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서천, 정식개관을 앞둔 국립생태원은 분주한 모습이었다. 아직 원장실에 손님이 있다고 해서 잠시 기다리는데 불안감이 스쳤다. 오전에 받은 전화 때문이다. “어떡하죠. 원장님 일정이 겹쳤어요. 같이 하셔야겠는데요” 다른 매체에서도 2시에 인터뷰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다른 매체와 인터뷰가 겹치더라도 궁금한 건 다 묻겠노라 다짐하는데 문이 열렸다. “먼 길 오느라 고생 많았죠?” 악수를 권하더니 최재천 원장은 회의실은 새 집 냄새가 많이 나니까 원장실로 들라고 했다. 앞 손님이 나오자마자 기자가 들어섰다. 나오는 손님도, 들어가는 손님도 정신이 없다. 유독 그의 얼굴만 평화로웠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쁘다는 사람, 최재천 원장의 첫 인상은 ‘여유로움’이었다.
최재천
학력: 서울대학교 동물학과 학사 / 하버드대학교 생물학 석사, 박사
경력: 2004년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2006년~ 이화여자대학교 생명과학부 석좌교수, 2013년 국립생태원 초대원장
저서: 《통섭의 식탁》 등 60권
한국사회에 ‘통섭’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자신의 지도교수였던 에드워드 윌슨의 《Consilience》을 번역하며 학문 간 넘나듬을 의미하는 ‘Consilience’를 그는 ‘통섭’이라 번역했다. 이 단어를 찾기 위해 1년 넘게 고심했다는 그를 캠퍼스가 아닌 국립생태원에서 마주했다. 자신의 이화여대 연구실을 ‘통섭원’이라 부르는 그는 인터뷰 장소로 선택한 원장실을 ‘통섭공원’이라 부르겠다고 했다. 학문적으로는 물론이고 이제는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란다. 그에게 물었다.
1. 통섭에 대하여
‘통할 통(通)’+’쥘 섭(攝)’ = “큰 줄기를 잡는다”
Q. 통섭이 무엇입니까?
굉장히 많은 얘기를 할 수 있는데요. 한 마디로 하자면 ‘담을 고치며’라는 시의 마지막 구절이에요.
담을 만들기 전에 나는 묻고 싶다
내가 무엇을 담 안에 넣고 무엇을 담 밖에 두려는지
그리고 누구를 막아 내려는지로버트 프로스트 《담을 고치며(Mending the Wall)》
마지막은 “좋은 담이 좋은 이웃을 만든다”는 멋진 문장인데요. 그는 “담이 없으면 그건 한 집안이잖아요. 담이 있어야 이웃”이라고 했다.
그는 통합과 융합을 예로 들었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것은 대부분 담을 없애는 것에 속해요. 통합은 한 곳으로 다른 것을 합치려는 것이에요. 또 융합이라는 개념도 있죠. 기술의 융합이라고 많이들 이야기해요. IT(Information Technology), BT(Bio Technology)가 만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려면 두 기술이 따로 있으면 안 되거든요. 완전히 하나의 기술로 거듭나야 하죠. 그래서 융합에서도 담이 없어야 해요”
통섭은 다르다고 했다. 그는 통섭을 위해 담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담이 없으면 한 집안이지 이웃이 아니잖아요. 제가 서천으로 내려오면서 주말부부가 되었잖아요. 제가 ‘이제 주말부부 해야 된다’고 하니까 국회의원 한 분이 그러세요. ‘옛날부터 주말부부는 3대가 은덕을 쌓아야 이뤄지는 일’이라고. 나이들면 주말부부 되어야 부부애가 솟는다는 얘기도 있으니까요” 그는 유머감각도 뛰어났다.
학문에서도 마찬가지로 담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다만 한국의 경우 그 학문의 담이 너무 높아서 문제라는 것이다. “조금만 노력하면 담을 넘어갈 수 있게 담을 낮춰야 해요. 생물학자인 제가 경제학자들하고도 같이 연구할 수 있고, 물리학자인 사람이 법학하는 사람하고 고민해서 법개정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는 다른 두 분야에서 ‘넘나듬’이 가능한 것이 ‘통섭’이라고 설명했다.
