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듀오가 화나면 아무도 못 말리는 이유

새해 다짐을 하셨나요? 건강, 부 그리고 학습. 3가지 카테고리는 항상 새해 다짐을 세우는 기둥이 되곤 합니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여러 방법 중 한 가지는 온라인 학습인데요. 듀오링고는 대표적인 무료 글로벌 외국어 학습 서비스입니다.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교 컴퓨터과학 교수인 루이스 폰 안과 그의 제자인 세버린 해커가 창업했는데 2021년엔 나스닥에 상장한 성공한 글로벌 서비스죠.

초록색 올빼미를 보신 적이 있나요? 듀오링고에는 여러 캐릭터가 등장하는데 이 초록색 올빼미 이름이 ‘듀오’입니다. 이 듀오는 학습과정에 나오지는 않지만 학습을 독려하는 메일에 적극적으로 활용되는데 여러 가지 밈(Memes)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영어 문화권에서는 널리 사용되고 있어요. 예컨대 이런 밈들은 “너 공부 안 할 거야? 그럼 내가 널 고통스럽게 할 거야! 😡“라는 공통된 메시지를 내포합니다. BuzzFeed에서 소개하는 51가지 밈 중 대표적인 몇 가지를 먼저 소개합니다.

그런데 듀오링고가 새해, 처음으로 사용자들에게 보낸 이메일은 유쾌함 대신 불쾌함을 불러일으켰을까요? 밈을 소화하기에는 언어적 맥락이 고려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웃자고 던진 이야기에 웃음기가 사라지는 상황이 생긴 거죠. 언어가 문화적으로 해석되는 가장 대표적이고 상징적인 도구라는 점입니다. 링크드인을 통해 연결된 SWING 제품 디자이너 우난경 님이 공유해 주신 업데이트를 보고 문제를 처음 알았습니다. 흥미로운 건 커리어리 Product Manager인 김은서 님도 비슷한 감정을 느끼셨다고 알려주셨어요. 은서 님이 받으셨던 메일을 공유받았는데 비교해 보니 국문과 영문 메일에도 눈에 띄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메일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제목: 듀오를 화나게 하지 말아주세요 😡 2024년에도 언어를 학습하세요

듀오의 새해 다짐 5단계

  1. 희망 고문 – 내가 장담하는데 재미있을 거예요. 언어 학습을 시작해보아요!
  2. 거절할 수 없는 제안 – 하루에 3분이면 되는데, 참 쉽잖아요!
  3. 밀려오는 슬픔 – 흑흑. 다들 저를 포기했어요. 회원님은 다를 줄 알았는데…
  4. 자책 – 연습 알림이 효과가 없는 거죠?
  5. 걷잡을 수 없는 분노 – 반드시 레슨을 하게 하고 말 거예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듀오가 화나면 아무도 못 말려요…

듀오링고 새해 메일 중 “듀오가 화나면 아무도 못 말려요” 부분. 좌측은 영문, 우측은 국문 메일의 내용으로 기계적 번역을 사용하면서 동일한 영역 안에서 CTA 버튼 ‘START A LESSON’을 구성하지 못하고 텍스트 영역이 비대하게 나타나는 구조적 차이가 생겼습니다. REDBUSBAGMAN

어떠신가요? 저는 이 국문 메일 스크린샷을 읽으면서 UX Writing 중 “혜택을 포기할래요”와 “불편하지만 모바일웹으로 볼래요”가 가장 먼저 떠올랐습니다. 판매자와 플랫폼의 이익을 대변하는 메시지가 사용자에게 불쾌감을 유발하는 지점, 주체적인 판단을 하는 사용자가 마치 잘 모르고 부족해서 안 쓰는 것처럼 이상한 분위기를 만드는 상황과 비슷한 점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자유의지에 따라 학습을 하지 않거나, 웹을 쓰거나, 구매를 보류하고 더 똑똑하게 다른 플랫폼과 가격을 비교해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는 것일 뿐인데 황당하고 불쾌할 수밖에요.

듀오링고는 다음 4가지를 간과했습니다.

  1. 사용자는 자유의지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는 주체적인 존재이다.
  2. 듀오를 활용한 밈은 영어권에서만 통용될 뿐이다.
  3. 언어는 문화적 맥락을 고려해야만 하는 대표적인 도구로 번역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4. 기계적 번역을 사용한 이메일은 동일한 형태에서 동일한 요소(Component)를 노출할 수 없다.

위 4가지는 UX Writing, 마케팅 캠페인을 떠나 글로벌 서비스를 제공하는 프로덕트라면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지점입니다. Sling의 UX 리서처, 강찬 님께서도 짚어주셨지만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UX Writing은 이해가 아닌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역효과를 만드는 거죠. 가장 많은 국가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코카콜라는 어떨까요? 코카콜라는 2014년 ‘Share a Coke’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미국에서 익숙한 이름을 썼거든요. “Share a Coke with John or Sarah or Bobby”처럼 그 지역에서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익숙한 이름을 썼지만 아일랜드에서는 다른 이름을, 중국에서는 정중해 보일 수 있도록 이름 대신 ‘친구’로 수정했어요. 한국에서는 캠페인 이름부터 ‘마음을 전해요‘로 재정의하고 가족, 친구, 연인에게 마음을 표현하는 도구로 포지셔닝했습니다.

같은 의도를 전달하기 위해서 언어, 문화적 맥락을 고려해 다른 메시지를 활용해야 합니다. 바람을 고려해서 의도적으로 활의 시위를 조정하는 것처럼 말이죠. 듀오링고처럼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지 못하는 메시지는 유쾌함 대신 불쾌함을 만듭니다. 듀오링고가 참 잘하는 게 많은데 언어를 다루는 측면에서 미숙한 대목입니다. 듀오가 화나면 그걸로 끝이 아니라 사용자까지 화나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학습을 독려하려는 의도는 달성하지 못하고 이탈을 가속화하겠죠. 화가난 듀오는 사용자 경험을 고려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새해부터 경종을 울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