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읽기가 대체로 효과적이지 못한데도 학생들이 그 전략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학습에 대한 잘못된 조언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이런 공부 방법에 끌리는 또 하나의 이유는 앞서 언급했던 현상 때문이다. 즉 교재를 읽으면서 그 내용에 익숙해지면 그것을 완전히 소화했다는 착각에 빠지기 때문이다. 교수라면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학생들은 강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정확하게 포착하려고 애쓰며, 수업 내용을 표현한 문장 자체에 핵심이 들어 있다고 오해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다. 강의나 교재에 통달하는 것은 그 속에 담긴 생각을 완전히 소화하는 것과 다르다. 반복 읽기는 근본적인 생각을 완전히 소화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여기에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된다. 교재나 강의 노트에 필기한 구절을 외운다는 것이 그 내용의 중요성이나 적용, 사전 지식과의 연관성을 이해했다는 표시는 아니다.
대학 교수로서 아주 흔히 겪는 일 중 하나는 심리학 개론 수업을 들은 1학년 학생이 첫 시험에서 낮은 점수를 받고 괴로워하며 연구실로 찾아오는 일이다. 그 학생은 강의에 출석하고 필기도 열심히 했다. 교재도 읽고 중요한 부분에 강조 표시도 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교수는 학생에게 시험 준비를 어떻게 했느냐고 묻는다. 일단 학생은 필기를 처음부터 보면서 중요한 부분에 강조 표시를 하고, 내용에 완전히 익숙해질 때까지 노트 필기와 교재를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시험에서 D를 받을 수가 있단 말인가?
➊ 그렇다면 각 장의 마지막에 나오는 핵심 개념들을 이용해서 자체적으로 시험을 보았는가? ➋ '조건 자극'과 같은 개념을 정의하고, 문단 안에서 활용할 수 있었는가? ➌ 교재와 필기를 읽으면서 핵심 내용을 질문으로 바꾸고 나중에 공부하면서 그 질문에 답하려고 해보았는가? ➍ 최소한 중심 내용을 자기만의 언어로 바꾸어 읽어본 적이 있는가? ➎ 배운 내용을 사전 지식과 연관 지으려고 했는가? ➏ 교재 밖에서 사례를 찾아보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모두 '아니요'였다. 그는 스스로 모범생이고 부족한 점을 열심히 바로잡는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효과적으로 공부하는 법을 모르는 것이다.
완벽하게 배웠다는 착각은 상위 인지(metacognition), 즉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에 대한 정확한 판단은 의사결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2002년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가능성에 대한 미국 정보기관의 판단과 관련된 기자회견에서 전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가 이 문제를 요약한 유명한 발언을 한 바 있다. "인식된 인식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우리가 무언가를 알고 있음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인식된 비인식도 있다. 즉 무언가를 모른다는 사실을 알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식되지 않은 비인식은 우리가 무언가를 모른다는 사실조차 모를 수 있다는 말이다."
위에서 강조한 부분은 우리 자신의 이야기다. 혼자서 문제를 내고 풀어보지 않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업 내용을 완벽하게 소화했다고 스스로 과대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야 한다. 왜 그런가? 명확함 그 자체인 수업 내용이나 교재를 접하면서 논의를 쉽게 따라가는 학생은 그 내용을 이미 알고 있다거나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느낀다. 달리 말하면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시험을 보면 중요한 개념이 떠오르지 않는다거나 배운 내용을 낯선 맥락에서 맞닥뜨리면 응용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능숙해졌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강의 노트나 교재를 읽고 나면 배워야 할 근본적인 내용, 원칙, 함축적 의미를 파악했다거나 언제든 다시 떠올릴 수 있다는 거짓 감각(false sense)을 느끼게 된다. 요컨대 아주 성실한 학생이라도 두 가지 골칫거리에 발목을 잡히는 일이 잦다. 자신이 어느 부분에 취약한지, 즉 실력을 더 키우도록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어디인지 모를 뿐만 아니라 지식을 완전히 소화했다는 거짓 감각을 일으키는 학습법을 선호하게 되는 것이다.
학생들이 많이 선택하는 학습법은 '학습 성과'를 높이는데 가장 효과가 있는 방법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시험을 앞두고 불안감을 낮춰줄 수 있는 가장 익숙한 방법일 수 있는 셈이죠. UX 리서치를 하면서도 종종 발견하는 지점입니다. 사용자가 항상 최선의 선택만을 하는 건 아닙니다. 리스크를 줄일 수 있는, 실패하지 않는 선택을 합니다.
Source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