2. 기업과 통섭형 인재
대학은 물론 이젠 기업에서도 통섭형 인재에 관심을 쏟고 있다. 많은 기업들이 통섭형 인재를 자체적으로 양성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그 흐름을 일으킨 최재천 원장은 기업의 변화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Q. 기업들이 처한 현실을 어떻게 보시나요?
그는 Fast Follower 전략으로 성공한 기업들의 공통점을 이야기했다. “남을 쫓아가는 방법을 잘 알았던 거죠. 가장 효율적으로 일하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악착같이 하면 이길 수 있거든요” 하지만 상황이 전혀 달라졌다고 했다. 선두 기업이 되려 쫓기는 입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제 효율적으로 더 열심히 하는 후발주자에게 질 수 있는 상황이에요. 확실한 건 확률적으로 볼 때 누가 더 열심히 그 전략을 하는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는 거에요.” 그는 기업이 실수하는 사이 누군가가 추월하는 시나리오가 되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에게 어제의 기업이 오늘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물었다.
그는 숙제 이야기를 꺼냈다. “숙제를 잘 하는 기업이 있어요. 뭘해야 한다고 하면 누구보다 잘 했거든요. 그런데 이제 달라져야 해요. 그래야 First Mover가 될 수 있어요” 그는 숙제하는 사람과 출제를 하는 사람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다. “수능을 보는 학생들과 문제를 출제하는 사람의 수준은 전혀 다르죠” 그는 기업이 궁극적으로 ‘숙제를 정하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야 확률적으로 1등에 머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져요”
그는 담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 동안 우리가 키워 낸 인재들은 담에 둘러 쌓인 인재들이에요. 자기를 둘러싼 담을 넘어가는 순간부터 바로 문제가 생겨요. 새로운 담 안에서는 전혀 기능을 발휘할 수 없죠” 그는 그 이유로 ‘문과’와 ‘이과’로 구분된 교과과정을 꼽았다. “경계를 조금만 넘어서면 ‘아무 것도 모릅니다’하는 표정이니까요” 그는 이런 현상을 개인의 문제라기보다 사회구조적인 것으로 설명했다.
그는 이제 ‘담을 넘나드는 인재’가 필요하다고 했다. SW를 예로 들었다. “컴퓨터공학 전공자들이 소프트웨어를 개발했어요. 뛰어난 기술을 많이 가지고 있죠. 그런데 기가 막힌 아이디어가 안 나오니까 고민이 깊죠” 이 때 담을 넘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문학 전공자를 뽑아서 컴퓨터를 가르치는 거에요. 컴퓨터공학은 밤을 새서 치열하게 배우면 할 수 있어요.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뽑아서 합숙훈련 시키는 거죠” 하지만 인문학적 소양은 합숙해서 습득이 안 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인문학적 소양을 쌓으려면 어렸을 때부터 장기간에 걸쳐 폭넓은 독서와 문화활동을 경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3. 직장인의 통섭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합숙훈련에 동참하기 어려운 직장인의 입장에서 통섭에 대해 물었다.
Q. 회사다니면서 어떻게 통섭을 할 수 있을까요?
답은 배움이었다. 최재천 원장이 대학총장들을 만나면 항상 이야기 하는 것이 있다. “대학마다 평생학습센터가 있잖아요. 수강생 대부분이 중년층이에요. 취미로 다니세요. 학교도 그 정도로 생각하고 운영해요” 대다수 대학의 평생교육원의 프로그램을 보면 백화점 문화센터와 유사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이 개념을 좀 달리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평생학습센터가 졸업생에게 평생 AS하는 개념으로 가야해요.” 실제로 미래학자들은 현재 20대들이 평생동안 최소 5개 정도의 직업을 갖는다고 예상하고 있다. 그는 체계적으로 직업 전환을 돕는 대학이 앞으로 학생들이 선호하는 대학이 될 거라고 했다.
