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버스에 가방을 메고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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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토리와 잠

상수리나무들에는 도토리가 아주 많이 달려 있어 나무 아래에서 참을성을 갖고 기다리며 서 있으면 떨어지는 도토리에 최소한 하나는 머리에 얻어맞을 수 있었고, 운이 좋으면 두 개 연달아 얻어맞을 수도 있었고, 때마침 바람이라도 불면 여러 개 동시에 두들겨 맞을 수도 있었는데, 도토리들에 머리를 얻어맞고 나면, 다른 것도 아닌 도토리들에 고의로 괜히 머리를 얻어맞는 건 기분 좋은 일이야, 하고 생각할 수도 있었고, 그래서 나는 밤에 기분이 가라앉거나, 역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하며 제시간에 잠들지 못하는 전 세계의 불면증 환자들에게 연대감을 느끼며, 하지만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들거나, 뭘 해야 좋을지 모를 때나, 죄지은 건 없지만 따끔한 벌을 받고 싶을 때나, 그냥 좀 얻어맞고 정신을 차리고 싶을 때면 가끔 상수리나무 아래에 가 서 있곤 했다.

정영문, 『강물에 떠내려가는 7인의 사무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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