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색 버스에 가방을 메고 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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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받아들여졌다

리서치와 라이팅을 하는 레드버스백맨 퍼스널 브랜드 이미지
빨강색 버스에 가방을 메고 탑니다.

누군가가 히말라야의 팔천 미터급 고봉에 올라 죽음의 고비를 넘기고 안전하게 귀환하는 것을 반복하듯이, 나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로부터 거부당하지 않고 안전함을 느끼는 순간을 그리워하는데, 그 경험은 호텔이라는 장소로 표상되어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노라니 프로그램의 근원도 이제는 알 것만 같다.
나의 유년은 잦은 이주로 점철되었다. 새로운 학교로 견학하여 처음 보는 아이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원경험들이 쌓여, 그것이 프로그램으로 내 안에 저장되었을 것이다.

어떤 인간은 스스로에게 고통을 부과한 뒤, 그 고통이 자신을 파괴하지 못한다는 것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때 경험하는 안도감이 너무나도 달콤하기 때문인데, 그 달콤함을 얻으려면 고통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집 떠나면 고생’이라는 말을 나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안의 프로그램은 어서 이 편안한 집을 떠나 그 고생을 다시 겪으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어디로든 떠나게 되고, 그 여정에서 내가 최초로 맛보게 되는 달콤한 순간은 바로 예약된 호텔의 문을 들어설 때이다. 벨맨이 가방을 받아주고 리셉션의 직원은 내 이름을 알고 있다.

‘나는 다시 받아들여졌다. 그리고 이제 한동안은 안전하다.’
평생토록 나는 이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낯선 곳에 도착한다. 두렵다.
그런데 받아들여진다.
다행이다, 크게 안도한다.
그러나 곧 또다른 어딘가로 떠난다.

김영하, 『여행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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