그는 독서라고 했다. 2011년, 《통섭의 식탁》이라는 책에서 그는 ‘기획독서’를 이야기 했다. 그가 ‘기획독서’라는 개념을 꺼내자 그 반대개념으로 ‘취미독서’라는 말이 생겼다.
많은 사람들이 취미란에 ‘독서’라고 쓴다. 하지만 그는 “정말 독서를 잘 하는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힐링’이 인기를 끌면서 심각하지 않은 책들만 많이 찾는다. “어떤 사람은 ‘머리를 비우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라고 말해요. 책을 쓴 사람은 머리에 지식을 채우기를 바라며 책을 썼는데, 비우려고 책을 읽는다고 하니 이상한 일이죠” 하지만 진정한 독서란 ‘기획독서’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모르는 것을 알아가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 참독서라는 것이다.
그는 이어서 아픈 곳을 찔렀다. “심리학 전공하셨다고 했죠. 혹시 진화심리학에 대해 잘 아세요?” 기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요즘 진화심리학이 크게 주목받고 있어요. 조금이라도 관심이 생겼나요?”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당장 진화심리학, 책을 하나 들고 덤벼 보라는거죠. 그 다음에 ‘양자역학’, ‘근대철학’도 말이에요” 그렇게 하나씩 지식의 영역을 책을 통해 넓혀 가는 것이 기획독서이다.
Q. 어렵지 않을까요? 책과 더 멀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최재천 원장은 “피아노 치면서 배운다”라는 말을 좋아한다고 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우연히 영감을 받아서 즉흥연주를 할까요?” 결코 아니라고 했다. 엄청난 연습을 한다는 것이다. “피아노는 치면서 배우는 거죠. 치면서 실력이 늘어요. 가면서 하는 거죠” 그는 ‘나노과학’을 예로 들었다. 어떤 사람이 ‘나노과학’에 대해 전혀 모르는데 심오한 학문을 들여다보겠냐는 것이다. 그런데 ‘나노과학’ 책을 한 권 읽은 사람은 다르다. “자기가 뭐라도 아는 줄 알죠” 작은 관심이 생겨야 빠져 들고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새로운 분야로 빠져 든다는 것이다.
그는 독서만큼 자기계발에 좋은 것이 없다고 했다. 한 권이라도 읽고 나면 뭐라도 아는 듯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자신과 상관이 없으니까 그런겁니다. 그런데 한 권이나마 읽은 사람은 ‘가 볼까?’ 생각하죠. 가서 듣다 보면 더 알게 되는 거죠”라며 직장인에게 독서만큼 좋은 것은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4. 꿈에 대하여
Q. 원장님께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로 먹고사는 사람은 행복하다. 이리저리 방황하면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 방황을 ‘아름다운 방황’이라 하셨는데 직장인들이 방황해도 괜찮습니까?
(웃음) 제가 직장생활을 해 본 적이 없어서 대답하기 조심스럽네요. 저는 연구하고 강의하면서 지금까지 대학교수로 살았으니까. 교수는 비교적 자유롭게 시간을 쓸 수 있어요. 정확히 짜여진 직장인의 삶과는 많이 다르겠죠. 직장인들이 자기시간을 어떻게 만들어 낼 수 있는지 모르지만, 가끔 직장인들 중에도 제 강의에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직장인들도 “아름다운 방황”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우물을 예로 들게요. 예전에는 자기우물 하나만 확실히 파면 그 우물만으로 먹고 살 수 있었죠. 이제는 풀어야 할 문제들이 너무 복합적으로 변했어요. 개인의 삶에서도 직업이 5~6개씩 되니까 하나만 확실히 파고 멈추면 안 되는 거죠. 평소에 옆 우물도 힐끔 보기도 하고 관심있으면 직접 파기도 하는 사람이 확실히 유리해진 시대죠.
