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결투가 이소룡이 웨이트 트레이닝에 박차를 가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이소룡은 사람들에게 쿵후를 막 가르치기 시작했던 터였죠. 전통 무술을 하던 사람 중 하나가 이소룡이 서양인을 가르친다는 걸 듣고 도전하려고 찾아왔고, 이소룡의 아내 린다 리가 그 장면을 목격했습니다.
"약 3분 정도 진행되었죠. 브루스가 그분을 땅에 쓰러뜨리고는 말했어요. '이제 포기하시겠어요? 이제 포기하시겠어요?' 그러자 그 남자가 '포기합니다'라고 했죠. 그러고 그들 일행은 돌아갔어요. 하지만 브루스는 무진장 화가 났어요. 3분이 되기 전에 그 사람을 쓰러뜨리지 못했다고요. 하하하. 그때부터였죠. 브루스가 자신의 육체적 건강 수준과 무술 방식에 대해 회의를 품기 시작한 게" - How Bruce Lee Changed the World. 디스커버리 채널 방영, 2009.
실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의도적 수련(Deliverate Practice)’이 중요합니다. 의도적 수련이라는 용어가 어색할 수는 있지만 전문성 획득에 있어 연습의 중요성은 대중서적과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진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점이 있다면 의도적 수련의 양적인 부분(예컨대 ‘1만 시간 법칙’ 등)은 많이들 알겠지만, 의도적 수련의 질적인 부분, 즉 어떤 조건을 갖춰야 의도적 수련이 되는지, 더 효과적인 의도적 수련이 되기 위해서는 어떠해야 하는지 등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의도적 수련을 하려면 나의 실력, 내가 하는 일의 난이도를 의식해야 합니다.
의도적 수련의 필수조건, 난이도
의도적 수련이 되려면 나의 실력과 작업의 난이도가 비슷해야 합니다. 칙센트미하이의 몰입 이론과도 일치하는 부분인데요, 미하이의 단순화된 도식을 보면 어떤 부분의 영역에 집중해야 하는지 명확해집니다.
가로축은 작업에 대해 자신이 느끼는 자신의 실력을 의미하고, 세로축은 작업에 대해 느끼는 주관적인 난이도입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작업을 A, B, C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만약, A 영역의 일을 하고 있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요? 실력이 작업 난이도를 초과하는 영역입니다. 지금 당장은 잘됐다 싶긴 해도 조금 지나면 지루함을 느낄 겁니다. 실력에 비해 일이 시시하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C 영역은 어떨까요? 실력보다 높은 난이도의 일을 하는 영역이기 때문에 불안함이나 두려움을 느낄 겁니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실패하지 않을까?’, ‘이렇게 하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겠죠.
주목해야 하는 부분은 B 영역입니다. 난이도와 실력이 엇비슷하게 맞는 부분입니다. 미하이에 따르면 인간은 이 영역에서 몰입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때 최고 수준의 집중력을 보이고, 그 덕분에 퍼포먼스나 학습 능력이 최대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하죠. 또한 그때 최고 수준의 행복감을 경험한다는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를 언어학자인 크라센(Stephen Krashen)이 입력 가설(Input Hypothesis)을 통해 말합니다. i+1 이론이라고 하는데, 현재 언어 학습자의 언어 수준을 i라고 할 때 딱 1단계 높은 i+1 수준의 입력이 주어질 때에만 언어 능력이 유의미하게 나아진다는 이론입니다.
교육학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합니다. 인지 부하 이론(Cognitive Load Theory)에서는 학습 시 불필요하게 인지적인 부담을 주면 어떤 것도 제대로 학습하기 어렵다는 말을 합니다. 예컨대 미적분을 독일어로 배우면 미적분 자체보다 엉뚱한 다른 것들(예컨대, 독일어 발음을 내기 위한 정확한 혀의 위치)에 집중력을 빼앗겨서 학습효율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죠. 반대도 있습니다. 영단어를 여러 개 외울 때 모음을 감추고 외우면 ‘더 어려워서’ 오히려 기억이 오래갈 수 있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핵심은 역시 적절한 난이도와 실력에 대한 자기 인식입니다.
실력이 늘지 않는 이유
전문성 연구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의도적 수련의 필수 요건 중 하나가 ‘적절한 난이도’입니다. 즉, 앞 그림에서 B 영역의 수련이 의도적 수련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대로 A, C 영역의 일은 의도적 수련이 되지 않고, 실력 향상에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부분이 아주 중요하죠. 업무 시간에 불안함이나 지루함을 느끼는 때가 대부분이라면, 실력이 도무지 늘지 않는 환경에 있는 겁니다. 더 무서운 건 점차 이런 환경에 익숙해지고 행동이 습관화된다는 점이죠. 그때는 자기 인식도 잘 되지 않습니다.
팀장이 해야 하는 일
전문가가 되기 위한 사람에게 해당하는 내용이지만, 다른 사람에게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관리자도 몰입하는 방식을 응용할 수 있습니다. 팀원들이 현재 어떤 상태를 주로 경험하고 있는지 파악하고 적절한 전략을 구사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죠. 이상적으로는 동료의 실력에 맞는 난이도의 일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게 딱딱 맞아떨어지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개개인들이 자기 스스로 몰입 상태를 조정하는 능력을 키우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바람직할 수도 있죠.
여러분의 팀장은 어떤가요? 현실에서는 몰입을 방해하는 행동을 하는 팀장들을 더 자주 접하는 것 같습니다. 몰입 영역 바깥으로 팀원들을 몰아내는 행동을 하는 거죠. 예를 들어 실력보다 낮은 난이도의 일을 해서 지루함을 느끼는 직원에게 동기 고취 차원에서 스터디를 시키거나 콘퍼런스에 보내서 실력을 더 높이게 하는 것 말이죠. 실력보다 낮은 난이도의 일을 하고 있을 때에는 실력을 낮추거나, 일의 난이도를 높일 수 있는 행동을 코칭해야 합니다. 키보드 단축키로만 작업하던 사람이 마우스 위주로 작업을 해서 실력을 낮출 수도 있고, 평소 하던 업무를 효율화할 수 있는 나만의 자동화 도구를 만드는 방식을 고려할 수 있습니다. 어떤 팀장은 실력보다 높은 난이도의 일을 해서 불안함을 느끼는 직원에게 핀잔을 줘서 인지하는 실력(자기 효능감)을 더 떨어뜨리거나, 진행 안 되는 일들의 문제를 분석해서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추가 업무로 난이도를 더 높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럴 때에는 실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거나, 목표를 MVP 수준으로 낮춰서 공유해야 하는 수준을 가장 기초적인 결과물로 한정하는 식으로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소룡의 자기 혁신
다시 처음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이소룡은 이때의 ‘이긴, 그러나 진’ 싸움으로 자신의 훈련 방법 전반을 재검토합니다. 웨이트 트레이닝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였죠. 운동생리학을 공부하고, 각종 웨이트 트레이닝 도구를 직접 고안해 사용하고, 단백질 음료까지도 직접 개발해서 마셨습니다. 이런 자기 혁신을 통해 고안된 것들은 실제로 웨이트 트레이닝계에 많은 영향을 끼쳤습니다. 만약 이소룡이 그 사람을 쓰러뜨렸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했다면 어땠을까요? 아마 그의 삶은 아주 지루했을 것이고, 세계 최고라는 이야기도 듣지 못했을 수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지루하거나 불안하지는 않으신가요?
Source: 김창준, 『함께 자라기, 애자일로 가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