사용자는 직접 조종하기보다 시스템에 목적지를 위임(Delegating)합니다. 페달을 잘 설계하는 것보다, 자율주행차에 몸을 싣고도 불안하지 않게 만드는 ‘신뢰의 구조(Trust Architecture)’가 핵심이 된 것이죠. 조니 아이브가 화려한 그래픽을 걷어내고 정교한 알루미늄 바늘과 물리 다이얼에 집중한 것은, 사용자를 가르치려 드는 UI가 아니라 기계와 인간이 깊은 수준에서 교감하고 있다는 신호를 설계한 것입니다.
5. 우리의 서비스는 사용자의 어떤 ‘몰입의 틈’을 차지하는가?
“넷플릭스의 경쟁자는 잠“이라던 말은 이제 고전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사용자의 24시간 중 단 몇 분의 ‘인지적 점유’를 누가 가져가느냐의 전쟁입니다.
페라리는 이 전쟁에서 편리함 대신 ‘압도적 몰입’이라는 틈을 선택했습니다. 조니 아이브가 설계한 것은 화면이 아닙니다. 운전대를 잡는 순간 일상의 소음이 차단되고 차와 내가 하나가 되는 ‘맥락의 전환’ 그 자체입니다.
사용성은 이제 기본값(Default)입니다. 2026년의 UX 리서처는 이제 화면 앞의 버튼 배치가 아니라, 화면 뒤편의 데이터 구조와 사용자의 시간을 설계해야 합니다.
조니 아이브의 페라리 루체 프로젝트가 남긴 ‘아날로그 바늘’이, 실제 도로 위에서 어떤 신뢰의 언어로 작동할지 지켜보는 것은 무척 흥미로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이 ‘보이지 않는 설계’가 럭셔리의 미래를 정의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Key Takeaways
조니 아이브 페라리 루체 프로젝트는 단순히 감각에 의존한 결과가 아닙니다. 러브프롬 팀은 ‘Volume I’, ‘Volume II’를 넘어 ‘이론적 연구(Theoretical research)’와 ‘시각적 연구(Visual research)’에 이르는 방대한 데이터를 구축했습니다. 이 4권의 리서치 북은 페라리의 미래 전동화 전략을 위해 조니 아이브가 얼마나 깊이 있게 브랜드의 본질을 파고들었는지 보여주는 물리적 증거입니다.
Q. 조니 아이브는 왜 페라리 전기차에 아날로그 알루미늄 바늘을 남겼을까?
A. 전기차 시대의 정적(Silent) 속에서 운전자에게 기계적 전율과 시스템적 신뢰(Trust Architecture)를 제공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는 과거의 ‘도구적 사용성’을 넘어선 ‘보이지 않는 인터페이스’ 설계의 일환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 혁신은 전기차 시대의 정적을 물리적 알루미늄 바늘과 8겹 OLED의 결합으로 채운 것입니다. 단순히 ‘쓰기 편한 UI’를 넘어,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구축하는 HMI 설계라는 점에서 기존 자동차 인터페이스와 결을 달리합니다. 결국 이 모든 선택은 페라리가 전동화 전환기에 브랜드 헤리티지를 디지털로 보존하기 위한 생존 전략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