회사생활이 힘들 거에요. 그런데 “힘들어서 방황 못한다?” 이건 아니에요. 회사란 필요할 때까지 지원하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내보내야 하는 거죠. “퇴직 후의 삶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스스로 해야 하는 거에요. 힘들더라도 방법을 찾아야죠.
Q. 갑자기 우울해지는데요.
그러니까 그 전에 지식의 영역을 넓혀야 하죠. 가장 좋은 방법이 독서라고 생각해요. 동호회 같은 모임도 방법이고 별의별 것들을 해야죠. 예전처럼 평생직장 개념이 아니잖아요. 안일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학습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중요해요. 지금 잘 하는 것들을 계속 하면서 새로운 걸 시작해야 하는 거에요.
Q. 원장님, 지금은 어떤 꿈을 꾸면서 살고 계신가요?
제가 가장 힘들어하는 질문이네요. 같은 질문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는 꿈이 없어요. 우리는 사회가 꿈을 강요하잖아요. 꿈을 키우라고. 그러면 삶이 너무 힘들어져요. 저는 살면서 원대한 꿈을 꿔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냥 열심히 살았던 것 같아요. 하다보니 몇 가지가 잘 되었죠.
유학가서 공부할 때도 “개울물에 첨벙거리면서 놀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꿈이 없는 사람이에요. 그냥 제 앞에 있는 일들, 좋아하는 일들을 열심히 하고 그걸 즐기면서 그렇게 잘 살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바지를 입는 순간을 즐겨라”는 문장이에요. 그냥 바지를 입는 것을 즐기라는 거에요. 저는 “재미있게 살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는 밖에 있는 손님을 보고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아, 지금 이 순간 제 꿈이 무어냐고 물으셨죠? 조금 정치적으로 답을 할게요(웃음).
“국립생태원을 영국의 큐가든 같은 세계적 수준의 생태연구기관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그는 3권의 책을 추천하고 다음 일정을 위해 손님보다 한 발 앞서 ‘통섭공원’ 문을 나섰다.
5. 최재천 원장이 추천하는 책 3권
1. 《총, 균, 쇠》 — 재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 문학과 사상사 | 2005년 개정
진화생물학자인 재래드 다이아몬드가 무기, 병균, 금속이 인류 문명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한 책입니다.
2. 《리오리엔트》 — 안드레 군더 프랑크 지음 | 이산 | 2003년
알게 모르게 의식을 지배하는 ‘서구 중심주의’를 벗겨 내려는 책이에요. 저자는 19세기 세계경제의 중심은 아시아였고 그 정점에 중국이 있었다고 말하죠. 21세기에는 과거에 그랬듯, 아시아가 세계의 새로운 중심으로 변모하고 있다는 거에요.
3. 《호치민 평전》 — 윌리엄 J. 듀이커 지음 | 푸른숲 | 2003년
호치민 평전은 세상에 나오기 어려웠어요. 호치민이 워낙 가명을 많이 사용했기 때문이죠. 저자는 이 평전을 쓰기 위해 무려 30년간 호치민을 조사했어요. 그는 주석이 된 후에도 호 아저씨라고 불리길 원했고 아직도 베트남 사람들은 그를 호 아저씨라고 불러요.
Key Takeaways
- 통섭은 담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담을 넘나드는 것 — 통합, 융합과 달리 각 분야의 경계를 유지하면서 넘나드는 것이 통섭이다.
- Fast Follower에서 First Mover로 — 숙제를 푸는 사람에서 출제하는 사람으로. 기업이 궁극적으로 ‘숙제를 정하는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
- 기획독서 — 모르는 분야의 책을 한 권 읽는 것만으로도 세계가 넓어진다. “피아노는 치면서 배우는 것”처럼 독서도 읽으면서 배우는 것.
- 꿈을 강요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을 즐겨라 — “아침에 일어나서 바지를 입는 순간을 즐겨라.” 재미있게 살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