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딸이 내게 물었다
” 엄마, 회사에 너무 싫은 사람이 생기면 어떡해야 돼? “
나는 혹시나 딸이 회사에서 인간관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었는데 슬쩍 물어보니 친구 얘기라고 했다. 친구가 성격이 맞지 않는 팀장 때문에 매일 출근하는 게 고역이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조용하고 차분한 친구와 달리 팀장은 말투도 직설적이고, 사람들 앞에서 면박 주는 걸 대수롭게 않게 여기고, 사무실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호통을 치곤 했다. 그때마다 친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그래도 팀장은 정이 있는 사람이라서 혼낸 뒤엔 기분을 풀어 주겠다며 커피나 밥을 사곤 했는데 친구는 그 시간이 너무 힘들다고 털어놓았다. 팀장이 자기 사생활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친구의 사생활에 대해서도 꼬치꼬치 캐물었기 때문이다. 또 팀장은 SNS에 게시물을 올릴 때마다 친구가 ‘좋아요’를 눌러 주기를 기대했다. 친구는 부담스러웠지만 친하게 지내고 싶어 하는 상사의 노력을 모른 체할 수 없어 ‘좋아요’에 댓글까지 달곤 했다.
매일 봐야 하는 직장 상사나 동료가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거나,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괴로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회사에서 우리는 마음에 드는 사람하고만 일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회사의 존재 이유는 수익 창출이지 구성원들 사이의 친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또 살다 보면 나와 맞지 않는 사람, 가치관이나 성향이 다른 사람, 도저히 좋아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어른으로서 원만한 사회생활을 하려면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도 잘 지내고, 싫어하는 사람과도 같이 일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함께 일하는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호감은 일의 윤활유가 되어 준다. 그런데 유달리 누군가 자신을 싫어하는 것을 못 견디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모두가 자신을 좋아해 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더 나아가 회사에서 만난 선후배들과 모두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것을 공유하고 서로 좋아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려움에 처해도 서로를 좋아해 주고 지지해 주며 언제나 챙겨 주는 가족처럼 말이다. 그 결과 싫어하는 사람과 같이 일하는 것을 잘 견디지 못한다. 그들은 싫은 사람과 함께 일해야 하는 상황을 비정상적이라고 여기고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 누군가 자신에게 호감을 표시해 주지 않으면 곧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지레짐작한다. 자신에게 친절하지 않은 사람을 잘 견디지 못하는 것이다. 때론 상대의 반응에 촉각을 곤두세우느라 진이 빠지기도 한다.
그런데 직장 동료, 선후배와 가족 같은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유지해 나가는 데에는 엄청난 에너지가 투여된다. 친밀하다는 것은 서로를 잘 알면서도 받아 주는 특별한 관계가 된다는 뜻이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 줄 용기와 상대방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하며 관계에서 오는 실망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친밀한 관계에는 평생을 통틀어 가족과 소수의 친구만이 포함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모든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다 보면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되어 버림은 물론, 인간관계가 의무이자 책임이 되어 버린다.
그럼에도 성공을 위해 인맥이 중요한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모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을까 몰두한다. 또 적을 만들어 봤자 좋을 게 없다는 생각에 모든 사람에게 호감을 얻고자 노력한다. 사람 만나는 일이 자발성에서 나오는 즐거움이 아니라 피곤한 노동의 연장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오감은 타인의 반응에 민감하도록 발달되어 있다. 우리의 유전자에는 타인으로부터 사랑받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가 깊이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맥 관리를 위한 거짓 웃음은 어색함과 불편함만 초래할 뿐 오히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친해지는 것과 원만하게 지내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친밀함은 관계에 따라 동심원을 그리듯 퍼져 나간다. 소수의 친말한 관계부터 서로 알고만 지내는 사이까지, 동심원의 크기는 다양하다.
이때 원만하게 지낸다는 것은 관계에 따른 동심원의 크기를 잘 알고 알맞게 행동하는 것이다. 직장 선후배 사이의 동심원은 서로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갈등도 원만하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정도면 충분하다. 꼭 서로를 좋아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뜻이다. 부족한 점을 격려하고 함께 노력할 수 있으면 그뿐, 꼭 친해져야 할 필요도 없다.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은 너무 비인간적이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나는 직장 내 인간관계의 한계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오히려 상대를 덜 감정적으로 대할 수 있고, 일하는 데만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수차례 함께 회의를 하고 협력을 하다 보면 상대에게 동료애를 느끼게 될 수도 있다. 이때 동료애란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에 충분히 신뢰할 만한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이다. 그러므로 대하기 어려운 뭔가가 있더라도 그 사람과 계속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왜 우리 사이는 편하지 않은 걸까?’ 하고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서로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회사에서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싫어하는 사람과 일을 하게 될 때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을 싫어한다고 내가 맡은 일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싫은 티를 내고 그의 말을 무시하는 것 또한 옳지 않다. 사람이 싫은 것과 일하는 것을 구분 지어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한 가지 더, 지금까지 삶을 돌아보니 나와 맞지 않는 사람은 10명 중 2명 정도였다. 그리고 나와 맞지 않는 2명은 내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결코 가까워지는 법이 없었다. 아무리 좋은 남자와 좋은 여자를 만나게 해 줘도 그들 사이에 끌림이 없으면 연인 관계로 발전하기 힘든 것처럼, 아무리 괜찮은 사람들이라도 둘 사이는 막상 그리 친하지 않은 경우도 허다하다.
그러니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껄끄러운 사람들과의 관계 개선에 너무 에너지를 쏟아붓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친해지고 싶고 앞으로도 계속 연락하고 지내고 싶은 사람들을 챙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랜만에 연락해도 그들은 당신을 진심으로 반갑게 맞이해 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환대는 분명 당신의 지친 마음을 위로해 주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도 예의를 지킬 수 있는 힘을 줄 것이다.
그러니 어느 순간 인간관계가 피곤한 노동처럼 느껴진다면 곰곰이 생각해 보라. 아직도 당신을 아는 사람들이 모두 당신을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버리지 못한 것은 아닌지 말이다.
Source: 김혜남, 『만일 내가 인생을 다시 산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