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광역버스에 백팩을 메고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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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에서 제공하는 UX는 무엇일까?

저는 요즘 공간에서 제공해야 하는 UX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고민의 출발점은 호텔이든 서비스드 아파트든, 공유 오피스든 모두 사용자가 시간을 보내면서 목적에 따른 행동을 하는데 그 과정에 어려움이 없어야 하며 그 행동을 하기 전엔 행동 후 얻을 수 있는 효용을 쉽게 이해하고 예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매일 이용하는 엘리베이터를 떠올려보면 고민이 와닿습니다. 엘리베이터는 사용자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해야 할까요?

elevator signage ⓒUnsplash
1️⃣ 엘리베이터는 현대식 건축물에 들어가는 수직적 이동수단입니다. 상업시설부터 공공기관, 아파트까지 엘리베이터는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엘리베이터 탑승을 어려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죠. 엘리베이터에 대한 가장 큰 불만은 '너무 느려'라는 것인데요. 절대적 시간과 인지된 상대적 시간이 모두 지루함으로 이어집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다 보면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절대적인 기다림의 시간이 있습니다. 한번에 탑승할 수 있는 인원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타려고 할 때에는 차를 먼저 보내야 합니다. 차에 탑승한 이후에도 절대적인 이동시간이 필요합니다. 초고층 빌딩라면 모를까, 대부분의 건물에서는 이동거리(구간)가 짧으니 엘리베이터를 교체하더라도 이동속도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기 어렵죠. 10% 속도를 개선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들여야 하는 교체 비용이 부담스럽습니다. HW를 유지한 상태에서 SW(로직)만 바꿔보려 해도 법규로 정한 문 열림, 문 닫힘 속도를 임의로 줄일 수도 없습니다.
2️⃣ 엘리베이터는 누가 사용할까요? 속성으로 보면 대부분의 사용자(입주민, 방문객, 관리자, 배달기사 등)가 함께 이용합니다. 화물용 엘리베이터, 비상용 엘리베이터 등도 일정이 급할 때에는 동일한 목적, 즉 '수직적 이동'을 위해 계단과 함께 대체재로 활용합니다. 회사 출근시간에 엘리베이터홀에 사람이 많을 때 가만히 관찰해보세요. 계단이나 비상용 엘리베이터로 트래픽이 분산됩니다.
3️⃣ 엘리베이터는 본질적으로 수직적 이동이기 때문에 현재 위치(높이)에서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2가지 방향성을 갖습니다. 상승과 하강, 상행과 하행. 버스나 열차처럼 반대방향으로 타는 순간 급격하게 목적지와 멀어집니다. 인간은 일상에서 수평적 이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수직 이동을 할 때에는 익숙하지 않은 느낌이 듭니다. 어느 방향으로 향하는지 모르는 상태라도 중력을 느끼면서 이동방향을 판단할 수 있죠. 엘리베이터를 타고나서 올라가야 하는데 내려가는 것을 탔거나, 반대로 내려가려고 했는데 올라가는 것을 몸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이건 기다리다가 문이 열리는 엘리베이터를 일단 타겠다는 본능적인 행동 때문에 나타납니다.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에 타야 할 엘리베이터가 좌, 우 중 어떤 쪽인지 직관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이 근본적인 원인(Root Cause)입니다. 홀에서 기다릴 때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하고 스마트폰을 쥐고 있는 손을 밑으로 내려다보기 때문에 시야가 좁아집니다. 이런 상황에선 어떻게 경험을 개선할 수 있을까요? 횡단보도에서 신호대기를 할 때랑 비슷한 상황이니 시선의 흐름에 가까운 바닥면에 신호등 색깔을 표시하고 점등하는 것도 정보적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왼쪽과 오른쪽 중 어떤 것을 타야 하는지 신호등과 달리 상승, 하강 방향성에 대한 정보도 조합해서 제공해야 합니다.
4️⃣ 사용자 특성에 따라서 엘리베이터를 기준으로 한 여정의 복잡도도 달라집니다. 처음 건물을 찾은 사용자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이후 목적지까지 수평적 이동을 해야 하므로 사이니지 등을 통한 길안내가 필요합니다. 처음 건물을 찾은 방문객은 목적지가 대충 3, 4층에 있는 것 같아서 문이 열리자마자 타기도 하는데 이때 3층에 내려야 할지 4층에 내려야 할지 내부 사이니지가 없으면 어렵습니다. 이때 스마트폰을 검색하거나 엘리베이터 내부에 참고할 만한 정보가 있는지 훑어봅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이용할 때에는 엘리베이터 내부가 붐벼서 버튼 패널이 잘 보이지 않고 스마트폰으로 정보를 찾기도 전에 수직이동은 중간중간 멈추게 됩니다. 
5️⃣ 엘리베이터에 대한 관습적 경험을 모두 갖고 있기 때문에 홀에서 위, 아래 조작버튼 위치, 엘리베이터 실시간 위치, 탑승 후에는 내려야 하는 시점을 판단할 수 있도록 현재 위치에 대한 정보값을 내부에서 제공해야 합니다. 특히 홀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때 엘리베이터의 현재 위치정보는 단순히 정보를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사용자 행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6️⃣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행위, 기다려야만 하는 절대시간이 동일하다고 홀에서 실시간 위치를 안내하지 않는 것은 어떨까요? 사실 지금 엘리베이터가 몇 층에 있는지 알 수 있다고 1층 로비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이 줄어들지는 않습니다. 16층에 있든, 9층에 있든 먼저 도착해서 문이 열리는 엘리베이터를 타야만 하니까요. 그렇지만 사용자 입장에서는 엘리베이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면 엘리베이터를 탈지, 말지 결정할 수 있고 기다릴 때에도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하는지 가늠할 수 있다면 대기시간에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 주체적으로 판단할 수 있습니다. 운이 안 좋게 평소보다 오래 기다려야 한다면 차라리 계단을 이용하거나,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짧은 통화를 마칠 수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